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뭐든지 잘 먹는 편이다. 어릴 적에는 잘 먹지 않았던 적도 있다. 어디선가 전해오는 전설처럼 지금 나의 몸을 보고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사실, 나는 중학교까지 항상 몸무게가 미달이었다. 밥을 입에 물고 있으면 씹고 삼키는 것이 밥에 대한 도리 이건만,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밥이라는 것은 도무지 씹어지지도 삼켜지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담아놓은 산더미 같은 밥을 동생 밥그릇에 몰래 올려놓기도 했고, 어머니가 동생은 주지 않고 나에게만 몰래 준 팥빵을 창밖으로 버린 적도 있었다. 나중에 어머니는 창문을 열었다가 수북하게 쌓인 빵 더미를 발견하셨고,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아마 호되게 대가를 치렀을 것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는 하루에 다섯 끼씩, 혹은 세끼 먹고 간식을 두 번씩 먹어치웠고 살이 찌고 덩치가 커지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오랜만에 본 사람들마다 '이제야 사람이 되었다'라고 했을까. 그 이후로 지금까지 그러니까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나는 우리 딸이 인정한 엄청난 잡식성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큰아이는 과도기를 겪기는 했지만, 현재로서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아주 건강한 아이로 자라고 있다. 가리는 것도 없이 고기건, 회건, 밥이건, 빵이건, 야채 건, 과일이건 주는 것이라면 뭐든지 잘 먹는다. 아무거나 잘 먹으니 둘째처럼 응가가 안 나와서 화장실에서 비통한 울음을 울어본 적도 없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하나, 둘, 셋이면 끝이다. 아내가 아주 부러워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둘째 아이는 큰 아이와는 아주 다른 아이로 성장하고 있었다.
둘째 아이는 '밥'만 먹는다. 밥만이라면 아마 아주 정상적인 양만큼은 먹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외에 것들이 입에 들어가면, 정확하게는 입에 들어간 후 거슬리는 식감을 준다면 뱉는다. 처음 아이가 뱉는 것을 보았을 때는 잠시 과도기의 현상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작은 아이는 오늘도 뱉었다.
오늘 아침은 김치, 무채, 멸치볶음, 계란말이였다. 계란말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맛이 나도록 조리했고, 아주 얇은 두께로 말아서 둘째 아이의 식감에 거슬리지 않도록 했다. 접시 위에 계란말이를 올리고 절반만 케첩을 뿌렸다. 큰아이는 케첩을 좋아하지만 둘째 아이는 입에 이물질이 들어가면 역시 뱉기 때문이다. 큰아이는 상이 차려지기 무섭게 달려든다. 둘째는 상이 차려지는 것을 멀리서 보고는 도망간다. 그리고 나는 아이를 체포하기 위해 출동하고, 곧 위협이 시작된다.
너 아침 안 먹으면 이따가 아이스크림 안 줄 거야.
얼마간 먹던 아이가 무엇이 거슬렸는지, 아마 밥 아래에 숨겨놓은 시금치나 김치 조각이었을 것이다, 밥을 뱉었다. 사실 뱉는 순간을 보지는 못했다. 아이의 수저 위에 반찬을 올리고 큰아이에게 물을 챙겨주는 순간 벌어진 일이었다. 둘째는 손바닥 위에 밥의 잔여물을 올려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손바닥을 뒤집어서 식탁 위에 음식물을 문지르려는 순간, 나는 재빠르게 손을 뻗어 아이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
너 자꾸 지저분하게 이러면 누나 방에 못 들어오게 할 거야.
그리고 뒤이어 들린 날카로운 고음의 사자후. 큰아이였다. 둘째의 손바닥을 닦다가 흠칫 놀라고 말았다. 나는 저렇게 저런 말투로 아이를 위협하고 있었구나. 아마 아이들 모두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배우고 있었구나.
어린 시절 동생이 가장 상처 받은 말은 '공부 안 하면 공장에 데려간다'였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상처 받았던 순간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호통 끝에 책가방을 집 밖으로 던진 순간이었다. 특별히 나쁜 의도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어떤 잘못을 깨닫게 하기 위한 극약처방이었을 것이지만 그 일이, 그 순간이 항상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가 태어나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다른 부분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나쁜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둘째의 장난기 어린 표정을 보니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항상 자세히 설명해주고, 솔직하게 말할 것, 과장하거나 겁주지 않고 진솔하고 긍정적으로.
그게 나의 사회생활 원칙이었다. 하지만 나는 정작 집에서 그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식사시간이 끝나고 나는 둘째를 앉혀놓고 밥을 잘 먹어야 누나보다 키도 크고, 뇌 친구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거라고 정말 짧게 설명을 했다. 하지만 아이는 설명 직후의 아빠와의 몸싸움에 관심이 더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에게 설명하면서 스스로 다짐했다. 위협과 협박이라는 너무도 손쉬운 방법에 현혹되지 않겠다고. 어렵고 오래 걸리더라도 설명하고 설득하는 이성적인 아빠가 되겠다고 말이다.
둘째는 인디언 놀이를 한다고 옷을 벗고 뛰어다녔다. 그리고 나는 그런 둘째의 뒤를 쫓으며 '감기 아저씨 온다'라고 아이를 겁주고 있었다. 낮잠 재우기 전, 양치를 하지 않으려는 아이에게는 '너 저기 악당 아저씨처럼 까망 이가 되고 싶니?'라고 위협하고 있었다.
한 순간에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인가 보다.
오랜만에 둘째를 안아서 재웠다. 침대에 눕히자 등을 돌리고 눕는다. 누운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괜스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머리를 쓸어주고 등 위에 손을 얹자 괜히 코끝이 찡해왔다.
오늘 서귀포는 바람이 좀 불기는 했지만 날씨가 아주 좋았다. 멀리 바다까지 그림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서 재빨리 빨래를 해서 널고 아이들이 놀았던 모래놀이를 정리했다. 큰아이는 얌전히 식탁에 앉아 열심히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컴퓨터를 들고 아이 곁에 앉으며 오늘 수학 공부를 시키는 동안만큼은 큰아이에게 결코 화를 내거나 핀잔을 주지 않아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괜찮아 틀리는 게, 시행착오하는 게 당연한 거야. 처음부터 잘하면 그게 비정상인 거지. 그렇지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