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를 위하여

<소설> 인어공주

by 지승유 아빠

- 결국 모든 문제는 표현을 해야 해결이 되는 거야.


편의점에서 사 온 간식들을 뒤적거리며 말을 하는 그녀를 나는 물끄러미 바라불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런 관점에서 '인어공주'를 바라본 적이 없었다. 인어공주가 가진 원래 교훈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보려고 노력했지만 그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 그리고 그 공주가 왕자에게 한눈에 반했다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아? 그건 정확히 말해서 바다 밖의 세계에 대한 선망이지, 그 선망이 애정으로 그렇게 이어지는 흐름을 옳지 않아. 아니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인어 입장에서 인간이라는 생물이 그렇게 목숨을 걸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생물일까? 지느러미 대신 다리가 그것도 두 개나 달려 있는 인간이 말이야. 피부는 물기도 없이 건조하고 거추장스러운 옷은 잔뜩 걸치고 있는 그 인간의 모습이? 이건 너무 인간 중심적 이야기 아닌가? 인간은 아름답고 모든 생물은 인간을 동경하며 당연하게도 그렇게 추앙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표현되어 있잖아? 인간이 그렇게 아름다운 생물이야? 그렇게 동경을 받아야 하는 생물이냐고?


왜 나를 바라보며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인어공주 이야기를 보여달라고 말한 것은 본인이었으면서. 사실 인어에 대한 이야기는 인어공주 외에도 많다. 세계 각국에서 물속에 사는 사람, 물고기 모양을 한 사람에 대한 전설은 많다. 문제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그 생물체를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 내가 알고 있는 반인 반어에 대한 이야기 중, 그래도 인어를 긍정적으로 아름다운 존재로 그리고 있는 이야기는 인어공주 정도가 다였다. 그래서 이야기를 골라 보여준 것일 뿐, 인간이 그렇게 일방적인 사랑을 받아 마땅한 존재인가에 대한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인간 중심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의 절대다수는 모두 다리가 두 개고, 지느러미가 달리지 않았으면 허파와 아가미를 동시에 갖지도 않았다. 피부는 당연히 물에 젖어 있지 않으니 미끄럽지 않은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당연히 우리가 생각하는 전설 속의 동물은 우리를 닮을 수밖에. 인간 중심의 사고가 틀렸다고 일반적인 인간이 생각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 사람은 너무 분주하게 살아가는 것 같아. 바다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거든. 차에서 내리고 바다로 달려간 후에 발을 담그고 '와~~~', 그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가거든. 사실 가만히 하루를 앉아있으면 바다는 온통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데, 그런 모습을 눈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인간들은 바빠 보여.


견과류 통조림을 뒤적거리며 그녀가 말했다. 안에 든 내용물을 꺼내 입에 집어넣고는 다시 뱉어 버렸다. 마치 상한 음식이라도 넘긴 표정. 나는 두 손을 흔들며 내 책임이 아니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웃으며 육포 포장지를 찢어 내용물을 그녀에게 건넸다. 자꾸 미끄러지려는 내용물을 간신히 찢어 입어 넣고는 그제야 만족한 표정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좋아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싫어하는 것인지, 경계하고 있는 것인지, 과연 어떤 생각이 담긴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때로는 보이는 것보다 느껴지는 것이 정확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그녀를 알고 지낸 지 벌써 일 년이 되어 간다. 나는 작년 이맘때 이 작은 바닷가 동네로 왔다. 짐은 가방 하나가 전부였고, 어떤 목적이 있어서 온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수중에 돈이 떨어질 때까지 잠들고, 산책하고, 특별한 일 없이 바닷가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마침 돈이 다 떨어진 참이었기에 나는 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사라질 예정이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여정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무 계획도 없었다. 졸업한 지는 이 년이 다 되어 갈 무렵이었고, 기대했던 것보다 더 내 인생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은 이 동네를 떠날 예정이었다. 그뿐이었다.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마지막 산책을 하던 늦은 저녁이었다.

그녀는 내가 늘 앉아 있던 바닷가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늘 그렇게 앉아 있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워서 나는 바닷가로 들어서는 어귀에 서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원래 아무도 찾지 않는 바다는 그날따라 조용했고, 달빛은 불투명했으며 내 마음도 그랬다. 사실 그녀의 모습은 아름답지 않았다. 멀리서 봐도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였고, 어깨는 연신 복잡하게 오르내렸다. 숨 쉬기 힘들어 보였다. 자세를 바꾸는 것도. 나는 조용히 돌아서 사라질 예정이었다. 달빛이 순간 환희 비추지 않았다면.


