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事

소설

by 지승유 아빠

이 버튼은 참이나 누르고 싶게 생겼다.

분명 검은 버튼인데 위에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보호장치를 둘렀다. 그 투명한 보호장치가 묘하게 사람을 더 설레게 만든다. 분명 불이 났을 때만 눌러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도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그걸 누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특히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더 그렇다. 오늘도 수업이 시작하자마자 엎드려 있었다. 분명 수학 선생님은 좋은 사람인데, 수학은 도무지 좋아지지 않는다. 중학교 때인가, 인수분해인가, x인가부터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살았다. x가 알 수 없는 수라는 말만 생각이 났다. 늘 그랬다. 그리고 y가 나오는 순간부터 수학을 포기했다. x도 알 수 없는 수라면서 y는 또 뭔지. 그래도 수학 선생님은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 수학 시간이 되면 무조건 엎드려 있기로 했다. 내가 엎드려 있으면 대부분 선생님들은 모르는 채 한다. 그게 당연한 거지. 나라도 그럴 것 같다. 나 같은 거 신경 쓸 시간 있을까. 매번 구석 그것도 창가 자리 맨 뒤에서 말도, 소리도, 존재도 없이 있는 나보다는 저 앞에서 자기 존재를 뽐내는 저 아이들이 나라도 더 이뻤을 것 같다. 하지만 수학 선생님은 늘 엎드린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매일 매번 아프냐고, 괜찮냐고 물어온다. 몇몇 아이들은 야유하고 나를 비난하는 소리도 들리지만 상관없다. 수학 선생님이 물어도 나는 일어나지 않는다. 수학 선생님은 다시 나에게 몇 마디 말을 걸고, 내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 교실 앞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나는 그의 발소리가 사라지고 한 참 후에 상기된 얼굴을 갈무리한 후 고개를 든다. 무표정하게 교실을 둘러본다. 나를 비난하던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이들은 잠들거나 수업을 듣거나. 나는 가만히 수학선생님이 말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화장실을 간다. 늘. 복도에는 아무도 없고, 정수기 옆 벽에는 붉은 바탕에 검은 버튼이 투명한 보호막의 보호를 받으며 존재하고 있다. 그러면 나는 가만히 그 앞에서 손가락을 대고 있는다. 나는 버튼을 누를 수도, 누르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선택할 수 있다. 단지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묘해진다. 수학선생님의 괜찮냐는 물음이 어떤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음을 알면서도 자꾸 듣고 싶은 것처럼. 절대 쉬는 시간에는 손가락을 대고 있지 않는다. 누군가 밀면 나는 버튼을 누를 수도 있다. 플라스틱 방어막이 안으로 눌리면서 검은 버튼이 눌리고 시끄러운 비상벨 소리가 복도를 울려 퍼질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선생들은 학교의 모든 사람들은 관심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별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소리는 멈출 것이고, 누가 버튼을 눌렀는지 추궁하는 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비상벨 소리가 울려 퍼지기 직전. 거기까지만.

담임도 좋은 사람이다. 조금 무심한 사람이지만. 하지만 덕분에 캐묻지 않아서 좋았다. 작년 담임은 뭐든지 캐물었다. 왜 방과 후를 듣지 않느냐. 대학은 안 갈 것이냐. 나중에 어떻게 살 거냐. 아빠는 뭐하는 분이시냐. 동생들은 잘 있냐. 요새 엄마는 만나냐. 부모님은 언제 이혼하셨냐. 엄마는 자주 못 보냐. 누구 사귀는 사람은 있냐. 아무나 사귀면 안 된다. 그 모든 질문에 답을 하고 나서 생기는 잠시의 공백의 나는 싫었다. 중학교 때부터. 그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질문들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늘 공백 뒤에 서서 나를 바라보곤 했다. 그 공백과 나 그리고 그 사람들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어서. 사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잠깐의 거리를 넘어갈 수가 없었다. 담임은 좋은 사람이다. 다 알고 있을 텐데도.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처음에는 묻지 않아서 서운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래서 담임을 바라보기가 편했다. 담임은 늘 월요일 첫 시간이 되면 주말에 아이들과 놀아준 이야기를 하며 수업을 시작했다. 어제는 동물원에 갔었다. 어제는 놀이동산에 갔었다. 어제는 어린이 대공원에 갔었는데 거기는 놀이동산도 동물원도 다 있었다. 어제는 산에 올라갔고, 어제는 계곡에 물놀이를 가고, 가서 힘들었고, 너무 많이 걸었고, 아이들을 씻기는데 아이가 자꾸 얼굴에 비눗물을 부어서 힘들었고, 밤에는 아이들을 재우고 놀려고 했는데 잠들었다. 나에게는 그 이야기가 꿈같기도 하고 환상 같기도 해서 현실감이 없었지만 그래서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기도 했지만 매주 아이들과 담임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이야기 속의 아이가 나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담임이 내 엄마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은 묘한 거리감에 사로잡힌다. 물론 수업이 끝나면 그 거리감은 사라지지만 그래도 그 묘한 느낌이 싫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세상 어딘가에는 그런 세상도 있구나. 어쩌면.

