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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그리 유경미 Oct 09. 2024

꽃처럼 피어나다

한여름의 화작

  공연 포스터를 본다. 보라, 분홍, 살구색 모란꽃이 모였다. 활짝 피어난 꽃들의 자태는 언제나 아름답다. 특히, 모란은 풍성한 꽃잎들이 함께 일어나 춤을 추는 느낌이다. 누구의 그늘에 가려지지 않고 그대로 피어나는 꽃들에 감사를 표한다.     

  동인천이 들썩인다. 조용하던 길거리가 그날만큼은 떠들썩하고 들뜬 느낌이다. 교복 입은 학생들의 모습과 꽃다발을 들고 찾은 사람들의 발길이 설렌다. 인천교육문화회관이 있어 학생들의 공연을 볼 수 있다. 인천대중예술고등학교 실용음악과의 정기공연 ‘화작’을 보러 왔다.

  인천대중예술고는 2020년 개교한 국내 최초의 대중예술 공립 특성화고등학교다. 과거 운봉공고 자리에 위치하고 있어 이미지가 그리 좋지 않지만, 개교 이후에 경쟁률은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 대중문화의 관심은 높아지고 K-Pop 등의 입지가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자신의 자리에서 꿈을 위해 조금씩 노력해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볼 때마다 고맙다.

  누구든 처음의 시절이 있다. 낯설고 서툰 몸동작에서 처음이구나 싶은 때가 있다. 아기를 처음 낳고 첫 목욕을 할 때 아기 엄마는 아무 일도 못하고 굳은 자세로 몸이 풀어지지 않았다. 아기도 이 세상이 처음이겠지만, 엄마도 처음 엄마가 되는 순간이었다. 할 줄 모르는 상황에 친정엄마는 아기의 목을 가누지 못하는 초보 엄마에게 잘 받쳐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직접 방법을 보여주며 엄마는 또 하나 배워나간다. 아기를 낳아 제 몸 가누기도 어려운 엄마의 몸이지만, 돌봐내야 할 아기가 있으니 무조건적으로 배운다.

  목욕통에 아기 몸이 들어갈 정도의 물을 담가본다. 온도가 맞는지 손으로 물을 만져본다. 아기를 왼팔로 받치고 손으로는 아기의 목이 젖혀지지 않도록 하고, 손가락은 머리를 잡아준다. 우선 머리를 감는데, 놀라지 않도록 물을 조금만 묻혀 아기의 반응을 살핀다. 눈을 마주치는 건 엄마와의 중요한 교감이다. 아기 샴푸로 머리에 거품을 내고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잘 씻는다. 그 후 욕조에 아이를 넣는다. 3킬로 남짓한 아기의 모습은 작은 씨앗 같다.

  욕조 안에 있는 아기가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준다. 아기가 물에 닿는 순간 의지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손을 휘두른다. 어머니의 양수와 비슷한 느낌인 걸 알아서일까. 물속에서 아이들은 조금 더 자유롭다. 놀이처럼 즐거운 목욕을 마칠 수 있도록 구석구석 닦되 자연스러워야 한다. 처음엔 어색할지라도 일상이 되고 반복되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고 편안해지리라. 아기가 힘주다가 모유나 분유 먹은 것이 올라올 수 있다. 놀라지 마라. 다 그렇게 지나는 일이다. 그냥 닦아주면 될 일이다.

  농부가 씨앗을 뿌릴 때 씨앗은 땅을 처음 만난다. 얼마나 놀라고 새로움의 연속일까. 그도 처음 흙속에 들어가 뿌리를 내릴 때 어딘지 몰라 여기저기로 뻗어나갈 것이다. 사방으로 어디든 갈 수 있다. 씨앗은 친정 엄마가 없어서 배우지 못한다. 하지만 본성이 있어 어떻게 해야 할 지 무의식적으로 안다. 가야 할 곳이 아니라도 괜찮다. 다른 방향으로 틀 수 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커지리라. 성장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키워나갈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리라. 

  공연 서두에 교장 선생님의 응원 인사말이 있었다. 선생님은 “오늘의 씨앗에게 물을 주고, 햇빛을 쬐어주면 더 성장해나갈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라며 학생들을 응원했다. 학교는 배우는 곳이다. 국어, 수학, 영어만 배우는 곳은 아니다. 학교의 교칙, 인간관계, 예절 등을 배우면서 아이들을 큰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미리 연습을 하는 곳이라고 할까. 농부가 씨앗을 뿌리고, 씨앗은 알아서 본성으로 커 나간다고 생각하겠지만 농부의 역할이 크다. 농부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모두 다 잘 길러낼 수는 없다. 날씨에 따라서 바뀌기도 하고, 주변 환경의 변화에도 예민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작물을 대하는 농부의 마음은 항상 같을 것이다. 잘 커갈 수 있도록 애쓰는 사랑의 마음이 선생님과 다를 바 없다.

  농부인 선생님 손에서 키워지는 씨앗과 같은 아이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한 동작, 한 동작에서 노력의 흔적이 엿보인다. 빠른 음악은 음악대로, 느린 템포의 곡은 느린대로 학생들의 애정을 묻혀 몸짓을 키워낸다. 지금의 공연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아이들을 성장하는 기반이 되리라는 확고한 마음은 생긴다. 무대 아래에서 바라보는 선생님들이 그러하리라. 한 학기 동안 연습하면서 예전보다는 실력이 나아질 것이라 믿을 것이다.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고자 함께 공연을 준비했으리라.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스텝이 되어 숨어있는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지도만이 가르침의 다라고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이 꽃처럼 피어난다. 누구보다도 화려하게 조명을 뒤흔든다. 씨앗이라 생각했던 부모들은 어느새 꽃으로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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