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살아가는 놀라운 방법

소설

by 지승유 아빠

내가 21세기를 살아가는 놀라운 방법을 알려준다니까.


21세기를 살아가려면 말이야, 할 말은 해야 한다니까.

내가 아침에 딱 출근해서 보니까, 내가 전날 해 놓은 일들이 다 엉망이 돼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딱 사장한 데 가서 말했지. 이렇게 일하면 안 된다고. 그러니까 그 인간이 하는 말이 뭐? 업무능력이 없고, 일하는 속도도 느리고, 기획기사의 의도를 판단하지 못한다나? 참나, 그러니까 평범한 사람들하고 일하는 게 이렇게 힘든 거야. 야, 너희들 잘 들어 알았어? 이럴 때, 평범한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숙이고 들어가지?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그러면 안 되는 거거든. 아무리 3류 인터넷 언론사여도 말이야 사람들이 장인정신이 있어야지. 그렇지 않냐? 아무리 쓰레기 같은 기사여도 어? 편집도 제대로, 어? 맞춤법도 좀 맞추고 말이야. 꼭 다른 데서 올린 기사를 그대로 써야 하느냔 말이야. 자존심 상하게 말이야.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 대학 신문에서 니들이 지금 작업하고 있는 그 신문에서 말이야, 이사장도 비판하고 학교 운영도 딱딱 꼬집어서 비판하고 말이야. 그래서 학교 학업 환경 개선에 얼마나 많은 공헌을 했는데 말이야. 어떻게 아무리 3류여도 그렇지 남에 기사에다가 조금 내용을 덧붙이는 걸 이해를 못하느냔 말이야. 내용을 덧붙이려면 그럴듯하게 포장도 해야 하고, 제보자도 있는 것처럼 해야 하고 말이야, 그러다 보면 시간도 더 걸리고 그런 거지 말이야. 사람들이 무슨 복사기도 아니고, 다른 기사 그대로 옮기고 광고만 처 발라서 그대로 올리라고 말이야. 참 자존심 상하게. 뭐? 저작권? 야 뭐 그딴 게 어디 있어 우리가 가져온 기사도 어디서 가져온 걸 텐데. 잘 알아보라고? 야 요즘 같은 시대에 언제 그걸 다 알아보고 있어? 암튼 그래서 내가 사장한테 말했지, 3류 언론사, 어쩌고저쩌고. 그랬더니 그만두라고 하더만.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이지 욕까지 덤으로 말이야. 암튼 고학력이라고 다 교양이 있는 건 아니라니까?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하는 거야. 알았어? 대학 때부터 쭉~ 올곧은 마음과 맑은 정신! 우리가 그걸 지켜야 하지 않겠냐?

그리고 말이야 21세기를 살아가려면 그 뭐냐 사람이 신념이 있어야 하는 거야. 알았냐? 내 고향이 제주도인 거 알지? 얘들은 제주도는 다 한동네인 줄 알아요. 야 제주도도 서귀포 있고, 제주시 있고, 다시 서귀포는 동쪽 있고, 서쪽도 있고, 서귀포 시내도 있고. 뭐 제주도가 어린이 대공원만 한 줄 알아? 암튼 내가 있는 동쪽에서는 내가 중학교 때부터 유명했다니까. 그래 학원도 하나 안 다니고, 중학교 내신 상위 6%, 고등학교 전교권! 캬~. 뭐? 전교생이 몇 명이냐고? 뭐 내신 산출하는데 인원 수가 뭐가 중요하냐? 많든 적든 산출 기준은 같은데 이것들이 육지에서 나고 자랐다고 엄청 난척하는구먼. 암튼 그래서 내가 서울에 학교에 합격할 때, 내 위로 10명밖에 없었다니까.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사회정의 실현에 엄청 관심이 많았었잖야. 그래서 고등학교 때도 내가 학교 잡지도 만들고 편집도 하고 글도 쓰고,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서울에 왔는데 이것들은 다들 취업해야 한다고 맨날 도서관에 처박혀 있기만 하고 말이야. 대학의 로망이 없는 거야. 대학의 로망, 사회 정의를 언급하고 밤새도록 술자리에서 토론하는 그 로망 말이야. 그래서 나는 내 신념을 지키기로 했지. 도서관에서 맨날 토익책만 들고 파는 것보다는 현장으로 현실로. 그리고 그렇게 군대도 가고 대학 생활을 끝내고 나니까, 취업이 안되긴 하더라. 그래도 말이야, 내가 80장의 이력서를 쓰고 또 써도 중요한 건 대학교에서, 이 현실에서 나의 신념이 꺾어지지 않았다는 것 아니겠냐. 지금도 봐라 후배들이 한 잔 하고 있다는데 나 빼고는 아무도 너희 곁에 없잖아. 빌어먹을 놈들이 지들 살기 바쁘다고 한 번 학교 편집실에 얼굴도 안 비치고 말이야. 자 마셔마셔.


