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삶을 위하여

<소설> 미운 아기 오리

by 지승유 아빠

아가, 감기라도 들면 어쩌려고 그러고 있니 그래. 이럴 줄 알았으면 뭐라도 들고 오는 건데, 도통 덮어 줄 것도 먹여 줄 것도 없구나. 너 어릴 적에는 담요 든 뭐든 덮어 줄 걸 꼭 가지고 다녔었는데, 급히 오느라 그만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구나 그래. 미안하구나, 미안해.


솔직히 말하면 네가 태어나던 날까지도 나는 애미를 원망하고 있었단다. 그 원망은 애미를 향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 원인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단다. 그 원인은 내 열등감에 있었다는 걸 말이다. 너의 엄마는 사실 나의 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었단다. 애비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훨씬 더 멀리, 아주 오래 날 수 있는 사람이었지. 그래서 애비가 애미를 데려온 날, 나는 도무지 그 선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단다. 결혼을 허락받으러 왔다고 했지만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단다. 그날 저녁 내내 나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단다. 가만히 앉아서 너의 엄마와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던 거지. 애미의 고운 손과 때 묻지 않은 맑은 눈빛 앞에 앉기가 부끄러웠던 거란다. 그래서 나는 계속 음식을 나르고 장판을 닦고 부엌을 드나들었단다. 사실 그건 열등감이었지. 나는 그 결혼을 반대하고 싶었단다. 아마 애미는 그런 나의 모습조차 측은 하게 바라보았겠지만 그런 순수하고 긍정적인 눈빛 조차 나를 부끄럽고 안절부절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을 거야. 네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는 애미가 너무 어려웠단다. 그래서 눈 마주치기가 너무 무서웠지. 나를 모시고 살겠다고 애미가 먼저 이야기해줬을 때, 나는 기뻤지만 무서웠단다. 네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말이야.


네가 태어난 날, 애미와 나는 한 방에서 잠들었단다. 아빠는 출장 중이었고, 집에 돌아오는 중이었지. 그래서 진통을 시작했을 때, 애미는 무서워했지만 나는 처음으로 너의 엄마가 무섭지 않았단다. 그때 그 방에 있는 건 엄마 대 엄마였으니까. 그리고 붉고 푸른 구급차의 불빛 아래 병원에 도착했을 때 결심했단다. 결코 너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때 넌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는 알 수 있었단다. 너와 내가 결코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아빠는 네가 태어나는 걸 보고 싶어 했단다. 탯줄을 꼭 자르고 싶어 했지. 그래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조금 많이 과속을 했단다. 갑자기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지. 겨울 치고는 따뜻한 날이었는데 눈이 내리는 데로 녹았단다. 처음에는 그랬지. 점차 눈이 많이 내리자 처음에 녹았던 눈 위로 눈이 녹으면서 쌓였고 새벽이 되어 기온이 떨어지자 반쯤 녹은 눈이 얼기 시작했지. 눈을 치우기 위해 다들 바쁘게 움직였는데 눈을 치우는 차들보다 아빠가 먼저 고속도로에 도착했어. 그리고 바꿀 때가 많이 지난 타이어가 눈 위에 미끄러졌고, 도로위에 춤추듯 미끄러지는 트럭을 피할 수 없었단다. 다들 용케도 트럭을 피해 지나갔는데 딱 한 대의 차량만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했어.

그리고 영원히 애비는 네가 태어난 병원에 도착하지 못했지.

