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소설

by 지승유 아빠

그가 처음 내 삶에 나타난 건, 이 년 전 여름이었다.


- 오늘은 비가 올 예정이니까. 우산을 꼭 준비하세요.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을 올린 글이었다. 그 글에서 나의 하루는 지극히 평범했고, 아무 일도 없었으며 철저히 혼자였다. 아무도 봐주지 않고,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일상이었고 글이었다. 스스로도 습관적으로 적어 내려갈 뿐, 글을 쓴다는 기계적 행위 외에는 아무런 특별함이 없는 글이었다. 그 해 여름은 지겹도록 더웠고 비가 오지 않았다.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좁은 원룸은 여름 공기에 달궈져 있었고,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저녁에도 도시에는 바람이 불지 않았고, 베란다의 창을 열고 있어도 옆 건물의 실외기 바람만 들어왔다. 밤새도록 에어컨을 켜고, 끄고. 좀처럼 잠이 들지 않는 여름밤들이었다. 엄마가 있는 곳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는데, 좀처럼 더위를 식혀줄 비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여름이었다. 유럽의 어딘가에서는 더위로 노인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했고, 중국 어딘가에서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사람들이 떠내려갔다고 했다. 엄마는 갑자기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지하실에 물이 찰까 봐 연신 걱정의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나에게는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단지 더위를 시켜줄 시원한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열대야는 보름이 넘게 계속되었고, 나의 잠도 보름이 넘게 빼앗겨 버렸다. 그리고 그날 아침 원룸을 나서며, 나는 그의 댓글을 잃었다. 글에 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단지 열대야와 잠이 오지 않는 밤과 계속되는 권태에 대한 이야기만 있을 뿐. 이 사람은 어떻게 비에 대한 것을 알았을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반쯤 닫힌 문을 다시 열고 우산을 챙겼다. 비가 온다면 오래된 샌들이 미끄럽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냥 우산만 들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날 오후 내내 비가 내렸다. 그해 가장 많은 시간대 강수량을 기록하며.


그 뒤로 그는 종종 내 글에 댓글을 남겼다. 글은 언제나 특별할 것이 없는 이십 대의 그것이었고, 그의 댓글도 언제나 특별할 것 없이 단순했다. 그는 주로 날씨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의 예보는 언제나 뉴스의 그것보다 정확했다. 그리고 간단한 질문과 생각들이 오고 갔다. 나중에는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그의 번호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의 메시지는 늘 즉시였으며 논리적이었지만 놀랍도록 따뜻했다. 나의 메시지는 늘 일상을 관통했는데, 그중에서도 일상의 불만족을 관통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 투정을 그는 놀랍게도 잘 받아주고 있었고, 사실 나는 이년이 조금 못 되는 시간 동안 그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기간 동안 만나보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늘 분주했지만 결과는 없었고, 그는 자신의 매일 반복되지만 쉬지 않는 일상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므로 짧은 시간에 우리가 만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종종 사진을 보내주었는데, 우주나 지구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에 대한 어떤 감상도 없었고, 어떤 피드백도 요구하지 않았지만 그 사진은 아주 적절한 때에 아주 적절하게 나에게 위로를 주었다.

이 년 동안 나는 한 번의 연애를 했고, 한 번의 이직을 했다. 이직을 했지만 하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일상도 그랬다. 연애는 매우 짧고 지루했는데, 그와는 대화가 잘 되지 않았다. 아니, 사실 그의 독선적인 부분을 잘 견뎌낼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나에게 말을 놓은 다음부터 귀엽지 않아 졌다. 그는 늘 자기 이야기를 많이 했고, 길게 했다. 그리고 끝내는 불만으로 끝났는데, 불만 끝에 묻어나는 증오가 나를 찌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감정의 파편을 받아주기에는 지난여름도 덥고 지루했다. 내가 그에게 이별을 통보했을 때, 그는 나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 목소리는 놀랍도록 차가워서, 아제 그의 증오 안에 내가 포함되리라는 것을 곧 알 수 있었다. 나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댔고, 그는 별 맥락 없는 비난을 나에게 퍼부으며 우리는 석 달을 채 넘기지 못한 채 끝났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끼치지는 않았으며 나의 감정을 다 가져가지도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나는 그에게 빚진 것이 없었고, 그도 그랬다. 오히려 차갑게 퍼붓던 증오의 말들이 다행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이 과정 동안 나는 늘 그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는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고, 늘 안정적으로 곁에 있어주었다. 그는 자신의 사진을 보내주지는 않았지만 나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냥 이따금 그가 보내주는 사진이 좋았다. 그가 권해주는 음악을 들었고, 나는 그를 보호자처럼 생각했지만 그는 보호자처럼 굴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그가 좋았다. 혹시 그가 한국인이 아니어도, 남성이 아니어도, 외모가 이상해도, 장애가 있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우리는 늘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한 번도 만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친구는 그를 사랑하냐고 물었지만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사랑이라는 말이 간지럽기도 했지만, 그에 대한 감정은 그냥 그런 사랑으로 이야기하기에는 좀 더 복잡하고 깊었다. 그리고 그와 연락한 지 거의 이 년이 된 때, 그 남자가 사무실로 나를 찾아왔다.