내가 니들이 있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왜 예전에 지웅이 있잖아 그 자식. 그래그래 그 학생회장, 편집위원 지 하고 싶은 거 다 하던 그놈 말이야. 걔가 우리 군대 가기 전에 그렇게 가오를 잡고, 특히 여자애들 앞에서 폼을 잡더니 봐라 졸업하고 나니까, 한 번을 찾아오나. 뭐? 지난번에? 야 그게 언제야 언제, 그때 사준 술 지금 다 소화되고 똥, 오줌이 되어 배출된 후에 하수처리 끝나서 강으로 방류되었겠다 야. 그리고 좋은 회사 취칙했다고 큰소리치더니 통이 그렇게 작아서야. 아주 그냥 신입생 시절에는 비실비실 나한테 꼼짝도 못 했는데 말이야. 그거 그거 신입생 환영회부터 말이야, 아주 건방을 떨더만. 과 수석? 수석? 개뿔, 어차피 수석인 지나, 추가합격인 나나 나중에 사회 잉여로 남는 건 마찬가지인데 말이야. 그래서 내가 팍! 아유 그냥. 암튼 더 말 안 한다 지웅이도 동기인데 후배들 앞에서 체면은 챙겨줘야지. 뭐? 지웅이가 대기업에?

야...... 요새 대기업 그거 얼마 못 가요. 대기업에서 사람을 얼마나 부려먹는 줄 알아? 막 과로하고 막 괴롭히고, 영어도 계속해라고 스트레스 주고. 대기업이 대세가 아닌 거야. 작지만 알찬! 알았어? 아유 그거 나한테 맞아서 빌빌 거리 든 게 많이 컸네 아주 컸어. 뭐? 지웅이 부른다고? 야...... 부르긴 뭘 부르냐. 부르지 마. 암튼 부르지 마라고 이 자식아.

야,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려면 사랑도 이성적으로 해야 하는 거야. 알았냐? 내가 또 사랑하나는 끝내주게 했지. 누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뭐? 걔 아니야 인마! 걔는 그냥 동기고, 있어 다른 과에. 2학년 때 나랑 맨날 붙어 다녔으니까, 니들이 뭘 알겠니? 항상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 계단을 내려오더라고 그래서 매일 다가가서 '저 국문과 누구입니다'하고는 사라졌지. 아마 미친놈이구나 했겠지? 99번을 그 미친 짓을 하고는 100번째에는 쫙 차려입고 사귀자고 했지. 우리 학교에 전설이었어 전설. 알어? 그렇게 1년을 사귀었지. 왜 헤어졌냐고? 군대 가면 다 그래. 군대 안 간 사람들이 많아서 니들이 모르는데, 군대 가면 99% 헤어지게 되어있어. 그게 여자가 나쁜 게 아니야. 그냥 외로운 거지. 견디기 힘든 거고. 전화로 이야기하더라고, 헤어지자고. 알았다고 했어. 그렇다고 달려갈 수도 없잖아 당장. 할 말도 없더라고 옛날 추억만 주억거리면서 잡아둘 수가 없더라고. 잘 나가는 애였거든. 아마 잘 살고 있을 거야. 그때는 조금 후회했는데, 나중에 제대하고 복학하고 나니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개강 전날이었는데, 고시원에 누워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아니 거기 말고, 그 옆에 싼 고시원 있잖아. 창문 열면 교회 벽만 보이는 거기. 그래, 고시원 침대에 딱 누워있으니까, 거기 내 인생이 다 있는 것 같더라고. 심플! 그 자체더라고. 짐도 없고 한눈에 들어오는 게.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냐고 누가 물으면 별로 이야기할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고, 사랑할 것도 없고, 사랑받을 것도 없는 딱 그만큼. 그게 나더라고. 그 고시원이. 야, 나 안 취했어. 아직은 안 취했다고, 아직은. 그리고 그냥 그때 기분이 그랬다는 얘기지. 야 나야 나, 나라고.