아빠는 얼마 전 나와 말다툼한 다음부터 말이 없었다. 아빠는 나에게 엄마가 필요하다고 했고, 나는 그게 핑계라고 이야기했다. 큰소리가 나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10년 동안 엄마가 없이 살았는데 이제 와서 왜 엄마가 필요하다는 건지. 아빠는 연약한 사람이다. 늘 굳은 얼굴로 치장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알지 못할 뿐. 그리고 자신의 나약함이 불러온 결과를 정당화하기 위해, 늘 나를 이용했다. 나 이전에는 엄마를 이용했고. 엄마가 왜 사라졌는지 알 수는 없었다. 나는 너무 어렸고, 아빠는 늘 말이 없었으므로. 가끔 연락이 오기도 했고, 가끔 만나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내 인생에서 사라져 버렸다. 어떤 일이든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전화번호도 바뀌었고, 톡을 해도 연락이 오지 않고. 아마 나에게는 엄마가 필요할 테지만, 아빠가 이야기하는 엄마는 나의 엄마는 아니겠지. 그래서 주말 내내 나는 밖에 나와 있었다. 일찍 일어나 동네를 돌아다녔는데, 사람이 없는 곳으로 다녔다. 편의점에 한 참 앉아 있다가 멀리 공원까지 걷다가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없었다. 아빠가 몇 번이나 전화했었을 터이지만 받지 않았다. 아니 사실 받을 수가 없었다. 금요일 저녁부터. 하지만 아무도 연락 오지 않고, 아무에게도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수요일인가 목요일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그래서 그대로 휴대전화를 서랍에 넣어버렸다.

일요일 저녁에 집에 돌아와 보니 아빠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텔레비전을 켜 놓고 있었는데 딱히 보는 것 같지는 않고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현관에서 가만히 아빠를 바라보았다.


나는 엄마가 필요 없어. 근데 아빠가 누군가 필요한 거라면 그렇게 해.


최대한 감정을 섞지 않고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빠가 야간근무를 하러 나가고 난 후, 아빠 방으로 갔다. 방문을 열자 담배냄새와 알 수 없는 이상한 냄새가 방 전체에 흐르고 있었다. 어릴 때, 아빠는 나를 잘 안아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따금 멀리 다녀오는 길에 내가 잠들면 나를 업고 집으로 올라오곤 했다. 좀처럼 맡을 수 없는 아빠의 냄새를, 담배냄새와 잘 알 수 없는 싫지 않은 냄새를 맡기 위해 나는 꽤 자주 자는 척을 했다. 그러면 그 뒤를 따르는 엄마는 내 등을 두르리기도 하고, 내 볼을 꼬집기도 하고. 그래도 나는 이부자리에 몸이 눕혀질 때까지 절대 눈을 뜨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엄마와 아빠도 큰 소리도 싸우던 날 보다 평범했던 날이 많았는데.

어느 날 엄마와 단 둘이 긴 식사를 끝내고 울던 엄마를 한 참 달래던 그날 이후, 엄마가 집으로 들어오지 않고 집 앞에서 나를 들여보내던 그날 이후, 아빠는 더 이상 나를 멀리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더 이상은 자는 척하지 않았다.

아빠는 나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다. 식사도 제때 준비해주려고 노력했고, 원하는 것은 최대한 사주려고 노력했으니까. 옷은 최대한 깨끗하게, 집도 할 수 있는 만큼 정리하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을 모를 만큼 나는 어리석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노력을 인정할 만큼 내가 착한 것도 아니었다. 아빠는 청소하고 빨래하고 식사를 준비했지만 정작 나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아빠는 너무 여리고 상처 받기 힘든 사람이었고, 나 또한 아빠를 닮아서 그랬다.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원하는 것을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았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길 두려워했다.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함께 있을 때, 일어나는 공백을 우리는 두려워했다. 그 공백 너머에는 아빠의 모습을 한 내가 있었고, 이편에는 나의 모습을 한 아빠가 있었으므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빠의 담배를 들고 현관 밖으로 나갔다. 현관문 옆 화재경보기에는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십 년은 족히 아무도 돌보지 않은 것 같은. 나는 가만히 경보기 버튼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경보기 버튼을 보호해주는 플라스틱 덮개는 사라진 지 오래. 버튼의 감촉이 손 끝에서 전해져 왔다. 이 버튼을 누른다고 해서 무슨 일이든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버튼이 안쪽으로 눌려 들어가고 요란하게 비상벨이 울려도 이 낡은 빌라 어느 곳의 문도 열리지 않을 것이고, 곧 소리가 멈추면 아무 일 없이 모두 무기력한 저녁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버튼이 주는 긴장감이 버튼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잠시의 소란이라도 일어났으면. 나는 늘 아무 일 없는 하루를 살고 있으므로. 아마 내일도 나는 학교를 갈 것이고, 엎드려서 잠을 청할 것이고,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관심 혹은 무관심을 받을 것이고, 하루는 조용히 흘러가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이므로. 엄마는 어디선가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내가 모르는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없는 것처럼 하루를 보낼 것이므로. 내 전화를 받지 않는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통화하고 부재중 통화를 확인하고 가슴 아파하겠지만 결국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하루를 살아갈 것이므로. 아빠는 누군지 모르는 여자를 만날 것이고, 곧 혹은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독립한 후 그 여자를 집으로 데려오려는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식사를 할 것이므로. 하지만 내가 두렵고, 상처 받기 싫은 아빠는 결국 그 여자를 나에게 소개하지도 못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한 평소 같은 표정으로 집에 돌아올 것이므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버튼이 누르고 싶었다. 아무도 반응해주지 않더라도 계단을 울리는 그 잠시의 비상벨이라도 듣고 싶었다.


이윽고 나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고 버튼은 눌리고 조금 더 눌리고 더 눌려서 마침내 바닥에 가서 닿았다. 나는 버튼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누르고 또 눌렀다. 버튼은 바닥에 몇 번이고 닿았다. 그 버튼이 닿는 감촉을 몇 번이나 느끼며 나는 작고 짧은 혼란을 기대했다. 그리고 기대와는 다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울려 퍼지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


나는 한숨을 한 번 짧게 쉰 후, 아빠의 담배를 들고 집을 나섰다.

마침내 그리하여 마땅히 아무 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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