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밥 좀 챙겨줘라
엄마는 옛날 사람이다.
한 끼라도 안 챙겨 먹으면 큰일 나는 줄 안다. 내가 다이어트를 하느라 밥을 먹지 않을 때 얼마나 싸웠는지 모른다. 우리 가족은 그래서 다 평균보다 통통하다.
식사 때 우리 가족은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냥 먹는 소리만 나며 다들 조금 전투적으로 먹는 편이다. 나는 이런 분위기가 싫다. 하지만 딱히 할 말이 있지도 않고, 끊임없이 씹어 넘기는데 집중할 뿐이다.
식사 준비는 모두 엄마가 하며, 퇴직하고 오전 소일거리를 다니시느라 10시쯤으로 퇴근이 빠른 아빠는 엄마가 점심즈음 와서 밥을 차릴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린다.
가끔 이러한 풍경에 내가 끼어 있을 때 나는 밥솥에 밥을 하고 햄을 굽고 국을 끓이며 엄마를 기다린다.
밥을 먹다가 가끔 아빠가 "물"이라고 하면 엄마는 일어나서 물을 떠다주며
아빠는 식사가 끝난 후 쓱 일어나서 소파로 가신다.
그릇을 치우거나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과정에서 불편함을 계속 느꼈지만
엄마는 딱히 불만이 없으셨다. 오히려 아빠 편이랄까.
엄마가 없을 때는 나에게 밥을 차리는 역할이 자연스레 넘어온다.
저녁에 아빠 찌개 좀 데워 드려라.
아빠 고기 좀 볶아 드려라.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끝까지 고기를 볶지 않았고
아빠가 화난 눈으로 날 보았던 게 기억난다.
고추장 애호박찌개도 챙겨드리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 그거 좋아하시는데 왜 안 챙겨줬냐고 혼났다.
나는 집을 떠나 자취하며
요리하지 않는 어른으로 자랐고
집을 떠난 이유 중 하나는 더 이상 저런 과정에 일조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있다.
이번에 모녀 여행을 떠나며
아빠. 우리 여행 간 동안 계획이 있어?
라고 했더니 아빠는 끼니를 때울 계획만 이야기했다.
아빠에게 엄마의 부재는 밥이라는 뜻 같아서
나는 화나고 슬펐다.
끼니를 혼자 챙기는 건 성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이란 말인가.
아빠를 무작정 욕하고 싶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이 부분에서만은 나는 양보할 수 없어서 여러 번 부딪혔고 요새는 가끔 취사도 눌러놓으시고, 김치볶음밥까지 가능하고, 가아끔 설거지도 한다.
내 자취방에 며칠 놀러 온 엄마는 끼니마다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재밌고 편하다며 좋아하셨다.
할아버지 병간호를 하던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많이 슬퍼하셨지만 내 생에 이렇게 몸이 편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