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인 Aug 04. 2021

치유의 숲길

杏仁의 길 담화_공기마을 편백숲

 편백나무 숲은 청량한 피톤치드 향이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치유의 공간이다. 하늘을 찌를 듯 곧게 자란 편백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한여름에도 햇살이 좀체 들어올 수 없는 곳이 있다.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의 공기마을 편백 숲이다.

 전주에서 남원으로 가다가 상관 죽림리에서 좁은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는 공기마을은 야산에 둘러싸인 전형적인 시골이었다. 마을의 모습은 옥녀봉과 한오봉 자락에 둘러싸여 그 모양이 밥공기를 닮았다.

 이 마을은 추사 김정희, 눌인 조광진과 함께 조선 후기 3대 명필인 창암 이삼만(1770∼1845) 선생이 만년을 보냈던 곳이기도 하다.  땅이 척박해서 농사 대신 묘목을 심어 생계를 유지하던 시절에는 나무시장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편백나무 숲은 마을에서 10분쯤 올라가는 산자락에 있다. 1976년 조림사업으로 이뤄진 숲에는 수령 40년 넘은 편백나무 10만 그루를 비롯해 잣나무, 삼나무, 낙엽송, 오동나무 등이, 60여만 평이 비좁은 듯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

 편백나무 숲은, 마을 주민들이 지난 2009년 희망근로사업과 숲 가꾸기 사업을 통해 산책로와 주차장을 설치하면서부터 외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울창한 편백나무 숲이 있다는 입소문이 퍼져나가면서, 외부인이라고 해야 겨우 우편배달부만 오가던 한적한 마을에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2,000여 명이 한꺼번에 찾아오니 애써 만든 주차장이 모자랄 만큼 부산해졌다. 마치 관광지처럼 사람들이 몰려드는 덕분에 마을 주민들이 농특산물과 편백나무 제품 판매장을 공동 운영하기 시작했고, 마을 인근에는 맑은 공기에 건강을 회복해보려는 이들이 하나둘씩 새 집을 지어 들어왔다. 

50여 가구 주민들이 이웃사촌처럼 옹기종기 살던 공기마을은, 편백숲이 알려진 덕분에 눈부시게 달라졌다. 펜션이며 빌라가 잇따라 들어섰고, 식당과 카페가 생기더니 최근에는 으리으리한 대형 카페도 들어섰다. 


  주차장을 지나면 시작되는 임도가 산책로다. 길은 자동차 한 대가 다닐 정도로 넉넉한 흙길. 편백나무 서 있는 비탈이 경사가 심한 덕분에,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걸으면 왼쪽 비탈에 편백나무줄기를, 오른쪽 내리막에 편백나무 가지를 감상할 수 있다. 산책로는 곳곳에서 오솔길로 이어져 있다.      
 통행이야 늘 개방돼 있지만, 이 편백나무 숲은 사유지다. 산 주인은 벌써 여러 해 숲을 가꾸고 있다.  

마음씨 좋은 산 주인은, 편백숲 속 곳곳에 평상과 의자를 만들어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배려했다. 숲 속 오솔길에는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산책로와 위험한 비탈을 구분해 안내도 해놓았다. 

 사람들이 많이 걷는 임도 주변에는 산비탈 토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돌담을 쌓고 꽃을 피워놓았다.  이 숲에  철마다 피어나는 꽃들은 거의가 산 주인이 씨를 뿌리고 심어 정성껏 기른 것들이다. 어떤 이들은 길가에 핀 꽃을 몰래 캐가곤 해서 속상할 때도 많다고 한다. 사유지에 자란 꽃, 그것도 심어 기른 꽃을 캐가면 절도행위 아닌가? 산 주인이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고발할 수 있고 법적 처벌도 가능한 노릇이다. 

 임도를 따라 얼마간 오르다 보면 골짜기 건너편 숲에 돌탑 군락이 눈에 들어온다. 친절하게 놓인 돌다리를 밟고 개울을 건너 돌탑 구경에 나선다. 나무가 듬성듬성한 숲 속 비탈을 따라 크고 작은 돌탑이 옹기종기 모여 저 위쪽까지 돌탑 마을을 이루고 있다. 하나, 둘 돌탑을 헤아리다 말고 깜박 숫자를 잊어 금세 포기한다. 눈대중으로 족히 100개는 넘어 보인다. 이 숲을 가꾸는 산 주인이 몇 년 동안 쌓아 올린 것이 어느덧 이렇게 돌탑 군락을 이뤘다고 한다. 그중 큰 것은 높이가 3미터를 넘는다. 오솔길을 따라 오르노라니 길 옆으로 작은 돌탑들이 도열하듯 이어진다. 

 '편백숲의 돌탑길'을 지나 다시 임도에 오른다. 한오봉(570m)을 향해 두어 구비 돌아가다 보니 길 아래쪽 숲 속에 널찍한 빈터가 있다. 영화 ‘최종병기 활’을 촬영한 장소다. 남이(박해일)가 청나라 명장 쥬신타(류승룡)에게 화살을 날리는 마지막 장면을 촬영했다고 한다.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영화 속 남이의 대사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은 편백숲을 거쳐  산 정상을 한 바퀴 돌아 오르내리는 산행을 즐기기도 한다. 편백숲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 한오봉(570m)-옥녀봉(578m)을 도는 노선이 대략 7km쯤, 3시간가량 걸린다.

 편백 숲 아래쪽에는 유황족욕탕이 만들어져 있다. 본래 온천을 개발하기 위해 굴착했다가 수온이 낮아 방치했던 샘을 족욕탕으로 이용한다. 산길을 돌아 나온 뒤에 발을 담그면 피로가 말끔하게 가신다. 

이전 10화 늦가을에 밟아가는 남고산성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