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파도를 뚫고, 바다 깊이 들어섰다. 파도가 너무도 거세서 나를 밀어내는 듯했는데, 파도를 이기고 깊이 들어가니 바다와 한 몸이 된 듯싶었다. 아주 커다란 바다 거북이처럼 다리를 흔들며 헤엄쳤는데, 바다는 나를 자연스럽게 안아주어서, 아주 깊이 푸른색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이 들어서도 힘이 들지 않았다. 나는 아주 깊이 물을 들이마셨다. 바다의 진한 소금향이 온몸으로 퍼져, 조금씩 바다와 하나가 되는 듯했다. 이윽고 바다가 시커멓게 변해버린 그 끝에 용궁이 있었다. 언젠가 케이가 읽어 준 책에서처럼 용궁은 빛나지 않았다. 아주 오래된 건물이었는데, 빛이 없는 곳에서도 뚜렷이 보였다. 용왕이 있는지 별주부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곳에는 예전 친구들도 있었고, 엄마도 있었다. 아빠도 있는 것 같았는데 확실하지는 않았다. 확실한 것은 그곳에 케이가 있다는 것. 케이는 언제나처럼 활짝 크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는 결국 케이에게로 나를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막 케이에게 가 닿기 직전에 나는 잠에서 갑작스럽게 깨어났다. 용궁의 모습이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아름답지는 않지만 편안한,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지만 익숙한 용궁의 냄새가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케이는 오늘도 창밖을 보고 앉아 있었다.
요즘 케이는 늘 창밖을 보고 앉아 있다. 좀처럼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케이의 옆모습은 늘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냥 여느 날보다 늦은 귀가 끝에 케이는 울면서 집으로 들어왔다. 불도 켜지 않은 채, 오열했다. 늘 웃는 모습만 보여주던 케이의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나는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울음소리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나와 좁은 원룸을 채웠다. 원룸에 울음소리가 가득 차자, 눈물 속에 담긴 슬픔이 온 방안을 휘돌아 다녔다. 케이는 보지 못하는 그 회색빛 슬픔이 내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사라지라고 강하게 소리쳤지만 슬픔은 집안을 넓게 돌아 나갈 뿐이었다. 나에게 닿지 않는 곳 멀리 슬픔은 그렇게 돌다가 새벽이 다 되어 좁은 창밖으로 돌아나갔다. 케이는 잠들었는데, 깊이 잠들지 못해서 이따금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엄마를 찾기도 했다.
나는 케이의 엄마를 알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슬픔의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케이는 입을 다물고 하루 종일 창 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침을 시작하는 경쾌한 노래도 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멀리서 케이를 감싸고 있는 슬픔을 향해 분명한 악의를 보일 뿐, 케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엄마는 나와 헤어지기 전까지 늘 용궁에 대해 이야기했다. 용궁이 어딘가에 있다고, 언젠가는 용궁에 가자고. 하지만 그렇게 깊은 바다에 우리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일단 바다에 갈 수가 없었고, 우리는 그렇게 깊은 곳에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방법이 없다고 엄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용궁에 가자는 엄마의 말이 엄마를 살아 있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엄마, 우리 용궁에 가자.
그리고 나는 케이에게 왔다. 정확히 말하면 몇 단계를 거쳐 케이에게 닿은 것이다. 엄마는 아마도 용궁에 가지 않았을까? 엄마는 어떤 방식으로든 용궁에 가고 싶어 했다. 용궁에 가는 것이 죽음의 확정이거나, 죽음의 끝이 용궁에 가 닿는 것일 지라도. 사실 나는 용궁에 가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충분히 살아가고 있었고, 나는 용궁을 알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케이가 전부였다. 적어도 지금은. 그리고 그 이전의 삶은 솔직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엄마와 친구들이 있었고, 주변은 늘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다른 곳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용궁은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또 여과기가 고장 났는지, 물결이 잔잔해졌다. 여과기는 늘 고장이 잦고, 물결은 자주 잔잔해진다. 여과기에서 쏟아지는 물이 잔잔한 흐름을 만들어내고,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나는 늘 서서히 잠이 든다. 하지만 이렇게 여과기가 고장 나면 나는 잠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다. 흰돌들 위로 다리를 움직여 본다. 여과기를 건드리고, 어항의 투명한 벽면도 건드려 본다. 사방으로 허우적거리며 헤엄친다. 케이는 집에 없다. 해는 아직 지지 않고, 여과기는 고장 나고, 물결은 잔잔하다. 아무도 없는 케이의 방은 조용하다. 밖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물의 표면을 뚫고 나에게 와서 닿는다. 물의 표면에서 이미 뭉개진 소리는 나에게 의미가 없다. 애초에 나는 잘 들을 수 없고, 나의 목소리도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다. 다시 돌 아래로 들어가 잠을 청해 보지만 좀처럼 잠은 오지 않는다.
