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누가 너의 앞에 거울을 놓아두었을까.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너는 아주 초라한 경제력을 가진 아주 평범한 남성이고, 몹시 기쁠 때 다른 사람들 앞에서 호들갑 떨기를 주저하지 않는 소인배이며, 아주 슬플 때 웃으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다섯 평 남짓한 너의 보금자리로 기어드는 현대를 대표하는 평범일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의 일생이 고난뿐이어야 할 필연은 전혀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너는 지방에서 올라온 저학력의 부모 아래에서 성장했고, 너의 부모는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살면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는 시대였다. 단칸방에서 시작한 부모의 생활은 좁았지만 필요한 것은 다 있었다. 실상 필요한 것이 많이 없는 때였다. 너의 아버지는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왔고, 너의 어머니도 그랬다. 네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네가 태어났을 때 너의 부모는 행복했지만 그 행복은 동화나 드라마에서처럼 길지는 않았고, 갈헐적이었다. 너는 밤마다 울었고, 푹 잠들지 않았다. 부모는 잠을 자야 했고, 화가 났지만 본성이 선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너를 학대하지는 않았고, 너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잠들도록 하기 위해 너를 업고 밤마다 골목으로 나갔다. 아직 하늘은 맑았고, 밤바람은 시원했다. 너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 잠이 들었고, 어머니는 한참을 배회하다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아버지는 잠들어 있었고, 너도 그랬다. 그리고 잠시 후 너의 어머니도. 단칸방은 반지하로 옮겨지고, 방과 동생이 생겼다. 반지하의 너는 아파트로 옮겨졌고, 대학 진학과 동시에 너의 삶은 다시 고시원으로 원룸으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주거지의 변화가 너의 인생을 변하게 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너의 불행을 정의할 수는 없다. 너의 불행은 온전히 너의 것이어야 했으나, 결국 그것은 너의 부모와 동생과 네가 생각하지도 못한 사람들을 많이 혹은 아주 조금 불행하게 만들 것이니, 너의 불행의 원인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 오랜 침묵 속에서 아직 많은 시간을 견뎌야 하므로, 너의 상념이 너를 도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 순간일 수 있다.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직전, 네가 옆자리의 친구가 가진 샤프를 훔친 그때. 그 샤프는 그때 당시 몇 천 원이었는데, 너의 주머니에는 늘 오백 원짜리 동전만 들어있었다. 당시 너의 일주일 용돈이 오백 원이었기 때문이었는데, 그 샤프를 사려면 너의 용돈을 한 달하고도 반을 모으거나, 어머니의 긴 한숨을 견뎌야 했다. 너는 두 가지를 모두 거부했다. 마침 네가 원하는 딱 그 제품이 옆 친구의 필통에 들어있었으므로. 샤프를 흔들면 심이 나오는 제품이었는데, 너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손쉽게 그 제품을 친구의 필통에서 너의 필통으로 옮겨올 수 있었다. 친구는 너를 의심하지 않았고, 너는 무표정으로 모르는 척했다. 하지만 결국 그 샤프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 샤프는 너의 집, 네가 자던 방 책상 뒤의 단열재와 콘크리트 사이로 들어갔다. 너는 그것을 훔칠 정도로 탐이 나기는 했지만 그것을 사용할 정도로 뻔뻔하지는 못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2학년 때쯤에는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가 너의 마음속에서 지워버렸다. 그 사소한, 아니 나이에 비하면 사소하지 않은 비행이 너의 인생을 비틀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너의 폭행이 너를 이렇게 만든 것인가. 중학교 시절, 그 아이는 모두가 괴롭히는 아이였다. 별 이유는 없었다. 그는 조금 작았고, 외모가 별 볼 일 없었으며, 결정적으로 힘이 없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괴롭히는 일에 당위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아이들이 틈만 나면 그 아이를 물어뜯었다. 갈구고, 욕하고, 심부름을 시켰다. 너는 늘 방관자였는데, 어느 날 문득 그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너는 그 아이를 때리고 있었다. 많이 때린 것도 아니고, 세게 때린 것도 아니다. 애초에 너는 사람을 때리는 요령조차 알지 못했으므로.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눈빛을 너는 아주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그것은 야속함의 눈빛이었다. 몇 년 뒤, 그가 학교 4층 교실에서 뛰어내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는 그의 그 눈빛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시절의 고백이 너의 인생이 너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너는 그녀에게 세 번을 고백했고, 세 번을 거절당했다. 그리고 늘 분노했다. 우유부단한 그녀의 태도를, 말끔하지 못한 나의 모습을. 그녀 앞에서는 모든 것을 잊은 것처럼 행동했지만 너는 단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매 순간 그녀가 행복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어쩌면 그렇게 뒤틀린 마음이 너의 생활을 뒤틀어놓았는지도 모른다.
