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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그리hangree Jun 21. 2023

미역국

  생일 하면 생각나는 음식은 단연코 미역국이다. 한국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주인공 세연은 자신의 생일에 미역국을 끓이지만, 아이들 시험 보는데 미끄러지려 그러느냐며 타박만 받는다. 영화에서는 가족이 내 생일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끓인 미역국으로 인해 잔소리를 듣고 기분도 상한다. 나 역시도 가끔 생일날은 미역국은커녕 밥상을 차리기도 싫다. 왜냐하면 몸조리할 때 평생 먹을 미역국을 다 먹은 것 같으니 말이다.

  나에게는 아이가 셋 있다. 벌써 스무 살이 된 첫째를 보니 결혼한 지 벌써 20년이 넘은 것이다. 그렇게 오래되었구나. 세 명의 아이를 낳을 때마다 엄마는 미역국을 지겹도록 끓여주셨다. 지금 생각하니 앞으로 있을 내 생일 동안 끓일 것을 미리 끓여주셨던 것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아무튼 평생 먹을 미역국을 먹은 느낌이다.

  아이를 낳고 기본적으로 일주일은 미역국을 먹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려면 미역국이 좋다고 하니 두 달 가까이는 미역국을 먹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삼시세끼를 모두 먹으면서도 젖이 잘 나오지 않을까 봐 사골국물을 넣고 미역국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사골을 몇 날 며칠을 먹으면 물리고 싫을 만도 한데, 그때 먹었던 미역국들은 하나도 느끼하거나 지겹지 않았다. 아이 낳는 게 체질이라고 할 정도로 일반 열두 시간씩 진통하는 산모와는 다르게 셋 다 6시간 이내에 낳았는데, 게다가 미역국도 지겹지 않고 잘 먹는 걸 본 주변 사람들은 더욱더 놀란 건 아닌지 모르겠다. 

  결혼하고 나서 가장 싫은 일 중의 하나가 내 생일날 내 미역국을 끓이는 일이다. 가끔 지난 20년 동안 서너 번 정도는 남편이 끓여준 미역국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처음 내 생일엔 미역국을 끓여준다고선 미역을 한 봉지 다 물에 불린 일이 있었다. 결과는 어떠했을지 뻔하지 않은가. 기본 미역국 한 봉지가 40인분인데, 다 불렸으니 그릇에 넘치다 못해 산을 이루었다. 남자들은 도대체 봉지에 용량이 똑똑히 적혀있는데, 다 쏟아붓는 것인가. 며칠 동안 미역국이며 미역으로 할 수 있는 미역 초무침, 미역 라면 등을 해 먹었던 것 같다. 

  알다시피 마른미역은 용량 가늠이 쉽지 않다. 손으로 한 번 정도 뜯으면 1인분이 된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너무 적은 것 같아서 둘이 먹을 미역도 서너 번은 잘라서 불리기 일쑤다. 불려서 너무 많다 싶을 때는 애초에 밀폐용기에 덜어서 놓고 냄비에 적당한 용량만큼만 하는 걸 추천한다. 오래 끓여놓고 먹으면 불어서 부드럽다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너무 오래 끓이면 맨날 똑같은 국만 먹는다고 타박받기 쉽다.

  미역국은 미역 이외 재료에 따라서도 국이 달라진다. 대체로 많이 넣는 재료는 소고기다. 소고기를 넣고 국을 끓일 때는 고기를 먼저 마늘과 기름에 한 번 볶고 미역을 넣는 경우가 많다. 고기가 좀 더 부드럽고 맛있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참치 미역국, 가자미 미역국, 홍합 미역국, 바지락 미역국 등 해산물을 이용해서 만드는 경우가 많다. 미역과 잘 어울리는 해산물들이라 그런 듯하다. 이런 해산물들과는 따로 볶지 않고 미역을 함께 넣고 끓이는 일이 많다.

  내가 어려서 먹은 미역국은 바지락 미역국이다. 지금 생각하니 소고기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그래서인지 엄마가 더 잘 끓여주셨던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든다. 어린 시절 누구나 가난했듯이 증조할머니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신 엄마로서는 대가족의 음식을 감당하기에 쉽지 않았으리라 상상해본다.

  결혼 후 시댁에서 제사를 지낼 때 굴 미역국을 처음 먹었다. 충청도 지역에는 제사에 미역국을 올린다는 것도 신기했고, 굴을 넣은 미역국도 생소했다. 그런데 정말 맛있었다. 자정이 넘어서 제사를 다 치르고 먹는 미역국은 정말 꿀맛이었다. 굴을 좋아하지 않는 나였다. 친정에서는 굴은 생굴을 먹거나 김장에 넣는 정도였다. 우리 집에 와서는 굴은 사지 않는다. 아이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굴 값이 그리 만만치 않다. 굴 미역국은 시댁에서 먹는 특별식이 되었다.

  요즘처럼 더운 날에는 오이를 넣고 미역냉국을 자주 해 먹는다. 새콤하게 식초를 듬뿍 넣고 전통 간장을 넣고 간을 해 시원한 얼음과 함께 내면 무더위를 물리칠 정도로 개운하다. 오이가 많은 여름에는 무얼 해 먹을까 고민할 새 없이 미역냉국을 먹기 때문에 자주 만드는 만큼 아이들도 오이가 들어간 미역냉국을 잘 먹는다. 특히, 큰아들과 더 큰아들인 남편은 식초를 보통보다 더 많이 넣어 먹는다. 잘 먹어서 얼마나 이쁜지 모른다. 엉덩이라도 두드려주고 싶은 충동이 든다.

  생일 외에는 미역국을 잘 하지 않지만, 가끔 별미로 할 때면 누구 생일이냐고 묻는다. 그만큼 생일을 대표하는 미역국이지만 영양 면에서나 건강 면에서 정말 추천할만한 국이다. 어느 한 음식을 했을 때 생각나는 누군가가 있다면 정말 행복한 일이 아닌가. 요리할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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