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회식자리였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회식이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결혼 한, 아이를 가진 아빠들이 한 테이블에 모이게 되었다.
요새는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들이 많다. 물론 '정상'과 마찬가지로 '좋은'의 기준을 뚜렷하게 나누기는 쉽지 않지만 그만큼 배우자와 아이를 존중하고 집안일이나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남자들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남자들끼리 모여서 식사 준비나 저녁 장 볼 것, 아이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예비 아빠들과 조언을 주고받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아기를 맞이하게 되는 아빠에게 실용적인 선물을 주는 남자들의 모습도 그렇게 낯설지 않다.
테이블의 대화는 지금 예비아빠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아기방을 꾸미는 이야기, 아기의 밤잠이나 목욕에 대한 경험을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집안일에 대한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경우 소외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잠시 잊곤 한다.
곁에 앉은 그는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그는 신혼이었고, 부부싸움의 감정이 다 정리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신혼부부싸움이 그렇듯이 사소한 일로 벌어진 일이었고, 별일은 아니었다. 아마 귀가 길에 전화 한 통화로 마무리될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테이블에 앉은 결혼 선배들이 보기에는 그건 조금 이해하면 싸우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조금 이해하면 될 일을 왜 다투고 그랬냐고, 집안일은 잘 돕느냐고, 한 두 마디씩 거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원래 자신들의 대화로 돌아갔다. 그의 기분은 여전히 좋아 보이지 않았다.
꼭 나쁜 남편이 된 기분이에요. 저도 잘해주고 싶은데.
그리고 잠시 후 그의 목소리는 나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처럼, 좋은 남편과 나쁜 남편을 나누는 기준은 늘 한편에게는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우리가 잠시 기억하지 못할 뿐이지, 우리는 한 때 많이 부족한 남편이고 아빠였다. 사실 완벽하게 좋은 남편과 아빠는 없다.
신혼 때, 우리도 사소한 일을 가지고 다투고 때로는 상추를 던지고 싸웠으며 그때 던진 상추는 지금까지 아내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잘못된 처신으로 집안을 시끄럽게 하기도 했고, 일에 치여서 가족을 방치하기도 했으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서 많은 갈등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채, 원래 좋은 아빠였던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아직도 여전히 시행착오를 하고 있지 않은가.
동생의 물건을 뺏는 큰아이에게 지나치게 잔소리를 하고, 때때로 아이들에게 화를 내기도 하며, 알게 모르게 아이들을 차별하기도 하고 사소한 일에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육아나 집안일에 대한 대화 사이에서 잊혔을 뿐, 많이 부족한 남편이고 아빠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막 신혼인 그를 탓할 자격이 사실 우리는 없었던 것이다.
저 사람들은 원래 좋은 사람들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가족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고, 제대로 보살피지 않았으며 결혼 생활의 반동안 내 잘못을 모르고 살았다고. 그리고 그렇게 상처를 준 후에야 잘못을 깨닫고 잘하려고 하고 있는 거라고, 마음은 있는데 방법을 몰랐다고. 방법을 천천히 깨달아 가는 거라고 잘해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 나보다 나은 신혼을 보내고 있는 거라고. 방법을 깨달아 갈 거라고. 결코 나쁜 남편이 아니라고.
나는 원래 인생선배나 형 노릇을 잘하는 편은 아니다. 친동생에게도 그랬고 후배나 누구에게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할 뿐, 내가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 줄 만한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기분 좋지 않음이 마치 과거의 나의 모습을 보는 듯했고, 그도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아니면 나 스스로에게 위로가 된 것은 아닐까?
아내가 차를 가지고 나를 데리러 왔다. 집에 도착해보니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시청하느라 아빠의 귀가를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나란히 앉아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가슴 한 편이 찡하게 아파왔다. 나는 자격을 갖춘 아빠가 되고 있는 것인지, 잘하고 있는 것인지. 아이들을 안아주려고 다가갔다가, 아이들의 발차기에 차이고 매달린 아이들에게 목이 졸렸다. 빨리 씻고 오라는 아내의 목소리와 매달리고 밟는 아이들이 문득 고마운 저녁시간이었다.
밤하늘은 맑고 별은 많이 보였다. 아이들은 조금 늦게 귀가한 나 때문에 잘 시간을 훨씬 넘겨 잠들었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오랜만에 아내와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나는 조금 불안하고 들뜬 마음이었지만 아내는 편안해 보였고, 그런 아내의 편안함이 고마웠다. 조곤조곤 아내의 목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편안해졌고, 늦은 밤 아이들의 편안한 숨소리에 마음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는 지금쯤 아내와 화해했으리라. 그리고 분명 나보다 좋은 남편이 되어 갈 것이리라. 그는 행복하게 잠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