솔직히 말해서 학교를 무사히 마친다는 보장도 없고, 졸업하자마자 취업된다는 보장도 없잖아. 그때는 경력도 없고, 자신도 없고, 돈도 없고, 졸업 전이니까 학벌도 없고. 누가 성당에 있는 크리스마스트리에 쪽지를 매달아 놨더라. '정규직' 이렇게. 아휴 쪽 팔리게. 근데 그게 남 일이 아니잖아. 계약직으로 취직해서 그 잘 나가던 애를 데리고 고시원에서 살 수도 없고,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전세도 얻을 수 없고. 집? 요새 세상에 부모랑 자식이랑 각자 살기도 바쁜 세상이야. 집에서 뭐. 그리고 조금 보태서 집을 살 수나 있어? 전세도 못 얻어. 이런 현실감각 없는 자식들아. 복 받은 줄 알어.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 집이 있으니까 니들이 내 아픔을 어떻게 알겠냐. 그래서 사랑은 없다!!!! 그런 이성적인 판단을 내린 거지 그 복학하기 전날 고시원 방구석에서 말이야. 뭘 우울한 얼굴들을 하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우리 조카가 물어보더라. 삼촌 어디 대학을, 무슨 과를 가야 돈 잘 벌어? 이렇게. 그래서 내가 아주 이성적으로 말해줬지. 야, 아무 데나 가도 다 취직 안된다. 그러니까 고민하지 말고 니 하고 싶은 과로 선택해라. 그러니까 우리 조카가 그러더라. 하고 싶은 게 없다고. 참나. 얘들아 사랑도 진학도 취직도 인생도 이성적으로 살아야 하는 거야. 알았어? 사랑은 이성적으로 그러니까 능력 없으면 사랑도 안 하는 거지.

뭐? 지웅이 전화받았어? 야 부르지 마, 바쁜 애를 뭘 부르고 그러냐. 부르지 말라니까. 전화 바꾸지 마. 에이 씨, 하지 말라고. 야 이거 가지고 가서 계산하고 와. 여기까지 내가 살게. 아직 그 정도 능력은 된다니까. 내가 경력도 능력도 있는,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글로벌 미래인이라니까. 아 그리고 지웅이 부르지 말라고. 확인? 뭘 확인이야 확인이, 니들 내 말 못 믿어? 엉? 어? 뭐라고? 거래정지? 허, 참.


미안하다 야..... 담에 내가 살게. 다른 카드도 있는데 집에 두고 왔네. 담에 언제 모이냐? 응? 그때는 내가 이차까지 살게. 이게 이 카드가 혜택도 없는데 연회비만 비싸서 신경을 안 썼더니 아 쪽팔리게. 야 그래도 기왕 시킨 거니까 이거는 다 먹고 가자, 응? 한 잔 해, 한 잔. 야, 그리고 인마, 내가 진지하게 이야기하는데.


지웅이는 안 부르면 안 되냐? 응? 그 자식은 내가 21세기를 살아가는데 정말 도움이 안 되는 놈이라니까. 응? 듣고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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