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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 Apr 22. 2021

강길, 산길의 어울림

杏仁의 길 담화_장구목에서 강경마을로

구담마을 건너편은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 내룡마을이다. 집집마다 감나무며 무화과나무가 익어가는 마을을 빠져나와 다시 강변길을 걷는다.

장구목은 수천년 강물에 씻기고 깎인 바위들이 모여서 바위촌을 이루고 있다.

 강 언덕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요강바위로 유명한 장구목이다. 강을 가로질러 아치를 놓은 현수교가 나타나고 그 아래 강변에 기묘한 바위들이 눈앞에 가득하다. 2010년에 완공한 현수교는 길이 107m, 폭 2.4m로 이 일대의 강변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차량은 통과할 수 없고 사람만이 건널 수 있는 다리다.

 장구목에는 수십 개의 바위가 세월에 깎인 각자의 몸매를 뽐내는 듯 흩어지고 모여서 바위 촌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장구의 잘록한 허리 모양을 했다 해서 장구목이라 하며, 풍수지리상 두 개의 험준한 봉우리가 마주 서 있는 형세 즉 장군대좌형(將軍對坐形) 명당이라 하여 장군목이라 불리기도 한다.

 바위는 각양각색, 마치 용틀임을 하며 살아 움직이는 듯 여러 형상이 새겨져 있다. 섬진강 상류의 맑은 물과 오랜 세월이 빚어낸 경관이다. 약 3km에 걸쳐 있는 기암괴석이 볼수록 놀랍다.

 그 중 강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요강바위는 단연 독보적이다. 어떻게 이런 모양의 바위를 빚었을까. 모양이 영락없이 요강처럼 움푹 팬 이 바위는 높이가 2m, 폭이 3m로 무게가 무려 15톤이다. 요강바위에 들어가면 얼추 장정 한 명이 목까지 들어가는 정도의 깊이이다.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 어려울 듯해 감히 들어가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한국전쟁 때 마을 주민 다섯 명이 이 바위 속에 몸을 숨겨 화를 모면했다고도 하고, 아이를 못 낳는 여인들이 요강바위에 들어가 치성을 들이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속설도 전해온다.

 요강바위는 내룡마을 사람들이 수호신처럼 받들고 있는 돌이다. 이십년 전 바위를 탐낸 도석꾼들이 중장비를 동원해 훔쳐갔던 일이 있었으나 바위를 찾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애를 쓴 끝에 1년 반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지금은 예전 그대로 장구목에 앉아 내룡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지켜주고 있다.     

사진3-11(장구목은 수천년 강물에 씻기고 깎인 바위들이 모여서 바위촌을 이루고 있다.)     

 장구목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무량산을 등지고 터를 잡은 육로정도 멋스럽다.  조선 현종 때 인물인 참봉 양운거가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겼던 곳이라 한다. 커다란 바위에 그의 호를 딴 ‘종호(鍾湖)’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종호정이라고도 했다 한다. 종호는 ‘시객들의 흥겨운 노랫소리가 종소리처럼 메아리친다’는 뜻이다. 양운거는 이 바위에 구멍을 파고 술을 담아 마셨다고 전해진다.

 장구목은 주변의 회문산 등지에서 계곡물이 흘러 내려와 늘 수량이 풍부하고, 소와 여울이 많아 물놀이는 물론 낚시를 즐기기에도 좋은 곳이다. 장구목으로부터 순창군 적성면 일대에 있는 섬진강은 '적성강'이라고 불린다.

 장구목 골짜기를 빠져나가면 구미마을이 나온다. 구미마을은 마을 입구에 있는 거북형상의 바위 꼬리가 마을로 향해 있어서 '거북이 꼬리'란 뜻으로 마을 이름이 붙여졌다. 남원 양씨 종택을 중심으로 한때 300여 호가 넘는 큰 마을이었다는 마을 입구 길 양쪽에 커다랗고 긴 두 개의 선돌이 지키고 있다.      

 구미마을로 가는 대신 강을 가로지른 현수교에 올라 다리를 건너면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 강을 뒤로 하고 산길로 들어서서 임도를 따라 오르면 주변은 금세 온통 숲이요, 사방을 둘러보아도 인공의 것을 찾기 힘든 산 속이다. 천상 오지다.


강경마을은 어미소가 내려가지 못할 만큼 길 좁은 오지다.

 산모퉁이를 한참 돌아 고개를 넘어서면 작은 산골마을 강경마을이 나온다. 마을주민들이 ‘갱경굴’이라 부르는 강경마을은 그야말로 오지마을이다. 지금은 너른 길이 뚫렸지만 옛날에는 길이 너무 좁아 다 자란 소는 길을 내려가지 못해 내다 팔  수가 없었다고 한다. 돌담이 아름다운 집, 아직도 초가지붕을 간직한 집이 있고, 마을 입구에는 백년은 족히 넘었음직한 소나무 두 그루가 마을을 지키고 섰다.      

 장구목을 돌아 다시 현수교를 건너 벌동산(450m)을 끼고 돌아 섬진강 길을 거슬러 올라오면 다시 구담마을로 돌아올 수 있다. 이 길은 행정구역상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 순창군의 예향 천리 마실길 2,3코스가 나 있다. 마을과 마을, 그리고 강을 건너는 징검다리를 따라 산골마을과 오솔길에 강변길이 이어지는 황금 마실길이라 할 수 있겠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 산그늘 아래에서 이 강가를 걸어보노라면, 노을을 받아 강물이 타는 듯이 반짝인다. 어느 마실길 길잡이는 가을날 이 강변길을 걸으며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이라는 박재삼의 싯구를 떠올렸다고 했다. 아마 이 강변에서 그의 마음이 가을 강처럼 타들어갔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바람 한 점 없는 강물에 산그늘이 짙어간다. 그 한 가운데에 풀잎인 듯, 나무인 듯, 강물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앉아 있는 바위인 듯 그렇게 서서 산천을 둘러보면, 산그늘 짙어갈수록 강물의 울음소리는 더욱 낮고 맑게 다가온다.

 언젠가 김용택 시인은 “저문 산들이 마을을 데리고 강으로 내려와 얼굴을 씻고 일어선다.”고 했다. 강물 소리에 마음을 씻는다. 나그네의 얼굴도 씻고, 마을들도 얼굴을 씻는다.

 언제 기회가 되면 달빛 따라 이 강변을 걸어보고 싶다. 이 깊은 골짜기 맑은 강물에 달빛이 비치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강물은 달빛이 부끄러워 바위 뒤에 숨었다가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고 다시 얼른 몸을 숨기며 굽이굽이 흐를 것이다.

  강은 마을과 산과 나무와 바위와 수많은 그림자들을 그 안에 조용히 담고 소리 없이 흐르다 부서지고 굽이치다 쉬면서 흘러간다. 잔잔한 흐느낌처럼.     

강 내려보는 언덕 위에 억새들이 햇살에  빛나며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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