여과기가 고장 나면 케이는 나를 꺼내놓고 새 여과기를 설치해준다. 어항의 물을 버리고 미리 떠놓은 물을 새롭게 갈아준다. 나를 들어 내 등껍질을 닦아주고, 내 코를 만져준다. 그러면 나는 머리를 주억거리며 케이의 하얀 손을 살짝 물어준다. 그러면 케이는 그 높은 웃음소리를 내며 나를 내려놓는다. 어항에 물이 다시 차오르고 새 여과기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케이는 다시 나를 어항 안에 넣는다. 새로 간 물은 조금 답답하고 차갑지만 상관없었다. 케이의 손가락을 살짝 물었던 감촉이 아직 나에게 남아 있으므로. 물은 조금 있으면 따뜻해질 것이고, 여과기의 물은 다시 흐름을 만들어 나를 흔들어 줄 것이므로. 나는 다시 커다란 바위 아래로 들어가 잠이 들 때를 기다리며 케이를 바라본다. 케이가 듣는 노래가 물을 지나 잘 들리지 않는 나의 귀에 와닿을 때까지 가만히 바라본다.
케이가 돌아왔다. 아주 힘겹게 웃으며 나를 들여다봐주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밖은 어두워졌지만 케이는 아주 흐린 불빛만 켠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붉고 푸른 온갖 불빛이 창밖에서 빛나는데, 케이의 얼굴도 온갖 색으로 물들어 간다. 이따금 나를 바라보며 웃음 짓지만, 케이는 끝내 새벽에 될 때까지 여과기가 고장 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를 들어주지도, 등껍질을 닦아주지도 않았고, 나도 케이의 손가락을 살짝 물지 못했다. 새벽에 케이는 잔잔해진 물결을 깨닫지 못한 채 쓰러지듯 잠들어 버렸다.
나는 용궁에 가고 싶었다. 케이와 함께. 숨을 쉬든 쉬지 못하든 상관은 없었다. 용궁의 모습을 케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슬픔도, 여과기도, 온갖 색도 없는 깊고 검은 바다의 용궁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윽고 나의 몸은 서서히 커지고 마침내 케이를 태울 만큼 커졌다. 나는 케이에게 다가가 케이의 손을 정말 살며시 물었다. 그리고 커다랗게 변한 몸에 익숙해질 때까지 케이 곁에 누웠다. 우리는 함께 용궁에 가야 했다. 거센 파도를 이기고 그곳에 닿아서,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나는 케이를 태우고 언젠가 케이가 해준 이야기에서 나오는 별주부처럼 깊은 바닷속으로 갈 것이다. 케이를 기다리는 동안 서서히 등껍질이 말라가고, 케이는 잠결에 문득 나에게 팔을 올렸다. 나는 케이의 팔을 느끼며, 물을 통하지 않고 나에게 닿는 소음들을 느끼며 서서히 잠들어갔다. 우리가 아마도 길지 않은 잠에서 깨어난다면, 케이는 다시 나에게 웃어주고, 나는 케이의 팔을 살며시 물고, 우리는 함께 용궁에 갈 것이다. 아마도 나의 엄마와 케이의 엄마가 있는 그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