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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 Jun 01. 2021

겨울이 더 아름다운 만경강 풍경

杏仁의 길 담화_만경강 이백 리 길 

겨울 풍경이 더 아름다운 강이다. 지는 노을 아래  서해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노라면, 어느 철이건 아름답지 않겠느냐마는, 나는 아무리 보아도 겨울 풍경이 가장 아름답기만 하다.

 강둑길을 따라 걷노라면, 바람에 흔들리는 겨울 갈대숲 너머로 철새들이 헤아릴 수 없이 숱하게 내려앉고 날아오르는 광경이 쉼 없이 펼쳐진다.

 이백리에 걸쳐 흐르는 만경강은 강변 둑길이 이어져 있어서 누구든 언제라도 걸을 수 있다. 일직선으로 곧게 내리 뻗은 둑길의 단조로움에 지치지 않는 한 말이다. 하기사, 강을 따라 생태문화탐방로를 이어놓은 덕분에 단조로움을 느낄 겨를도 없다.


 완주군 고산면 세심정 아래에서부터 남봉교, 용봉교, 봉동교, 회포대교, 삼례교까지는 자전거길 21.1km를 이어놓았다. 

 여기서 다시 비비정을 지나 목천포의 만경2교, 공덕대교, 만경대교, 청하대교 너머까지 자전거길만 총 44km라고 하니 강변 길의 태반을 자전거길로 이어놓은 셈이다.  

둑길은 자동차가 달릴 수 있게 대부분 포장을 해 놓았고, 둑 아래 자전거길을 따라 걸을 수도 있겠지만, 오래 걸으면 발바닥이 아프다. 온통 시멘트로 발라놓아서이다. 

만경강을 제대로 걸으려면, 이백리 길 전부를 직진하는 대신에 강줄기 주변에 드넓게 펼쳐진 갈대숲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헤매어도 보고 강변 곳곳에 조성해놓은 작은 공원이며 탐방 안내판을 살피는 게 좋겠다. 강 주변을 어슬렁거리듯 이 마을 저 마을 고샅을 살피며 돌아 돌아 걷는 방법도 좋겠다. 

겨울철에는 강변 풀숲들이 말라서 천지사방이 길처럼 열려 있으니 걷고 싶은 나그네에게 안성맞춤이다. 겨울이 더 아름다운 만경강은, 그래서 겨울이 더 걷기가 좋다. 

 길이 비단 이렇게 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전주시 천년고도 옛길 6코스 구간 만경강 옛길은, 전주시 덕진구 호성동 소양교 남단에서 시작해 소양천을 따라 걷다가 덕진구 전미동 부근에서 만경강을 만나 익산, 김제 방향으로 만경강을 따라간다.   

완주군 용진면 초포가든 쪽에서 둑길을 거슬러 동쪽으로 올라가면 단암사를 지나 소양면 소재지를 잇는 한적한 마실길도 즐길 수 있다. 

만경강에서 하천 식생이 가장 발달한 신천습지. 많은 하중도(河中島)가 형성돼 멸종위기종인 가시연꽃 군락 등 다양한 습생식물과 식물종이 분포한다.

소양천과 고산천이 만나는 완주군 삼례읍 구와리 회포대교에서 하리교까지는 약 2km에 걸쳐 신천습지다,

멸종위기종인 가시연꽃을 비롯해 수많은 식물들이 무성한 하천습지는, 아예 전문적인 생태탐사에 나서지 않는 한 다 즐길 수가 없다. 

 삼례읍 바깥 언덕 비비정은, 백사장에 기러기 내려앉는 모습이 장관이라는 비비낙안(飛飛落雁)을 선사한다. 비비정에는, 농가레스토랑이 있고, 폐선된 철교 위 열차 레스토랑이 있어서 옛 철교와 새로 난 철교의 풍경을 비교할 수 있다. 

 비비정에서 익산 춘포를 지나 서쪽으로 나가는 강 양편은 둑 위의 포장도로와 둑 아래 자전거길 말고도 강변의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작은 공원과 생태탐방로들이 있다.

 익산 춘포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驛舍)라는 춘포역사(등록문화재 210호)를 둘러볼 수 있다. 1910년대 소규모 철도역사의 전형을 보여주는 전라선 춘포역은 익산 최대 곡창지 춘포가 겪어 온 수탈의 역사를 대표하는 건물이다.

