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을 뜯어내고, 허물을 벗어내고..
특별히 잘나진 않았어도 무난하게 지내온 세월이었다.
넉넉하진 않지만 온화한 부모님 밑에서 따뜻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입학과 졸업, 취업과 결혼,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까지 나의 인생은 특별히 모난 구석 없이 평범하고 편안했다. 모든 사람들이 살아온 날들에 대해 점수를 매긴다면 그 중간에 딱 나의 삶이 있지 않을까? 아니다. 그보다는 조금 더 높겠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시련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아픈 날이 없었으니..
하지만 최근에 안정적이던 내 인생그래프의 파동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일례로 얼마 전 회사에서 생각지도 못한 시련을 겪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잘못한 일은 없는 거 같은데... 사실 여기에 구구절절 써내려가기에도 민망할만큼 시련이라고 하기에도 거창하나 그간 나의 열정과 노력에 대한 부정을 당한 것과 같아서 동굴 속으로 들어가 숨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거기에 나의 편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조차 결국 자기의 이익을 쫓아가는 모습들을 보며 거의 20년간 몸담았던 조직에 그리고 그 세상이 다라고 여기고 살았던 나에게도 환멸을 느꼈다.
이에 더해 든든하게 내 뒤에서 언제나 지켜주시던 부모님조차 세월을 비껴나가지 못해 내 손이 필요할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아들은 갑자기 나에게 더 많은 엄마정보(?)를 요구하는 데다가, 딸은 사춘기가 불안증으로 왔는지 어릴 때도 없던 분리불안이 생겨나 다 큰 껌딱지를 달고 다녀야만 했다. 세상이 나에게 더더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구석으로 몰아붙이는 기분이랄까..
이제 내 인생이 진짜 쉽지 않아 지는 것인지 또는 내 마음이 이 정도의 자극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나약해지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약 3개월. 여전히 몸은 바쁘나 마음은 헛헛한 시간이 흐르고 흘렀다. 이 와중에 괜찮냐는 주변의 물음에 필요이상의 씩씩함으로 내가 그 정도에 상처받을 거 같냐며 큰소리치고, 아이들에게는 마치 처음부터 원더우먼인 엄마였던 것 처럼 필요이상의 에너지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지인들에게서 오는 연락은 의도치 않은 회피로 내 짐의 무게를 덜어내곤 했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니 이런 헛헛함에 익숙해지고 그마저도 무료해지더니 퍼특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내가 왜 이렇게 가라앉고 딱딱해져 있지?
무엇 때문이고 또 누구 때문이지?
내가 원래 이렇게 나약했나?
이렇게 설익었나?
찬찬히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들은 내가 나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남들이 나를 보는 시선에 구속되어 내 인생을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명확히 난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더 중요하고, 다른 사람이 우선인 사람이 되어버렸나.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얼마간의 자기 성찰의 시간이 지나갔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내린 결론은 바로 포기다. 남들의 시선으로부터의 나를 포기하고, 세상의 기대에서부터 나를 포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난 나를 지키는 방법을 하나씩 배워가려고 한다. 나를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표현하면서 말이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걱정이 되는 나의 모습을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이 글을 보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멋있게 표현해 볼까.
아직은 바로 바뀌기는 어렵겠지. 그래도 하나씩은 바꿔볼 생각이다.
남이 상처받을까 봐 못했던 나의 생각.
나의 허물이 될까 봐 삼켰던 나의 이야기.
얼마 후 또 괜찮아질 텐데라며 오지 않을 미래까지 배려했던 쓸데없는 나를 버려내는 일부터 시작해보려고 한다.
점점 더 무거워지는 어깨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나의 생각을 다 뱉어내보려 한다.
자 이제 시작한다. 지랄 맞은 40대의 솔직한 생각의 나래 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