나는 그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다행히 마을에는 잡다한 일거리가 있었다. 나는 간신히 마을에 머물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일 그녀를 만나기 위해 멀리 바다를 향해 왔다. 일 년 동안. 다행히도 일 년 동안 그녀는 매일 바위 위로 나와주었다. 처음에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다가 가깝게 다가앉는 데까지 시간이 꽤나 걸렸다. 그리고 그녀가 먼저 대화를 시도하기까지 다시 한참. 그리고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대화를 지속한 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대화하기 위해 할 일이 참 많았다. 그녀는 글자를 익혀야 했고, 나는 인내심을 새롭게 배워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녀는 간단한 글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나는 복잡한 것은 휴대전화를 이용해 동영상이나 그림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인어공주를 궁금해한 것도, 인어공주 이야기에 화를 내는 것도 어떻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나의 무조건적 이해를 그녀에게 잘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저 씁쓸하게 웃음을 지어 보일 뿐, 좀처럼 적당한 말이 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니 사실 몇 년째 나의 입에서 말은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갑자기는 아니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디에서도 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은 점점 줄어들었고, 마침내 입에서부터 나오기를 멈춰버렸다. 의사도 무당도 어느 누구도 심지어는 나조차도 원인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말을 잃은 후 불편한 것은 내가 아니라는 점. 부모님도 의사도 무당도 나를 포기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만에 나는 말을 원하고 있었다. 표현하고 싶었다.

그녀는 공주가 아니었다. 그리고 조개껍데기로 가슴을 감싸지도 않았다. 애초에 조개껍데기를 가슴에 고정시킬 방법은 없었으며 고정시킨다 하더라도 해저에서 엄청 난 속도로 움직이는 그녀의 움직임에 잘 붙어 있을 리도 없었다. 그녀에게는 옷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부끄러움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그녀의 몸은 전체적으로 유선형이었고, 매끄러웠다. 몸에 털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유형에 저항을 줄 만한 어떤 것도 없었다. 눈꺼풀은 이중이었다. 물속에서도 눈을 뜨고 있을 수 있도록. 그녀의 눈은 우리의 그것보다 크고 조금은 무섭게 생겼지만, 나는 그녀의 눈이 좋았다. 그녀는 늘 나를 똑바로 바라봐 주었다. 그녀의 눈은 감기는 법이 없었으며 그녀의 입은 나를 책망하지 않았다. 부지런히 연습한 인간의 말을 또박또박 내뱉어 주었으며 때때로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낮은 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손은 비늘에 덮여 있었다. 그녀의 손을 잡을 수는 있었지만 그녀는 손을 잡는 것에 대한 의미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의 손은 대부분의 일은 할 수 있었지만 섬세한 일은 잘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 대신 편의점에서 사 온 간식 포장지를 벗겨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대신해서 인간에 대한 말을 해 주었다. 그렇게 하루에 몇 시간, 그녀는 나의 언어가 되어 주었고, 나는 그녀의 손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걸로 족했다.


멀리 동이 트면 그녀는 조금 멀리 떠나 있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그 길로 부두로 가야 했다. 부두에는 할 일이 있었고, 일이 끝나면 그녀와 만나기 위해 잠시 잠이 들어야 했다. 포장지를 챙기자 그녀는 손을 흔든다. 그녀는 한 번도 바다로 들어가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내가 뒤를 돌아보면 그녀는 순식간에 멀리 사라져 버렸다. 어떤 배도, 어떤 생물도 심지어는 나조차도 그녀를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녀의 말대로 모든 문제는 표현을 해야 해결되는 거라면 나의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만은 알아주지 않을까. 그녀를 처음 봤을 때 그녀의 이질적인 모습이 두렵지 않았었음을.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바다를 멀리 돌아다보았다. 수많은 파도 중 어딘가에 그녀가 만든 파문이 있을 터이지만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공주가 아닌 나의 인어가 그 파문 속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그리고 멀리 작은 마을의 부두를 향해 아주 똑바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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