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는 나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나는 최를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는데 그의 어깨너머로 한 젊은 사람이 창밖을 보며 큰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무엇인가에 대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듯했는데, 그는 마치 오래된 영화 속의 영웅이나 주인공처럼 보이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최는 손가락을 아주 조금 움직여 그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생존 의지, 즉 삶의 이유입니다. 저건 도움이 되지 않아요. 저런 외적인 의욕은 오히려 삶의 에너지를 빼앗을 뿐이죠. 그리고 어쩌면 두려움을 감추고 있는 행동일지도 모르고요. 저 사람은 면접 때, 엄청난 의지와 에너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다들 저 친구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죠. 하지만 저는 아니었습니다. 뭐 할 수 없죠.
최는 사실 우리의 면접관이자, 교육담당이었다. 최종면접에서 우리는 한 명씩 방으로 들어갔고, 다섯 명의 면접관이 앉아 있었다. 나는 '살고 싶어서'라고 지원동기를 말했다.
살려주십시오. 살고 싶습니다. 아니, 삶의 이유가 필요했습니다.
최만이 나를 지지했고, 나머지는 반대했지만, 최는 현장감독인 자신의 자리를 놓고 나를 합격시켰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내가 이곳에 지원한 것은 다소 충동적인 이유에서였고, 그는 나를 알지도 못했으며, 나도 그를 알지 못했다. 우리는 완벽한 타인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가 나를 지지한 것은 다분히 충동적인 이유에서였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 나는 아무것도 납득할 수 없었다. 하긴 내가 반드시 모든 일을 납득할 필요는 없으므로 합격 이후 3개월 동안 나는 납득할 수 없는 그 일을 그냥 깨끗하게 잊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는 다시는 돌아가지 못합니다. 이미 이곳에 오는데 오 년을 넘게 시간을 소비했고, 인력과 장비를 이동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이 발생되었죠.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모두 목숨을 잃는 상황이 되어도, 우리를 위해 돌아가는 방법을 강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목숨을 잃는 데이터를 이용해서,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분석하겠죠. 지금 움직이고 있는 탈 것 아래에 깔린 레일만 설치하는데 1년이 걸렸습니다. 물론 진짜 레일은 아니죠, 차량을 유도하는 단순 유도체를 설치하는 데만 그 정도 시간이 걸렸다는 겁니다. 우리가 지각의 틈 사이로 들어가 거주지를 확보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계약된 10년이라는 시간은 경우에 따라서 영원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죠. 저렇게 큰소리를 치는 건 우리의 생존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용히 가라앉아 있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되죠. 당신이나 나처럼.
이곳의 지각이 모두 붉은 것은 아니다. 외부에서 이곳을 바라보았을 때는 온통 붉은 모래와 붉은 암석투성이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이곳은 그렇게 붉지는 않다. 특히 우리가 주로 작업하는 지하 50미터 부근의 암석은 그렇게 붉지 않다. 우리가 주로 하는 일은 이곳에 거주지를 확보하는 일인데,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는 암석을 아주 조심스럽게 분석하고 조금씩 거주지의 면적을 넓히고 있다. 확보된 공간에는 임시 거주지를 설치하는데, 그전에 무너지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공간과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문제다. 우리가 도착한 날 큰소리를 치던 이는 K였는데,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의기소침해지고 있었다. 작업 속도는 너무 느리고, 우리는 너무 오래 깊은 지하에 갇혀있다. 관리자들은 우리의 작업이 이곳을 지구와 같은 환경으로 만드는 '테라포밍'의 기초가 될 것이라고 독려하지만 아무도 이 작업이 우리의 계약기간에 끝날 것이라고 믿지 않았고, 아무도 우리의 생존을 믿지도 않았다.
먼저 일이 터진 것은 한 달 전이었다. K는 암석층을 조금씩 뚫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가 사라졌다. 암석층 아래 부분에 아주 큰 구덩이가 있었는데, 지하에 물이 흘러간 흔적과 연결되어 있는 듯했다. 시추 전에 발견되었어야 하는 부분이었다. 이곳에 구조물을 건설한다면 후에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는 곳이었으므로. 하지만 우리는 너무 오래 같은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고, 꼭 사람이 빠질 만큼의 공간을 체크할 만큼 의욕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K는 그 사이 말수가 점점 없어지고, 신경질 적으로 변해갔는데, 말수가 없어지는 만큼 작업에서 서둘렀다. 그날 아침에 그는 충혈된 눈으로 관리자 중 한 사람과 큰소리로 다투고 작업을 나갔다. 최는 그를 다독였는데, 그가 얼마나 깊은 알 수 없는 구덩이 사이로 사라진 직후 최는 그곳을 봉쇄하고 거주지 설계를 변경했다. 구덩이는 임시 구조물로 메워졌는데, 아무도 그의 시신을 찾으러 가자고 말하지 않았다. 그곳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었고, 다들 상상해보지 못한 죽음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오직 최만 냉정하게 사후처리를 진행했고, 나는 K의 유품을 정리했다. 사람들은 K의 방 근처에 오지 않았고, 나는 K의 방으로 짐을 옮겼다.
