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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그리hangree Jun 23. 2023

오이볶음 들어봤니?


  오이만 보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오이지는 아니요, 오이소박이도 아니다. 알고는 있는가. 바로 오이 볶음이다. 오이를 소금에 절여 간단하게 볶는 요리다. 오이를 볶아 먹는다는 말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이 있으리라. 그러나 그렇지도 않다. 생각보다 오이볶음은 대중화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인터넷 초록창에 ‘오이볶음’이라고 검색을 하면 내가 알던 오이볶음 음식이 죽 늘어선다. 어, 예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어쩜 이렇게 많은 오이볶음들이 소환되어 블로그를 수놓고 있는 것인가. 내 주변에는 오이볶음이라고 하면, “오이를 볶아서 먹는다고?”라며 의아해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리고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검색창으로 아무리 오이볶음을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던가. 나만 알던 레시피라고 할 수 없는 듯 이 요리는 너무 흔해졌다. 다행인 건 레시피를 알아도 추억이라고 하려면 예전의 기억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나마 다행이다.

  오이볶음은 가장 먹고 싶은 추억의 음식이다. 추억의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엄마가 해준 제철 음식 중 가장 생각이 나기 때문이리라. 엄마가 해준 음식들은 무언가 큰 게 없다. 소소하고 간단한 음식들이 마음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오이가 나오는 5월 무렵부터는 언제 오이볶음 한 번 해 먹어 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당연스레 하게 된다.

  직접 따지 않은 오이에서는 엄마의 맛을 만들기 어렵다. 오이지용으로 묶어 반 접씩 파는 오이조차도 내가 생각한 오이보다 크다. 볶음용으로 만들려면 오이는 정말 작은 사이즈의 애오이가 필요하다. 엄마의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 두 번째가 바로 크기를 맞춰 만드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에서 파는 일반 오이 가운데 그래도 작아 보이는 몇 개를 추려 볶음을 만들자면 맛이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정도다.

  친정집에서 오이볶음을 한다는 건 행운이다. 비닐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엄마의 손길이 닿은 오이 넝쿨이 노끈으로 하나하나 하우스 기둥 위쪽과 연결되어 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는지 넝쿨과 흙에는 습기가 있다. 너무 더워도 안되니 하우스 문을 중심으로 양쪽에 손잡이로 된 창문이 있다. 창문처럼 열었다 닫았다 하며 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 시골에 산다는 건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 부지런해야 건강한 채소들을 먹을 수 있게 키운다는 것이다.

  하우스 속 따듯한 온기를 품은 작은 오이를 몇 개 따 본다. 시장의 그것처럼 너무 크면 보기 안 좋다. 가장 작은 듯 하지만 어느 정도 자란 오이를 선별한다. 어차피 너무 커버리면 노각으로 먹을 수밖에 없어 따는 길에 모두 다 따라고 엄마의 뒤늦은 잔소리가 귀에 박힌다. 알았다며 채소용 통에 적당히 커버린 오이를 모두 딴다. 나중에 선별해야지, 라며 담으면 금세 한가득이다.

  가끔 우리 집 베란다에 오이나 토마토를 키워보고 싶다고 모종을 몇 개 가져간 일이 있었다. 예상했겠지만, 모두 실패였다. 아무리 창문을 모두 열어놓고 키운다고 해도 웃자라기만 하고 한 여름의 뜨거운 햇볕은 우리 베란다에 풍족하지 않았다. 길쭉한 이파리에 변변찮은 햇살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밖으로만 나가려 목을 죽 늘였을까. 나 닮은 키 크고 싱거운 잎사귀와 줄기만 남기고 그냥 그렇게 열매 하나 맺어보지 못한 채 말라갔다. 혹은 썩어갔다. 모종은 밭에서 키워야 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오이를 따서는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야 한다. 오이의 따가운 가시 부분을 제거하고 겉 표면을 보드라워지게 닦는다. 농약이 걱정된다면 물에 담가 식초를 조금 넣고 5분 정도 지난 후 꺼내도 좋다. 물기가 어느 정도 가신다면 긴 오이를 도마에 올리고 동그란 모양으로 얇게 썰어낸다. 얇을수록 맛있다는 엄마의 말에 잘하지 못하는 칼질을 더욱 얇게 저며본다. 얇아야 소금에도 잘 절여지고 물이 잘 빠진다. 작은 오이 다섯 개 정도는 되어야 한 접시가 나올까 싶을 정도로 양이 적다. 많이 먹고 싶다면 오이 양을 조금 더 많이 하는 것도 좋겠다.

  절일 그릇을 가져와 썬 오이를 담고 소금을 뿌린다. 개인적으로는 굵은소금으로 해도 나쁘진 않을 것 같지만, 굵은 만큼 녹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니 일반 소금을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적당량을 넣으라고 말하고 싶지만, 세 꼬집 정도를 넣으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절이고 물이 좀 생겼다 싶을 때 오이 맛을 보라. 만약 싱겁다면 조금 더 넣고, 짜다면 물에 헹궈 짜면 된다. 아마도 짠 것보다는 싱거운 게 더 나으리라. 볶을 때 조금 더 간을 해도 될 테니.

  좀 전에 잠시 언급했지만, 오이에 물이 많이 나온다면 다 절여진 것이다. 면보자기에 넣고 짜도 좋지만, 오이나 오이지 등은 작은 양파망을 잘 뒀다가 사용하면 좋다. 물기가 없도록 꼬옥 누르면 물기가 엄청 나온다. 오이에는 수분이 많으므로 등산이나 운동을 할 때 많이 먹어도 좋다고 하니, 그만큼 수분보충에 좋은 채소가 아닐까 싶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손으로 꼭 짜는 행위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너무 아프다. 아이를 낳고 손빨래를 많이 할 때 마디 사이의 힘이 약해진 건 아닐까. 그래도 맛있는 오이볶음을 위해 조금만 더 힘을 내본다.

  이제 마지막 차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짠 오이를 넣는다. 기름을 넣자마자 오이를 넣기보다는 프라이팬이 조금 달궈져 있는 상태일 때 오이를 넣는 것이 좋다. 조금 튀겨지는 듯한 느낌으로 오이를 넣어주면 빠른 시일 내에 볶을 수 있다. 지글지글 소리를 들으면서 오이가 골고루 볶아진 것 같다면 재빠르게 오이 프라이팬을 차가운 볼 안에 넣는다. 프라이팬을 통으로 찬 곳에 넣으면 오이는 식으면서 초록색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다. 뜨겁게 그냥 놔두면 오이는 조금씩 누레지고 색이 이쁘지 않다.

  소울푸드인 오이볶음을 먹어보자. 오이만 보면 다양한 요리가 생각나지만, 그래도 1번으로 생각나는 오이볶음 한 젓가락에 오독오독 씹히며 함께 어린 시절의 여름 비닐하우스를 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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