아마 너는 엄마를 원망했겠지만 애미가 너를 떠나 유학을 가게 된 건 나 때문이란다. 네게는 이야기할 수가 없었단다. 너의 원망이 나를 향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거든. 비겁하다는 건 알고 있단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해해주었으면 좋겠구나. 나는 혼자 애비를 키웠단다. 지금보다 더 힘든 시절이었지. 여자가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은 말이다. 나는 늘 조용했고 침착해 보였지만 사실 나의 삶은 원망의 연속이었단다. 내 부모를 원망했고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을 원망했지. 너의 아빠도 원망했단다. 나는 늘 웃고 있었지만 모두를 원망하고 있었단다. 세상 사람 모두가 행복해 보였어, 나를 제외한 세상 모두가. 아무리 몸을 움직여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고, 너의 아빠와의 관계도 그랬단다. 내 몸조차 내 뜻으로 움직여지지 않는 듯했어. 나는 늘 끌려 나니고 힘겨웠지. 평생을 그랬단다. 그래서 사돈이 너의 엄마를 유학 보내고자 했을 때, 나는 애미를 모질게 밀어냈단다. 애미도 나처럼 살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너에게는 미안하지만 너의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잡지 않았단다. 미안하다. 얘야, 그래서 사실 네가 원망해야 할 대상은 나란다. 나는 애미의 삶 속에서 나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단다.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단다.


언젠가 엄마를 만나러 캐나다에 다녀왔으면 좋겠구나. 혹시 아직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이제는 털어버리고 말이다. 이제 너도 다 컸잖니. 요새 틈만 나면 애미가 보낸 사진을 보고 있었단다. 예전에 보낸 사진이었는데 간호사에게 부탁해 그걸 현상해서 액자에 넣었단다. 침대 옆 탁자에 올려두었는데 아주 푸른 숲 가운데 애미가 밝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어. 너는 화를 내며 사진을 지웠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단다. 어리석게도 애미의 밝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보상받는 기분이 느껴졌거든. 마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내가 아주 먼 나라의 숲에서 눈부시게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단다. 그래서 그 밝은 얼굴과 밝은 초록과 눈부시게 밝은 숲의 모습을 지울 수가 없었단다. 혹시 나중에 엄마에 대한 원망보다 그리움이 커지면 캐나다에 다녀오렴.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엄마와 눈을 마주 보며 웃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말이다.

소원이 하나 있었단다. 네가 결혼할 때까지 건강하게 지내는 것. 하지만 그 겨울 몹시도 추운 날 내 혈관은 몹시도 탁해있던 내 혈액을 견뎌내지 못했단다. 울퉁불퉁한 적혈구가, 움츠러들며 살았던 내 삶이, 짧지 않은 시간이, 모두 나의 혈관에 쌓인 것 같더구나. 그래서 끝내 혈관은 견디지 못했고 나는 끝내 육체의 자유를 빼앗기게 되었단다. 만약 나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면 내가 어디로 갈 수 있었겠니. 나는 너에게 짐이 될 수는 없었단다. 그래서 억척같이 보험을 포기하지 않았어. 그리고 그 보험은 나를 요양원으로 가게 만들었지. 내 평생 원망하지 않았던 건 너와 그 보험이었단다. 내 육체가 너의 자유를 빼앗았다면 나는 견딜 수 없었을 거란다. 말도 할 수 없었고, 몸도 자유롭지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단다.


그래서 네가 점점 뜸하게 나를 찾을 때도 나는 너를 원망하지 않았단다. 인공호흡기를 처음 단 날, 네가 잠시 나에게 머물다가 도망치듯 떠난 걸 나는 알고 있단다. 내 머리맡에는 여전히 캐나다 숲 사진이 푸르게 빛을 내고 있었고 너는 내 곁에서 나와 그 사진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도망치듯 나를 떠난 걸 말이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자유를 얻었단다. 너는 나를 떠났지만 나는 삶과 죽음의 사이에 있는 영역에서 너를 지켜보고 있었단다. 나의 눈은 감겨 있었지만 나는 늘 너를 바라보고 있었단다. 네가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사랑을 시작했을 때도,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한 면접을 보러 가는 날 아침에도 말이다.