그날은 하루 종일 날이 좋았고, 여름이었다. 가을이 오기 전에 여행을 가기 위해 다들 준비가 바빴는데,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에서 입을 옷을 사러 파주로 향했다. 하루 종일 옷을 고르고 옷을 사고, 마침내 내가 입을 재킷까지 골라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내는 슬픈 일도 없었고, 졸음운전도 하지 않았고, 규정속도도 지켜 집을 향해가고 있었다. 서울에 이르자 차는 막히기 시작했고, 아내는 규정속도가 한참 못 되는 속도로 줄였고, 아이들은 뒷좌석에서 모두 잠들어 있었다. 아내는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사탕을 하나 입에 넣었는데, 잠을 쫓기 위해서였다. 나는 집에 먼저 도착해서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잡곡을 씻어서 밥통에 돌리고, 냉동식품을 오븐에 돌리다가 아내의 메시지에 답장을 보냈다. 아내는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난 후 아이들을 돌아보았는데 아이들이 너무 곤하게 잠들어 있어서 그 모습을 휴대전화로 찍었다.
그때 아내 뒤쪽에서 5톤 트럭 한 대가 주행 중이었다. 차는 짐을 많이 싣고 있었음에도 다소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차들이 정체된 곳을 발견한 순간 감속했는데,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운전자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차를 움직였고, 차는 여러 대의 차를 추돌하며 속도가 줄었으나 짐을 너무 많이 적재한 탓에 트럭이 가진 에너지는 그렇게 많이 상쇄되지 않았다. 다른 차들의 측면을 들이받으며 차는 더 통제가 어려워졌고, 그 트럭이 향하는 곳 맨 끝에 아내의 차가 있었다. 아내는 막 아이들의 사진을 찍고, 몸을 돌렸는데 앞에는 버스가 서 있었다. 아내는 다행히 트럭이 다가오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는데 굉음을 듣고 몸을 돌리려던 순간 트럭이 아내의 차 후면을 들이받았기 때문이었다. 아내의 차는 트럭과 버스 사이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되어 있었고, 아내도 아이들도 살아남지 못했다.
죽은 K의 방은 쾌적했다. 아무도 K의 방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혼자 방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곁에 다른 침대는 비어 있었는데, K가 사라진 그날 그와 함께 방을 사용하던 사람이 나가버렸기 때문이었다. 지난주에는 암석층이 붕괴해서 한 사람이 사망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보고하지 않고 무단으로 지표면으로 나간 사람이 모래 태풍에 사라져 버렸다. 그는 한 사람분의 외부 활동 장비를 가진 채로 태풍에 휩쓸려 갔는데 그를 찾을 방법이 없었다. 위치를 알고 있지만 더 이상 장비를 잃을 수도 용기를 강요할 수도 없었다. 최는 그의 죽음 직후 장비는 여유가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사람들 앞에서 내게 말했다. 사람들은 점점 지하에서 작업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서로를 돌보기 시작했다. 몇몇은 말수가 없어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조금 더 꼼꼼하게 사전작업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환경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지만 죽음에는 익숙해지지 못했다.
외부 활동 장비를 모두 착용하자 평소와는 다른 무게감이 느껴졌다. 지하에서 활동할 때와는 달리 몇 가지 생존장비가 추가되기 때문이었지만, 그 무게감이 이상하게도 묵직하게 다가왔다. 외부로 나가는 승강기를 타고 지상으로 오르자, 통로 사용되는 구덩이의 입구가 나타났다. 입구를 열고 밖으로 나와 조금 걸어가니 멀리 붉은 평지가 펼쳐져 있었다. 모래 폭풍이 온다는 예보는 없었고, 온도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주 조금의 손놀림으로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환경이었다. 산소가 없도록 만들거나, 열에 노출되거나, 조금만 안전지대를 벗어나 걸어 나가기만 해도 죽음에 이를 수 있을 터였다. 사람들은 모처럼 작업하지 않고 개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지구에서 온 메시지를 확인하기도 하고, 지구에서 가져온 영화를 함께 보기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위치를 벗어나는 것을 알 수 없을 터였다. 아무 사람들이 나의 실종이나 죽음을 알게 된다 해도 그건 이미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이 지난 후였을 것이다. 아주 조그만 손짓이나 걸음으로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순간이었다.
테라포밍이 진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생각에 잠겨 있던 나를 깨운 것은 최의 목소리였다. 그는 활동장비를 착용하고 내 곁에 섰다. 그리고 막 들어 올려지려던 나의 손을 잡아 허리 아래로 내렸다.
정말 테라포밍이 진행된다고 해도, 화성이 지구처럼 되기까지는 500년이 걸린다죠. 그렇게 긴 시간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냥 우리는 다른 나라에게 보여줄 액션이 필요할 뿐인 거죠. 우리는 그 액션의 희생량 일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아내는 이 액션을 정말로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액션일 뿐이라도 그 이상의 성과가 있다면 그 액션이 진짜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거죠. 그래서 아내는 1차 원정대에 참가하기 위해 임신도 미루었습니다. 저의 이해를 바랐지만 저의 허락을 구하지는 않았죠. 온전히 혼자만의 의지로 그녀는 떠났어요. 그리고 당시 원정대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여기에서 5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주거 후보지에서요. 지하가 통째로 매몰되었습니다. 그렇게 통보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시신도 확인하지 못했어요. 여기서 500킬로미터만 가면 되는데. 솔직히 사는 일이 익숙해지지가 않습니다. 어떠세요? 이제는 살아가는 것이 익숙해지셨나요?
최와 나는 먼 곳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최는 500킬로미터 밖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을 터이고, 나는 멀리 어딘지 모를 막연한 곳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멀리 탐사용 로버가 돌아오는 먼지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 뒤로 보이는 풍경이 안타깝게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화성의 푸른 석양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최에게 아직 살아가는 일이 익숙해지지 않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화성의 석양 아래 서 있다가 마침내 들어가야만 하는 시간이 되어서야 어쩔 수 없이 서로의 팔에 의지하며 다시 지하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