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명사] 나이가 들어 늙은 때. 또는 늙은 나이.
외할아버지는 워낙 말씀이 없으셨고 조금 일찍 돌아가셨던 탓에 기억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아주 흐릿한 기억 속에 외할아버지는 늘 내 손을 꼭 잡고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가끔 차가 지나다니는 왕복 이 차선 도로는 잘 포장이 되지 않아 늘 흙먼지가 가득했고, 길가에는 차도 사람도 없었다.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선 개발되기 전의 김포였는데, 길 옆으로는 논이 가득했고, 할아버지의 논은 그 길을 따라 한참 걸어야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다섯 살쯤 되었는데 할아버지는 이따금 지나다니는 차들로부터 나를 보호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손자의 손을 잡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무표정으로 앞만 보고 있었다. 미꾸라지를 잡으러 가는 길이었는데, 내가 잡아 달라고 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부추긴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기억 속의 할아버지는 늘 내 손을 잡고 그렇게 길을 걷고 있었다. 미꾸라지를 잡는 모습도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우리는 길을 걷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손은 거칠고 코를 아릿하게 만드는 담배냄새가 나고 있었으며 할아버지는 한마디 말도 없이 앞만을 응시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기억의 느낌은 나쁘지 않다. 외가 마당 한 편에 채송화 밭의 기억도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채송화 밭 한가운데에서 울고 있었고 잠시 후 할아버지의 거친 손이 눈물을 닦아주고 일으켜주는. 역시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기억해낼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몇 년을 자리에 누워있다가 돌아가셨다. 눈길에 넘어지셨는데 하반신을 사용할 수 없었고, 늘 담배와 소주를 찾으셨다. 그리고 내가 중학교를 들어가는 새해 1월 1일에 돌아가셨다. 이른 아침에 신부님이 오셔서 종부 성사를 주고 가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호흡이 멎으셨고, 손님들이 오기 시작하셨다. 할아버지도 말씀이 많은 편은 아니셨다. 댁으로 찾아가면 곁에 앉혀놓으시긴 하셨지만 그리고 한참 동안 텔레비전만 시청했다. 냉동실에서 박하사탕을 꺼내 주머니 가득 채워주시곤 담배를 입에 무시곤 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박하사탕을 먹다가 밖으로 돌아다니다가 곧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돌아가실 즈음에는 간혹 하시던 말씀도 못하시고 누워서 주무시기만 했다. 얼굴은 부어있었고, 늘 잘 빗어진 머리로 외출하시던 머리카락도 눌려 있었다. 삶의 기운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이따금 이유 없는 화를 내시기도 했고, 잘 이해하지 못할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내 입장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내 삶에서 사라진 외할아버지와는 다르게, 할아버지는 서서히 당신과 내 삶에서 사라져 가셨다.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우리는 집에서 함께 살았는데 거실 없이 방만 두 개였던 반지하방에서 나는 할아버지의 생(生)의 기운이 서서히 사그라드는 것을 필요 이상으로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외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내 삶에서 사라졌다.
동생이 태어나던 날도 할머니는 집에 계셨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자주 집에 오셨고, 할머니가 집에 계신 날이면 어김없이 막걸리 심부름을 하곤 했는데, 어두운 골목을 빨리 지나가기 위한 달음질 때문에 막걸리가 흘러내리면 고소하고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달음질 뒤로 떨어지고 집 앞에 도착하면 할머니는 골목 어귀에서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태우고 계셨다. 그때는 그냥 별 생각이 없었는데, 나중에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어두운 골목에서 심부름 보낸 손자를 기다리는 그 할머니의 모습이, 어두운 그림자가, 할머니의 검고 거친 피부가 할머니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깊이 잠든 새벽, 어머니는 병원에 가야 한다며 나를 깨웠다. 이층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우리를 부탁하고는 며칠 후에 돌아왔는데 어머니의 얼굴도 외할머니의 얼굴처럼 며칠 사이에 거칠어지고 검어졌다. 할머니는 그 뒤로 나의 삶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나는 할머니의 장례에도 참석하지 못했고, 아무것도 물어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와 노년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이따금 꾸중을 듣곤 한다. 노년에 대한 나의 편향된 이미지 때문에. 내가 경험한 노년은 그렇게 건강한 것도, 즐거운 것도, 노년의 지혜가 담긴 것도 아니었다. 그저 시행착오가 오래도록 이어지고 이어져서, 삶의 끝까지 머물러있는 것. 그래서 한없이 힘들고, 지치고, 힘들고 지쳐서 극복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침은 늘 힘이 없고, 목소리는 갈라졌다. 허리는 굽었고, 지금도 종종 말을 듣지 않는 왼편 무릎은 아마 나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롭힐 것이다. 시야는 어둡고 무엇인가를 응시하기 위해서는 안경과 격렬한 의지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따금 아내 앞에서 흉내 내는 나의 노년에는 건강하고 초연한 무엇인가가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아내는 나를 책망한다. 아마도 불안한 것이리라.
사실 나는 누구보다 건강한 삶을 살고 싶다. 아프고 싶지 않고, 내가 아파서 아내를 혹은 아이들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 아이들의 삶에 아주 오래 머물고 싶고, 누구보다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 곁에서 사라지고 싶지 않다. 아주 오래 머물러서 내가 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오래 아이들의 삶 외곽 어디쯤 머물러 있고 싶다. 아내와 여행을 가고 맛있는 차를 끓이고 해질 무렵 지나치게 먼 곳까지 함께 걸어가고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아내와 아이들의 삶에 흔적을 남기기 위해 가능한 오래 웃고 울고 함께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해. 그래서 나의 편향된 노년에 대한 그림을 조금씩 지워나가기 위해.
어느 날 모두의 삶 속에서 갑자기 사라지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