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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 Apr 22. 2021

섬진강길의 백미를 걷다

杏仁의 길 담화_진뫼에서 구담까지

 전북 임실군 강진면에서 출발해 전남 구례군 토지면에 이르는 섬진강 문화생태탐방로. 88km에 이르는 이 구간 중에서도 단연 백미는 임실군 덕치면 장산리 진뫼마을에서 구담마을에 이르는 길이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의 풍광이 보석처럼 반짝인다고나 할까?

 섬진강을 굽어보는 회문산과 원통산, 용궐산, 성미산 사이는 그리 넓지 않고 좁은 골짜기다. 강물은 이 골짜기를 이리저리 감고 돌며 흐른다. 이 아름다운 골짜기가 비교적 자연 그대로 잘 보전돼 있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골이 좁아 교통이 쉽게 닿지 않았고 강 옆으로 산비탈이라 논밭이 적어서일 수도 있겠다.

 좁은 골짜기에 굽이가 많아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산자락 곳곳에 사람들은 작은 마을을 이뤄 살고 있다. 늘 강과 함께 삶을 나눈다고 할 만큼, 이 일대의 마을은 강과 바짝 붙어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강마을의 정취 속에 가히 푹 파묻힐 만한 길이다. 나무와 풀과 바위와 사람이 사시사철 강물에 몸을 담그고 어우러져 사는 별천지이기도 하거니와, 시와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오지 않을 수 없다. 진뫼에서 적성면 경계 구담마을까지, 흐르는 강물을 따라 걸으면 강과 산이 어울려 내보내는 자연의 오케스트라에 빠지고 만다. 고즈넉한 강 바위에 앉아 물소리를 떠나보내며 노닐 시간이 있다면 신선이 따로 없을 것이다.   


진뫼마을 앞 정자를 지나 천담, 구담으로 들어가는 길

 전주에서 가면 평화동 쪽에서 임실 덕치면 장산리까지는 대략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자동차 전용도로로 달리다가 순창으로 넘어가기 전 두무 터널을 지나 장암 교차로에서 빠져나와 회문산 입구 삼거리에 닿는다. 회문산을 뒤로하고 맞은편으로 들어서면 장산리 진뫼마을로 가는 길이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선생의 고향마을인 진뫼마을은 이름이 여럿이다. 뒷산이 길어서 장산마을이라고도 하고, 진메, 질메라는 이름도 있다. 마을 입구에 아름드리 정자나무가 한 그루 섰다. 나무 아래 놓인 여러 개의 납작돌은 딱 나그네들이 쉬어 갈 만큼이다. 2007년 어느 환경단체가 이 정자나무의 고마움을 기려 상을 수여했다고 한다. 김용택 시인은 25년간 고향에 살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를 쓰고 살았다.

  진뫼마을을 벗어나면 강변을 따라 발걸음은 천담, 구담마을까지 이른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을 따라 걸을 수도 있고 강둑에 난 섬진강 자전거길을 따라 걸어도 좋겠다.

 진뫼마을에서 장천 계곡으로 흐르는 강물을 따라 한 시간쯤 걸어 내려가면 앞이 툭 터진 천담마을이다. 천담마을 앞 풍경은 다닥다닥 작은 논밭과 정자 그리고 당산나무가 어우러진 마을 풍경이 사뭇 도시와는 다른 세상이다.  

 마을 앞 논 한가운데에 커다란 느티나무와 키 작은 느티나무가 다정하게 서 있다. 그 아래에 세워져 있는 사람 키만 한 돌은 선돌이다. 마을 넘어 강물이 굽이도는 곳에서 보이는 용궐산(용골산. 645m)은 빨치산이 머물렀던 산이다.

 다시 길을 나서 구담마을을 향한다.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언덕길 아래 강물이 햇빛에 반짝거린다. 산비탈 위에 매실나무들이 올망졸망 강물을 내려다보며 작은 손을 흔든다.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웅장하게 버티고 선 구담 언덕, 어느 계절에 와도 가슴에 오래 남을 풍경이다.

 언덕을 지나 마을길의 끝자락에 있는 작은 강마을 구담은 임실군과 순창군의 경계지점에 있다. 마을 앞으로  물줄기가 흐르고 뒤로는 산에 기댄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세를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구담'이라는 지명은 여러 유래가 전해진다. 마을 앞 강가에 소(沼)가 아홉 개  있다 해서 구담이라 불렀다고 하며, 또 다른 이야기는 강에 자라가 유독 많아 거북 '구(龜)' 자가 들어간 구담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이광모 감독의 영화 ‘아름다운 시절’ (1998년 개봉)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영화 제목 '아름다운 시절'만큼 마을의 풍광도 아름답다. 한국전쟁 전후 한 마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아름다운 시절'은 제목부터가 그래서 더욱 이 마을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듯하다. 정자에서 느티나무 군락 쪽으로 나무데크를 따라가다 보니 이 영화의 주 촬영지가 구담마을임을 알리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아름다운 시절 외에도 '춘향전' 등 다양한 작품도 이 마을에 와서 여러 장면을 촬영했다고 한다.

 구담마을 뒤 고갯마루에도 느티나무와 돌무덤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정자나무 그루터기만 남았고 돌무덤도 허물어져 흔적만 있다. 마을 구석구석이 하도 아기자기해서 마치 할머니 품 같기도 하다.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웅장하게 버티고 선 구담 언덕에서 강을 내려다보면 물결이 조용히 굽이치며 흐른다. 따가운 햇살이 강물에 부딪쳐 반사되는 것이, 햇살에 흔들리는 들풀이며 강물조차 반짝이는 눈부신 풍경이다.

 물줄기 굽이치는 너럭바위 아래 얕게 흐르는 강물 위에 낮은 시멘트 다리가 놓여있다. 예전에는 징검다리가 있어서 섬진강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또 하나 아릿한 추억을 되새기게 했었다. 징검다리가 사라진 점은 아쉽지만, 이 마을 사람들에겐 편리함을 제공했을 터이니 나그네가 나무랄 수는 없겠다.

다리를 건너가다 한가운데에 멈춰 서서 뒤돌아 본다. 강을 내려다보는 구담마을의 아기자기한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 같다.     


 2013년 촬영한 사진. 지금은 시멘트 다리지만, 예전에는 징검다리가 있었다.  장구목 가는 길이다. 찻길은 끊기고 강물은 한 굽이를 돌아 노래하듯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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