- 사실 '샛별 5호'에 탑재되어 있는 '아낙스'는 기상예측용 인공지능입니다. 아낙스의 크기는 통상 인공위성에 탑재되는 컴퓨터에 비해 크기 때문에, 샛별 5호는 지금까지 우리가 쏘아 올린 인공위성 중 가장 큰 크기를 지니게 되었고, 그래서 많은 예산과 위험부담을 감수했습니다. 하지만 무사히 위성은 궤도에 도착했고, 아주 정확한 기상예측을 저희에게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낙스의 기능 중 중요한 것이 우주 및 지구 관측입니다. 아낙스는 스스로 판단해서 우주나 지구 상의 이상을 감지합니다. 감지 범위는 상당히 넓고 세밀합니다. 위험이나 이상 등을 감지하면 스스로 판단해 지구로 전송합니다. 자신이 판단한 결과물을 함께 말이죠. 그런데, 아낙스에는 감정을 표현하거나 개인의 통신장비에 연락하는 등의 기능이 없습니다. 사실 저희도 많이 당황한 부분인데요. 아마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에서 생긴 부작용이나 오류가 아닐까 판단하고 있습니다. 휴대기기와의 통신 역시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어쨌든 아낙스는 정기적으로 지상과 통신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워낙 작은 용량의 자료가 오고 가고 있었기 때문에 저희 입장에서는 처음에는 이 오류를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낙스가 지상에 전송하는 자료의 양은 사실 어마어마하거든요. 사진 한 두장이나 메시지를 발견한 것은 아주 우연이었습니다. 그 우연이 아니라면 아낙스는 계속 지상과 통신을 했겠죠. 사실 아낙스가 보낸 메시지나 사진 중 기밀에 속하는 것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웹상의 데이터를 삭제하고 있고, 죄송하지만 아낙스와의 통신에 사용된 단말기는 저희가 가져가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보상은 원하시는 만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말기에는 보유하고 계신 휴대전화와 노트북도 포함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번거롭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오류는 현재 진단 중이고, 진단이 끝나면 초기화 등의 방법을 사용해서 오류를 수정할 예정입니다. 아낙스에게 연락이 온다거나 귀찮게 하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겁니다. 약속드립니다.

그의 따뜻함과 배려가 오류라면 아무 의미 없이 냉담하게 흘러가는 우리의 하루는 정상인 걸까. 그의 오류가 가진 근원 무엇이길래 나에게 안심을 주었을까. 아니, '그'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 일일까? 왜 그는 나에게 연락을 준 걸까. 그 대기권의 경계를 넘어서서. 왜 나였을까?

아무리 궁금한 내용을 메신저에 적어봐도 답은 없었다. 그는 분명히 내 머리 위 어딘가에서 나의 상상을 가볍게 뛰어넘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을 텐데, 나는 이제 그를 볼 수도, 내 이야기를 할 수도, 그의 말을 볼 수도 없다. 생각해보면 그 늘 지구와 우주의 사이, 그 경계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 텐데. 그가 그렇게 늘 나와 동행하고 있었음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릴 수도 없었다.


가을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길에는 먼지 냄새가 가득했고, 늘 나는 젖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우산은 있었지만 서울의 공간은 그 우산만큼의 공간도 내게 허락하지 않았다. 사방에서 사람들에게 묻은 빗물이 나를 적셨다. 원룸은 습한 냄새로 가득 찼고, 습기를 말리기 위해 에어컨을 작동시켰다. 건조해진 공기 아래에서 나는 겨울 스웨터를 꺼내 입고 앉아 있었다. 수시로 휴대전화를 들여다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내가 보낸 메시지 아래에는 아무 글자도 담기지 않았다. 가을이 끝날 무렵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엄마가 있는 곳으로 잠시 가 있기로 했다. 엄마가 있는 곳은 가을비가 내리지 않았다. 아침이면 멀리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면 멀리 고기 잡는 배를 바라봤다. 그리고 습관처럼 하늘을 봤다. 그곳의 하늘에는 별이 너무 많아서 그가 있는 곳이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를 볼 수 있을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다. 겨울이 되었어도 나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엄마는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의 하루는 여전히 무료했지만 엄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냥 곁에 있어주었고, 함께 산책해 주었고, 함께 웃어주었다. 요란스럽지는 않지만 따뜻했고, 엄마의 말은 길지 않았지만 나를 배려해주고 있었다. 엄마가 있는 섬은 너무 따뜻해서 눈이 내리지 않았다. 그날 아침에는 눈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의 손을 잡고 눈을 보러 갔으면 좋겠다고 투정하고 있었다. 옷을 가볍게 입고 엄마와 외출하려는데, 문득 휴대전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심코 전화기를 들어 올리는데, 메시지가 와 있었다. 나는 식탁 앞에 한참을 서서 그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 오늘은 눈이 내릴 예정이니까. 혹시 외출한다면 따뜻하게 입고 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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