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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 Feb 17. 2021

느릿느릿 거북바위 따라가는
평화동 옛길

杏仁의 길 담화 _ 전주 평화동 거북바위 이야기길

새로 난 길은 사람들에게 편리함과 빠름을 선물했다. 시내 오가는 일이 수월해졌고, 미나리꽝이며 논밭을 일구던 이들에게 땅값과 집값도 올려줬다. 

 해가 갈수록 길은 넓어지고 잘 닦여져 넓은 아스팔트 길로 변했다. 장승백이, 양지뜸, 꽃밭정이... , 길을 따라 아파트와 새 건물이 들어섰고 매두리, 덕적골, 짓골, 대정리에 이르기까지, 늦게 들어서는 아파트일수록 집값도 높다. 평화동 산자락, 들판 곳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옛 마을들은 이렇게 하나둘씩 도시화됐다.      

 지금은 광신프로그레스 아파트가 높다랗게 들어서버린 일대는, 거북바위가 있었다는 구석(龜石)마을이다. 구석마을 정 씨 집 마당에 거북바위가 있었는데 어느 해 갑자기 집주인 내외가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났단다. 마을 사람들은 “거북바위에 시멘트를 발라 장독대를 만들어서 화를 당한 것”이라고들 했다.

 학산 자락에 양택지를 뜻하는 장천부사(長川浮舍)라는 혈명이 있다. 장천리에서 구석마을까지가 여기에 해당하는 명당이어서 “자식은 팔복동으로 보내고 집은 구석동에 지으라!”는 말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야트막한 구릉에 안겨 난전들을 내다보던 구석마을은, 아파트 숲에 밀려 그나마 남아 있던 흔적조차 사라져 버렸다. 

 구석마을로 가던 길목 영무예다음 아파트 앞에 300년 넘은 왕버들나무가 울타리를 두른 채 서 있다. 나무를 다치게 하면 화를 입는다 해서 아파트 건설업체도 나무를 지켰다. 수호신처럼 구석마을을 지켜주던 왕버들은 이제 아파트 사람들의 행복을 지켜주는 나무가 되어 섰다.         

 1972년 교도소가 평화동으로 이전하면서 장승백이 버스 종점이 교도소 앞으로 바뀌었고, 신작로가 넓혀졌으며 시내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 시오리 길을 걸어 남부시장에 다니던 난전들의 마을과 문정리, 석구동 사람들은, 그때부터 버스에 몸을 싣고 장을 보러 다니게 됐다. 그 전에는, 장승백이 넘어서면 길이 좁았다. 구이 사람들은 하루 세 번 트럭을 타고 시내에 나왔고 평촌 쪽에서는 아예 산길을 따라 흑석골 보광재를 넘어 전주에 나왔다.

 지금 교도소 자리는 박 씨 문중 선산이라서 박산(朴山)이었다. 문정리(文停里) 고개에 있던 주막과 난장은 버스 종점이 들어서면서 식당이며 가게로 바뀌었는데, 지금도 구멍가게와 이용원이 옛 모습으로 남았다. 구멍가게 미닫이문에는 옛날 교도소 면회객들의 애환을 짐작하게 하듯 ‘금이빨 삽니다’라는 문구가 지금도 지워지지 않았다.     

 문정리를 넘어가면 군자마을이다. 원래 ‘낙가(樂歌)재’라고 하는 고개에 집 몇 채가 있었는데, 1955년 문정초등학교가 생긴 이래 가구가 늘어 군자마을로 바뀌었다. 마을 앞에, 웬만한 시골에서조차 보기 힘든 정미소가 지금도 있다. 간판도 없는 정미소 안에서 덜커덩 덜커덩 쌀 빻는 기계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정미소 이름을 물어보니 유일정미소라고 한다. 원래는 아래쪽 원석구마을에 있었는데 학교 생긴 후에 옮겨왔단다. 근동에 다른 곳은 전혀 남아있지 않은 유일한 정미소이니 유일정미소라는 이름이 더 와 닿는다.     

 그 너머 신기(新基, 새터) 마을은, 작은 천을 끼고 펼쳐진 집들이 가을 햇살 아래 꽤나 넉넉하다. 복숭아 농사를 많이 짓던 마을이라 산등성이에 복숭아밭이 눈에 띈다. 마을 뒤 각시봉에는 봄이면 진달래가 만발한다. 마을 사람들은  봄마다 진달래꽃을 뜯어 부쳐 먹으며 화전놀이를 즐겼다. 마을 안쪽 산길을 1킬로쯤 걸어 올라가면 덕천사(德泉寺)가 있다. 약수 좋기로 소문난 기도도량이다. 

 원래 천 건너에 있던 봉암리 주민들이 수해를 피해 옮겨오면서 새터가 됐다. 신기마을 용기(龍旗)가 수해로 유실돼 60년 전 새로 만들었다는 것이, 각시봉에서 흘러나오는 천이 옛적에는 꽤 많은 물을 품었었나 보다. 신기마을 용기는, 가뭄 때 금성산에 꽂고 무제를 지내는 데에도 쓰였다. 

원석구마을, 당산제를 올리던 느티나무 안내판

 신기에서 금성마을을 지나 원석구(原石九,石龜)마을에 닿으면 마을 언저리 산자락 끝에 또 거북바위가 있다. 원래 ‘거북이 구’ 자를 쓰던 마을 이름을, 일제가 아홉 구(九)자로 고쳐놓았다. 마을회관 앞 느티나무가 그네를 달아맬 만큼 든든하다. 이 나무 아래에서 사람들이 모여 당산제를 지냈고 새끼줄을 엮어 줄을 당겼다. 

 거북이가 많아서인가? 평화동 옛길은 느리게 걷지 않으면 알맹이를 놓치기 십상이다. 십리 떨어진 구이면 덕천리 구암(龜岩, 九岩) 마을 거북바위까지 이어지면, 이 길은 영락없는 거북이길이겠다. _ 杏仁 (시인. 마실길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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