네가 너를 미운 오리 새끼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단다. 너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잖니. 그래서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지. 아이들은 자신들과 다른 너를 용납하지 못했고 너 또한 아이들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상처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단다. 그리고 그럴수록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어 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아이들과 잘 지내고 싶은 동경의 마음이 점차 원망의 마음으로 바뀐 것도, 그래서 늘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려워했던 것도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단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배운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는, 평생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뒤틀린 영혼만 남은 내가 너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니. 그냥 묵묵히 곁에 있어줄 수밖에. 네가 외부의 원망을 집 안에서 풀 때도, 나에게 소리치고 불만을 이야기할 때도 나는 그냥 묵묵히 그걸 받아 줄 수밖에 없었단다. 언젠가는 너의 원망이 사그라들고,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는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단다. 아이들 사이에서 따돌림당하고, 스스로를 격리하는 너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냥 기다릴 수밖에 도리가 없었단다. 언젠가 스스로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면 늘 굳게 닫힌 너의 방문이 열릴 거라고 믿고 있었단다.

하지만 너의 방문이 열린 건 내 혈관이 버텨내지 못한 그날이었지.

오늘 나는 삶과 죽음의 공간에서 너를 바라보고 있었단다. 아침에 번듯하게 옷을 차려입고 면접을 보러 가는 너의 모습도, 지하철을 타고 가며 예상 질문을 되새기던 너의 긴장된 얼굴도 모두 보고 있었단다. 그리고 면접관이 가족관계를 물었을 때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악의에 찬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을 때도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단다. 그리고 네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사랑이 끝나는 순간에도 할미는 거기 있었단다. 네가 술을 몹시 많이 마시고 다리 위에서 전력으로 뛰어내릴 때도, 애미와 애비와 나를 원망하는 말을 소리치는 그 순간에도, 세상 사람들과 차별과 따돌림을 원망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너의 곁에 있었단다. 아가, 아마 너는 몰랐겠지만 말이다. 만약 너의 눈이 한 치의 후회도 표현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대로 관찰자가 되었겠지. 하지만 할미는 말이다 봤단다. 난간 위로 뛰어내리는 순간 너의 후회와 슬픔의 눈빛을 말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내 삶의 마지막 에너지를 다 소모해서라도 너를 구할 수밖에 없었단다. 내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겠니. 이제 곧 사그라들 목숨 따위 뭐가 그리 소중하다고. 나는 삶과 죽음의 영역에서 죽음으로 크게 한 걸음을 내디뎠단다. 저기 멀리 병실에 있는 내가 너에게 닿을 수 있는 건 그 방법밖에 없었단다. 삶에서 죽음으로 옮겨지는 그 순간, 그 작은 틈새로 온 몸을 아니 온 영혼을 구겨 넣었단다. 너에게 닿기 위해, 내 평생 그렇게 확신에 찬 걸음은 없었단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너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단다. 아가, 많이 추우니?


내 마지막 말이 너에게 닿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이제 삶과 죽음의 틈새가 닫히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구나. 나는 온전히 죽음에게로 가서 닿겠지. 아마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지 않겠니?


지금이 아마 너의 겨울일 거라고 생각한단다. 오늘이 지나면 백조처럼 날아오를 거라고 생각했던 바로 오늘이 말이다. 인생의 마지막 면접도, 인생의 마지막 사랑도 끝난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그건 마지막이 아니란다. 지금 삶의 에너지가 사라지는 지금도 마지막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 오늘이 너의 겨울 중 가장 혹독한 때로 남겨지겠지만 아가, 그 겨울은 끝날 거란다. 그리고 백조처럼 날아오르는 날이 있을 거란다. 꼭. 아마 내 말이 들리지는 않겠지만 아가, 오늘까지 미운 아기 오리였던 아가, 나에게 넌 한 번도 미운 아기 오리가 아니었단다. 그 푸르고 붉은 불빛 아래에서 병원에 도착한 순간부터 너는 늘 나에게 아름다운 백조였단다. 아가, 많이 춥니? 내 손이 딱 한 장의 담요가 들려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미안하구나. 혹시 죽음의 공간에서도 너를 바라보는 게 허락된다면 너의 날아오르는 모습을 꼭 보고 싶구나.


꼭 캐나다에 한 번 다녀오너라. 너의 겨울이 끝나는 그날에. 알았지? 아가. 그 눈부신 숲에서 너의 엄마를 꼭 한 번 봐주거라.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고 그리고 날아서 돌아오거라. 알았지 아가? 많이 추울 텐데 미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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