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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그리hangree Jul 06. 2023

발골의 기쁨

닭뼈 바르기

  언젠가 가족들과 춘천에 간 일이 있다. 춘천, 하면 생각나는 음식은? 그렇다. 바로 닭갈비다. 닭요리를 좋아하는 데 “우리 닭갈비는 한 번 먹어봐야 하지 않겠냐.”며 근처 식당을 찾았다. 마침 그곳에 간 식당은 닭갈비가 메뉴였다. 그러고 보니 대충 동네를 둘러봐도 식당들의 메뉴는 온통 닭갈비와 막국수였던 게 함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디가 잘하는지 알 수 없던 상황에서 눈치껏 식당을 골랐어야 했다. SNS, 맛집 검색도 안하는 성격이라 그냥 들어간 장소였다.

  결과는 처참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닭갈비라 생각하고 들어간 식당의 닭갈비는 무언가 달랐다. 철판 닭갈비이기는 했으나 모양새가 푸짐하지 않았고, 채소 듬뿍 올라간 닭갈비의 모습이 아니었다. 확실히 맛집이 있기는 한가 생각이 들었다. 눈썰미가 없는 데다가 맛있는 가게를 찾는 실력조차 없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를 가서 맛집을 줄 서서 먹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이상한 곳만 찾아서 들어가는 건 아닌가 싶다.

  요즘 정육점을 가면 닭갈비 양념을 해 놓는 곳이 가끔 있다. 시장에 요즘 자주 가는 정육점에는 고기에 맞게 고추장 양념, 간장양념 등으로 이미 재워둔 고기들을 판다. 내가 양념하는 게 좋기는 하지만, 너무 바쁘거나 집에 가서 양념을 만들어 먹기 귀찮을 때는 가끔 이용한다. 닭뼈를 발라서 양념을 하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기대하지 않지만, 편하니 어찌 이용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몇 해 전 직접 닭갈비를 해 먹으려 도전한 적 있다. 닭갈비를 하려면 뼈를 바르는 일부터 해야 한다. 예전에 갔던 정육점에서는 뼈를 발라주기도 했었는데 어느 날엔가 부터 닭을 팔지 않아 발길을 끊어야 했다. 그러다가 텔레비전에서 닭뼈를 발골하는 장면이 인상 깊어 자세히 본 일이 있다. 그렇다. 주부들의 선생님인 백 사장님이 뼈를 빼고 닭 스테이크를 해 먹는 모습이 있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얼마나 해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닭을 두 마리를 사 들고 집에 왔다. 우선 닭이 좀 커야 했다. 내가 발골하는 중에 뼈에서 살이 많이 분리되지 않을지도 모르니 조금이라도 큰 덩어리가 나오려면 닭이 큰 건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발골의 핵심은 뼈의 관절을 잘 이용하는 것이었다. 뼈와 살이 연결되어 있는 투명한 근육들을 잘 잘라주기만 하면 된다. 관절을 꺾은 채 사이에서 빼내면 뼈가 쏙 올라온다. 목뼈나 날개 부분들은 뼈를 살려 분리만 해 두고 옆에 그대로 익혀 먹었다. 대신 닭가슴살이나 닭다리 등은 소금, 후추로 양념 밑간을 해서 재워 둔다.

  첫 닭을 분해할 때는 한 시간은 족히 걸린 듯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뼈를 꺼내면서 즐거움이 있었다는 거다. 절대로 나올 수 없었을 것 같았던 뼈들이 힘줄과 근육의 연결부위를 잘라주면서 빠져나오는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절대로 해볼 수 없었던 분야에 도전해 성공했다는 느낌이랄까. 백 선생님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거 없다는 생각에 무조건 도전했다. 꽤 오래전 일인데 갑자기 며칠 전 닭갈비를 먹으면서 그때의 기쁨이 생각났다.

  한 마리는 닭 스테이크를 해 먹고, 나머지 한 마리는 잘게 잘라서 여러 채소를 넣고 닭갈비를 해 먹은 기억이 난다. 오랜 시간동안 요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맛은 있었다. 그래도 발골은 다시는 하기 쉽지 않으리라 생각이 든다. 정성이 들어간 요리고 음식이니 맛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하긴 오랜 시간 정성으로도 맛이 없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나의 음식이 그 정도는 아니니 나름 좋았다.

  전에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요리를 할 때 했던 음식만 주구장창 하기도 하니, 이조차 쳇바퀴는 아닐는지 모르겠다. 새로운 도전은 나이가 어리거나 많거나 간에 필요한 일 같다. 40대에 처음 도전하는 일이 부담스럽고 힘든 건 알지만, 어차피 인생은 새로움의 연속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다만 20대는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패기가 있지만, 40대는 많은 일에 연륜이 있다. 어떤 일이든지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리라. 발골은 아니어도 또 다른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있을 미래의 나에게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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