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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 Jun 16. 2021

전주 사람들의 숨결이 흐르는 강

杏仁의 길 담화_ 삶을 나누는 물길 전주천, 삼천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어서일까? 천변길 걷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내가 자주 걷는 삼천 둑방길에도, 전주시내 한가운데로 흐르는 전주천 산책길에도 사람들 발길이 분주하다. 아침저녁뿐 아니라 한낮에도 사람들이 붐빈다. 두셋이 걷는 사람들, 홀로 뜀박질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이 섞여 오히려 혼잡하지 않은가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하기사 전주천과 삼천은 원래가 사시사철 전주 시민들이 즐겨 걷는 길이다. 전주천과 삼천이 추천대에서 합쳐지기 때문에 두 천을 이어가며 얼마든지 멀리 갈 수 있다. 전주천 서편 산책로를 따라 걷자 하면 한벽당 건너편 동서학동 무형유산원 앞에서 걸어 내려가다 삼천으로 꺾어진다. 평화동 원당교를 넘어 구이저수지까지 갈 수 있다. 전주천 동편 산책로는 색장동 원색장마을에서부터 백제교를 지나고, 추천대를 건너편에서 바라보며 채고 오른쪽으로 꺾어 전미동 미산교까지, 더 나아가면 고산천 둑길까지 내리 걸을 수도 있다. 천변 산책을 하는 사람들은 물 위에 노니는 청둥오리나 철새들뿐 아니라 하천 생태가 살아나면서 돌아온 수달과 삵, 고라니를 마주치기도 한다. 

한옥마을에서 치명자성지를 지나 색장동 가는 산책로, 전주천 상류다.

 전주 사람들은 이 천변에서 퍽 다양한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고 즐긴다. 산책과 운동뿐 아니라, 어린이들의 생태체험학습 현장이 되기도 하고 마라톤대회나 문화체험 행사도 열린다. 

전주천을 굽어보며 이어지는 산줄기는 치명자 성지와 초록바위, 완산칠봉, 다가공원, 화산공원으로 흘러 내려가며 역사탐방을 할 수 있게도 한다. 전주 도심을 관통하는 물줄기가 시민들 삶에 여유와 행복을 더해주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전주천, 삼천은 전주시민들의 삶에 활력소를 주는 또 하나의 터전이자, 문화 공간이다.       


 세내(삼천)를 끼고 마을이 형성된 전주 삼천동과 평화동 일대 주민들은 옛날부터 집단적인 민속놀이를 함께 했다. 삼천동, 평화동 일대 마을에서 일제 때인 1940년 경까지 성행하던 전주 기접놀이는, 한 마을이 이웃 마을을 초청해 향연을 베풀며 고된 피로를 잊고 친목을 도모하는 집단적 민속놀이였다. 

 무더운 여름날 어렵게 모내기를 끝내고 김 메기를 마무리하고 나서 칠월 백중날, 여러 이웃 마을 사람들끼리 한데 모여 흥겨운 판을 벌여왔다.  기접놀이는 농악과 용기 놀이(무용), 합굿 놀이, 기싸움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됐으니, 이를테면 종합 운동회 같은 놀이라 할 수 있겠다.  놀이의 맨 마지막은 대동굿을 펼친다. 모든 마을을 아우르는 상쇠가 전체를 지휘해 다양한 진풀이와 놀이를 펼치며, 마을 간 경쟁에서 승패로 갈라졌던 심정을 바로 세웠다고 했다. 모든 마을이 대동굿을 통해 하나의 공동체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기접놀이가 파장이 되어 끝나면 맏형 마을에 동생 마을들이 인사를 올린 뒤 돌아간다고 했다. 이때에도 주최 측 마을은 각 마을로 가는 중간지점까지 배웅해 주는 따뜻한 전통이 담겼다.


 기접놀이 전통을 지닌 삼천동 일대 마을 주민들은 지난 1998년부터 전주 기접놀이 보존회를 만들어 정월대보름 굿, 백중 합굿 등을 전승하며 명맥을 이어 해마다 기접놀이를 재현해 오고 있다. 삼천 세내교 인근에서는 해마다 10월이면 인근 마을 주민들이 함께하는 '세내 축제'가 열린다. 세내 축제는 삼천 일대 마을에 이어져온 '합굿'을 재현하며 민속놀이와 전통장터 등 축제마당을 열고, 천을 건너는 섶다리도 만들어 왔다. 

마침 삼천 변에 새로 택지가 들어선 효천지구 개발 덕분에 전주 기접놀이 전수관도 건립됐으니, 기접놀이 전통은 앞으로 지역의 무형문화로 이어가는 데에 무리가 없다.

삼천에 놓인 섶다리

 기접놀이가 삼천의 문화라면, 도심을 가로지르는 물줄기에 섶다리 놓기는 서신동 사람들이 더 앞섰다. 서신동 주민들은 지난 2008년부터 해마다 섶다리를 놓으며 공동체 정신을 확인해 왔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나서서. 전주천과 삼천이 만나는 가련교 아래 여울목에 소나무와 흙으로 섶다리를 만들고 하천 양쪽을 연결했다. 전주천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서신동과 하가지구를 이어주는 다리인 셈이다. 이름이 여울목 섶다리다.  10월에 섶다리를 놓고 3월 중순께 해체하는 작업을 함께 하며 해마다 협동의 장을 만들어 왔다. 

 섶다리는, 우리네 옛 조상들이 가을 추수철쯤에 마을 앞 강에 다리를 만들어놓고 이용하다가 이듬해 5∼6월 물이 불어나면 떠내려 보냈던 임시다리다. 옛 조상들은 통나무와 솔가지에 흙을 덮고 자연의 재료로 섶다리를 만들어 쓰다가 떠내려 보낼 때면 다시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게 했다.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 정신과 자연에 기대어 살아온 지혜의 산물이다. 도시 속 강물을 가로질러 수많은 차량이 오갈 수 있게 하는 화려한 교량보다도,  마을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 만든 소박한 섶다리가 더 눈에 밟힌다.   

강물 위에 섶다리를 놓아 강 건너 마을에 마실을 가듯이, 도시에 사는 우리네들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공동체를 복원해 가기를 소망한다.      

삼천 둑방길을 따라 사람들이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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