  1914년 건립 당시 ‘넓은 들’이란 의미의 대장촌이란 지역명을 따 당초 대장역(大場驛)으로 명명됐다가 1996년 춘포역으로 바뀐 뒤 지난 2011년 5월 폐지됐다. 

삼례 비비정은 백사장에 기러기 내려앉는 모습이 장관이라는 비비낙안(飛飛落雁)을 품고 있다.

 익산 춘포와 김제 백구 사이에는 다리가 있어서 사람이든 차량이든 강을 건널 수 있다.  김제 백구면 백구리는 겨울 새벽이 아름답다. 물안개 가득히 피어오르고 철새들이 솟구쳐 난다. 봄철에는 벚꽃이 둑방길을 멋지게 수놓을 뿐 아니라 갈대숲의 흔들림도 좋다. 강 하류인 김제시 쪽은 상류와 다르게 갈대숲을 즐길 수 있는 산책로가 충분히 나 있다. 갈대숲에 깃든 고라니들을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깊이 더 들어가 걸어도 좋다.

 둑방길을 따라 더 내려가 김제시 청하면 동지산리에 닿으면 만경강 하류다. 늦은 봄 아침 안개가 사이로 일출이 일품인 곳이다. 거의 직각에 가깝게 굽이치는 강어귀에 동지산마을이 있다. 만경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이곳에도 김제, 군산, 옥구를 오가는 나루터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흔적이 없다. 해마다 음력 3월 열엿새에 덕성사(德成寺)에서 모시는 용왕제가 열려 이곳이 찝찔한 간내 풍기는 어민들의 포구였음을 짐작할 뿐이다. 

 동지산 옆 갈산마을은 옛 포구다. 갈산 포구는 서해와 접하고 있어 고군산열도와 왕래가 빈번했다. 마을 뒷산에 수백 년 된 칡나무가 있어서 ‘칡매’라고 하다가 ‘칡뫼’라는 뜻의 ‘갈산(葛山)’이 되었다고 한다. 

 청하면의 ‘청하(靑蝦)’는 청하면 대청리의 청하산(56m)에서 딴 이름이라고 한다. 산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낮아서 언덕에 가까운데, 새우 모양을 닮은 연못 ‘하소(蝦沼)’가 있어서 산 이름도 청하산이 됐다. 청하산 자락 새우의 머리에 해당하는 위치에 하소백련지로 유명한 청운사(靑雲寺)가 자리 잡고 있다. 조선 말엽 한 고승이 충청도 계룡산에서 바라보니 청하산에서 서광이 비쳤다 해서 이곳을 길지로 여겨 중생들을 극락으로 인도하겠다는 서원을 품고 창건한 절이라고 전해진다. 

망둑어 낚시꾼들로 북적댔던 옛 만경대교는 새창이 다리라고 불렀다. 지금은 새로 난 다리 둘이 나란히 더 있다.

청하산을 지나 아래 옛 만경교가 있는 김제 청하면 신창마을은 망둑어*1)로 유명했다. 신창마을은 해마다 가을이면 망둑어 낚시꾼들로 북적댔다. 신창은 ‘징게맹갱외에밋들’의 젖줄인 만경강의 하류, 군산과 김제를 오가는 뱃길의 길목이다. 조선을 강점했던 일제가 ‘징게맹갱외에밋들’에서 수탈한 미곡을 나룻배를 이용해 군산으로 실어 날랐던 곳이 바로 여기였다.

 1905년을 전후해 일본인 농장주와 상인들이 이 근방에 거주하게 되자 이내 시장이 들어섰고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새로 생긴 나루터라는 뜻의 ‘새창’이 나중에 ‘신창(新艙)’이라는 한자식 지명으로 바뀌었다. 

 강변길을 따라서 다리품을 팔며 내려가다 강 하구에 비스듬히 누운 어선들의 풍경이 마음에 짠하다. 저 아래 바다로 나가는 길을 새만금방조제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김행인(杏仁길 안내자,시인)     

*1)‘망둥이’라고도 불리는 망둑어는 머리 위로 뚝 불거져 나온 눈 때문에 한자어로는 ‘망동어(望瞳魚)’라고 한다. 흔히 말하는 ‘망둥어’는 맞는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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