군대에서 너는 누구보다 좋은 선임이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사실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사실 사람들의 이름도 잘 외우지 않았다. 얼굴도 잘 기억하지 못해서 말하지 않고 웃고만 있는 경우도 많았다. 사람들은 너의 침묵을 성숙함의 근거로 착각했다. 너는 배려심이 있는 사람이고, 과묵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너는 가끔 사람들에게 소중한 것들을 없애버렸다. 예전에 친구의 샤프를 훔쳤을 때처럼 너는 사람들의 물건을, 여자 친구가 주었다는 반지를, 아버지가 주었다는 부적을, 친한 친구가 주었다는 라이터를 몰래 없애버렸다. 충동적으로 그랬는데, 너는 늘 웃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정말 걱정된다는 얼굴로 당사자들의 뒤에 서 있었으므로 아무도 너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때쯤 너는 이미 많이 뒤틀려 있었던 것이 아닐까.
네가 여자를 오래 만나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이상하게도 여자들의 잔소리가 시작되면 너의 평정심은 깨져버렸다. 취직해야 한다고 말하는 여자 친구의 목덜미를 밀치는 상상을 했다. 아니면 공부라도 하라는 여자의 얼굴을 치는 상상도 했다. 실상 너에게는 이것들을 이룰 힘도 의지도 없었지만 상상 속의 너는 언제나 여자들을 거칠게 다루었다. 어머니로부터의 트라우마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아름답거나 지혜롭지는 않지만 가족들을 보살피는 편이었다. 어머니의 유일한 단점은 자유를 모른다는 것이었고, 자신이 자유를 모르는 만큼 나의 자유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네가 여자들에게 가진 분노는 어머니로부터 비롯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것들이 네가 행한 행동의 이유는 되지 못하는 듯싶다. 너의 이런 행동이, 너의 일생이, 너의 마음이 그리고 심리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어마어마한 어둠의 기원이 될 수가 있을까. 너는 단지 소심한 사람이고, 비겁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리고 너의 행동을 발생시킨 원동력은 어마어마한 어둠이 아니었다. 너의 치졸함과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비겁함이 너의 행동의 원동력인 것이다. 네가 골목길에서 그 여자를 찌른 순간 네가 본 것은 사람들이나 기자가 말하는 것처럼 못난 어머니나 그동안 만난 여자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사실 그것은 너의 얼굴이었다. 그 작고 여린 여자의 얼굴에서 떠오른 공포의 표정은 곧 너의 표정이었다. 여자의 몸뚱이가 쓰러지자, 너는 그 길로 지하철을 찾아갔다. 여자를 찌를 때의 충동으로 승강장으로 진입하는 지하철에 몸을 던졌다.
누가 이곳에 거울을 가져다 놓은 것일까.
전동차에 부서진 너의 육신을 누가 이렇게 짜 맞춰 놓았을까. 얼기설기, 대충 붙여 보기에도 좋지 않고 기능도 다 할 수 없게. 하지만 상관은 없지 앞으로 그 팔이며 다리가 제구실을 할 일은 없을 테니. 사자(死者)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너의 육신은 죽었으되, 정신은 49일 동안 거기 있으라는. 그리고 육체가 짜 맞춰지고 다시 화장터의 가마로 들어가, 산산조각 흩어지는 순간까지 정신을 차리고 있으라고.
달리 할 일은 없었다. 고개조차 돌릴 수가 없이 나의 시신이 놓은 천장의 거울과 대화할 밖에. 난생처음 자아와의 만남을 즐길 수밖에. 하루 종일 누워 거울 속에 얼기설기 붙여놓은 너의 얼굴과 대화할 수밖에. 나의 사소한 절도, 욕망, 폭력, 증오, 소심함, 비겁함, 삶의 순간과 아픔의 순간, 죽음의 순간과, 살인의 순간을 끝없이 복귀할 수밖에. 참 생각해보면 이것은 거울이 아닌 것 같다. 시체안치소에 있는 냉동고의 천장이 나의 얼굴을 비틀어 버리고 있는 걸 보면. 하지만 그 비틀린 얼굴이 초상화처럼 감지도 깜빡이지도 못하는 나의 시야를 온통 덮고 있다.
아직 나에게는 45일이 남아있다. 아니면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