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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그리 유경미 Oct 01. 2024

바다낚시터에서

아는 남자의 바람

  두 번째 파도가 넘실거린다. 거센 속도로 보트가 지나간다. 여러 바퀴를 도는 보트의 선장은 더욱 강한 파도로 바닷물을 휘저으려 애쓴다. 바다 끝자락에 서 있는 남자 앞으로 두꺼운 파도 더미가 철썩 부딪친다.

  오랜만에 바다 낚시터에 왔다. 아는 남자의 옛 취미다. 바다 낚시터라 하면 바닷가 옆에 공간을 배치하고, 바다를 저수지 크기만큼 조성해, 가장자리에 자리를 두고 낚시할 수 있게 만든 공간이다. 예전부터 낚시는 남자들만의 공간이요, 아버지들의 일상으로부터 도피처였다. 하지만 근래엔 캠핑 대신 낚시를 와서 고기를 구워 먹거나 여가를 즐기는 가족들로 여자와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 예로 몇 년 전 아는 남자를 따라왔을 때는 여자 화장실이 거의 없거나 있어도 재래식인 경우가 많았는데, 오늘 온 화장실은 시원한 에어컨까지 틀어져 있었다.

  아침 7시에 출발해서 8시 무렵 바다 낚시터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늦게 도착했다. 너무 오랜만인지라 날씨 예보에서 연신 소나기라고 떠드는 덕에 갈등하게 된 탓도 있거니와 어쩌면 낚시 메이트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여간 집 밖을 탈출한 이후에는 놀러 가는 아이마냥 좋아하는 남자의 입꼬리를 언뜻 보았다. 직접 물어보면 아니라고 발뺌을 할 지도 모르겠다. 올해 들어 좋지 않은 일은 다 나한테만 닥쳐오는 듯했고 휩쓸리지 않으려 열심히 서로의 기둥을 붙잡고 헤어 나오기 바빴다. 서로가 없었다면 이렇게 9월에 이르지 못했을 거라는, 잘 이겨 나왔음을 낚시터 올 때까지 성토했다.

  낚시터 물 한가운데에는 잡혀있는 바닷물고기들이 있다. 하루에 두 번 아침 아홉 시와 세 시경에는 물고기들을 꺼내는 이벤트가 있다. 두 명의 주인이 보트를 타고 가운데 어망으로 가 뜰채로 물고기를 꺼낸다. 한 바퀴를 뱅그르르 도는 낚시인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지는 순간이다. 참돔은 물론 농어나 우럭, 황돔까지 나온다. 그 많은 물고기들이 아는 남자의 낚시에 모두 잡혔으면 하는 바람이지만은 어디 그럴 수 있을까. 단 한 마리라도 너에게 잡힐 의향이 있음을 내비치는 입질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아주 소박한 소원이 생길 지경이다. 

  물고기들을 다 꺼낸 주인들은 보트를 힘껏 이동해 파도를 일으킨다. 작은 바다의 자연현상을 일으키는 조물주와도 같다. 물속에 숨어있을 돔이 낚시꾼들의 움직임에 포착되길 기원하듯 온 힘을 다한다. 이벤트 물결은 이십여 분 여파를 몰아 파도의 들썩임이 유지된다. 문득 해변을 걸을 때 ‘철썩’하고 다가오는 바닷물 같았다. 길을 걷지 않고 평상에 앉아있으나 걷는 느낌이랄까. 파도로 나의 마음을 ‘들썩’이는 녀석이 지난 여름 바다로 피서 한 번 가보지 못한 위로를 하고 있었다.

  다닥다닥 붙은 오두막들 앞에 남자들은 하나의 낚싯대를 쉼 없이 물속에 ‘담갔다 꺼냈다’를 반복한다. 물고기 방류작업이 끝나가면 다시 처음의 고요한 바다로 돌아온다. 물 한가운데 물레방아가 유일하게 한적함을 없애준다. 팽글팽글 돌아가는 물레방아의 소리를 들으며 오두막 사이로 들어오는 촉촉한 바닷바람을 맞고 아는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아니 어떤 생각을 지우고 있는가. 이 남자뿐만 아니라 이곳에 터를 잡은 모든 남자들의 고단함은 무엇이란 말인가.

  들썩이는 찌를 바라본다. 보이지 않는 운을 빌고, 미끼를 끼우며 활력을 찾고자 하며, 다시 낚싯대를 던지며 더 나은 미래를 살고자 한다. 이는 자신만을 위한 운은 아닐 것이리라. 지금까지 살아온 남자의 세월 속에서 함께 한 가족들 간의 세월도 포함이리라. 고요한 바다 낚시터 위로 침착함을 잃지 않고, 물속으로 억척스럽게 헤엄치는 바닷물고기들처럼 자신들도 살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많지 않은 운이 물고기 수에 비례하여 걷어 올려질 때 인생을 승리하는 듯한 쾌감을 느끼며 앞으로의 하루를 일주일을 일 년을 버텨갈 뿐일지도 모르겠다.

  아는 남자 역시 이 하루가 단지 낚시에서 끝나고 말 일은 아닐지다. 미끼를 매번 먹어 치우는 물고기들이 매번 잡히지는 않는다. 그러면 좋겠지만 나의 먹이만 바라보지도 않는 물고기를 한탄할 수 있다. 그 또한 남자의 탓이 아닐 것이다. 세상이 그냥 그런 것이다. 허탈한 빈 낚싯대에 그나마 입질도 여러 번 있었다는 마음을 품으면 다행이다. 다 잘되지는 않으리라. 남자의 허탕으로 다음엔 큰 대어를 낚을지 누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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