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탁에서의 딸의 선언에 시선이 흔들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우리 부부는 단련이 되어있었고, 둘째 아이는 누나의 선언보다는 눈 앞에 있는 식탁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가 입학한 후 얼마 뒤, 아이는 수업시간에 자신의 장래희망을 당당하게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라고 발표했다. 물론 그 전에도 수많은 선언이 있었다. 가수, 운동선수, 무용가,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였던 개그우먼. 그 외에도 수많은 직업 혹은 직업이 아닌 것들이 아이의 입을 통해 나왔고, 그때마다 우리는 그냥 긍정적으로 혹은 조금 무성의하게 반응했다. 사실 아이, 특히 큰아이를 키우면서 수많은 충격과 상식에 어긋나는 것을 목격하고 보고 듣고 있기 때문에 장래희망 정도야 나의 정신적 평화를 해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르바이트'라는 단어가 이상하게도 자꾸 거슬렸다. 분명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딸의 입에서 나온 '아르바이트'라는 단어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아내의 눈치와 충고대로 별 말없이 넘어갔다. 그리고 그 이후로 아이의 장래희망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냥 막연하게 개그우먼이라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인상만 남았다.
공주!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내 질문에 누나의 치마를 입고 있는 아들이 한 대답이다. 큰 소리로 웃고 안아주려고 했지만 아이는 내 두 팔 사이로 치마를 펄럭이며 빠져나갔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나는 우리 아이들이 판사, 검사, 의사, 변호사, 기업가 등이 꼭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냥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 아이들이 의사가 되어서 행복하다면 그것도 괜찮다. 하지만 행복보다 사회적 위상이나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직업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반대할 것 같다. 그래서 귀담아듣지 않는 아이들에게 가끔 지나가는 말을 하곤 한다. 하고 싶은 일 아무거나 해도 된다고,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공부 잘 못해도 괜찮다고. 물론 공부 부분에서는 아내의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가 공부할 때, 문제를 틀리는 것은 지적하지 않는다. 단지, 공부를 할 때의 태도를 지적할 뿐.
그리고 사실 나는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될지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우리 아이들은 특히, 큰아이는 장점이 많고 단점도 분명히 가지고 있으며 잘하는 것도 많고 못하는 것도 많다. 그리고 이런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행동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사람을 잘 판단한다고 평소에 생각한 나도 우리 딸의 정체를 정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냥 막연하게 평범하지 않은 인격체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가끔 자신감 있는 태도로 아이의 교육을 주도하는 부모들을 보면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묘하게 위축되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를 알고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이들은 안정감 있게 행동하고 학교생활에서도 충실하고 성실할 것이며 하루를 정해진 시간표대로 살아가는 사회성도 잘 갖출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양육 태도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일방적으로 좋고, 일방적으로 나쁜 것은 없다. 무엇이든 누구이든 단점과 장점은 공존한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이 상당히 복잡한 동선과 태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다 알고 있는 부모가 되기에는 우리가 아직 부족한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들을 보면 볼수록 아이들이 미지의 존재로 느껴진다.
그래서 아이들의 장래희망을 직업을,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아이들의 손에 맡기기로 했다. 아내는 아이들의 안전만 괜찮다면 기본적인 예절과 규칙만 지킨다면 하루의 생활을 아이들에게 맡기고 있다. 둘째 아이는 오늘 새벽같이 일어나 나를 장난감 방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함께 귀신을 그리고, 그 귀신을 격파하는 놀이를 한참 하다가 놀이방을 나갔다. 아마 누나가 일어나면 상당히 복잡하고 미묘한, 역할놀이를 하다가 누나와 다투고, 울고, 웃고 그렇게 하루를 보낼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일단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분명하고 중요한 것은 아이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부부의 아이이며 아이가 어떻게 성장하든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 것이, 우리에게 작은 기쁨이나 슬픔을 줄 수는 있을지언정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라는 본질을 변하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성적이나 특성 때문에 우리가 이 중요한 사실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부족한 부모일수록 더더욱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 아이가 벽지에 크레파스로 X를 그렸다. 그리고 자랑하러 온 아이에게 화를 내버렸다. 아이의 얼굴은 서운함으로 금방 차올랐고, 눈가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역시 나는 부족한 아빠였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우는 아이를 달래고 안아준 후 스케치북에 마음껏 X를 그리게 해 주고 벽지에 크레파스를 지웠다. 새우를 다져 계란 볶음밥을 만들고, 된장국을 끓였다. 그리고 한 수저씩 아이의 입 속으로 밥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부족한 부모임을 꼭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서귀포는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이른 아침에 해가 뜬 것을 보고 빨래를 내놨는데, 약간 배신감이 들게 하는 날씨였다. 아이들의 키득거림은 아이들과 함께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큰아이는 어제 하루 종일 놀았으니 오늘은 엄마와 함께 수학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해도 뜨기 전에 일어났으니 이른 낮잠에 빠질 것이고 나는 아마 그런 둘째 아이의 곁에 누워 큰아이와 아내가 투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행복해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무엇이 될지 알지는 못하고 짐작도 가지 않지만, 우리의 오늘은 행복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만으로도 집안은 온통 꽉 들어차 있다. 아마 당분간 다른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