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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시나 Apr 14. 2024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아니 고사리 핀다.

첫 고사리 사냥기

바야흐로 봄이다.

누군가는 봄이 되면 되려 마음이 우울해진다고 하지만 난 칠렐레팔렐레 몸과 마음이 아주 풍선마냥 둥둥 떠다니곤 한다.

충분히 무거운 내 몸에 두터운 외투까지 입고 다녀야했던 겨울이 지나서냐고?

아님 추운 겨울 이겨내고 어여삐 피어낸 봄꽃이 대견해서냐고?

물론 그 둘도 봄이 좋은 이유에 해당하겠지만 나에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고.사.리.

바로 이 요망한 것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봄이 되면 항상 고사리 꺾으러 가야한다며 쉬는 날마다 새벽길에 친구들과 나서곤 했다. 머리에 커다란 챙이 있는 작업용 모자에 왠간해선 찢어질거 같지도 않은 두터운 바지와 점퍼를 입고 큰 배낭 하나를 매고 나서는 엄마의 모습을 어린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차라리 이쁘게 차려입고 봄 나들이나 가지.. 일주일에 달랑 한두번 있는 연휴를 또 일을 하러 나간다는 엄마가 이상해보인 것은 당연지사.


그러다 3~4년 전 쯤이었나. 회사 근처에서 산책을 하던 중에 우연히 삐죽히 얼굴을 내밀고 있던 고사리를 발견하였다. 처음에는 긴가 민가 하다 함께 길을 걷던 후배와 함께 그 고사리를 따보기로 했다. 톡!! 경쾌한 소리를 내며 고사리가 내 손에 꺾여 들어왔다. 어?! 이거 재밌네?!!


그리고 그 즈음이었다. 그야말로 시골서 나고자란(심지어 우리 엄마 고향 바로 옆동네란다..) 오랜 내 친구가 고사리 꺾으러 가보면 안되겠냐고 통 사정을 해왔다.

아니 내가 무슨 고사리를 꺾느냔 말이지.. 고사리가 나를 잡아잡수겠지. 매번 거절하던 나는 잠깐의 손 맛 이후 겁도 없이 친구의 부탁에 그러마했다. 또 고사리 전문가인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고, 엄마는 처음으로 동행을 부탁한 나에게 적잖이 놀란 듯했지만 약간의 비웃음과 함께..흔쾌히 허락했다.


그리고 대망의 당일. 청바지에 운동화, 야구점퍼를 입고 나선 내 모습을 본 엄마는...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차 트렁크에서 턱턱 뭔가를 꺼내더니 순식간에 나를 고사리 따는 동네 아낙으로 변신시켜 놓았다. 변해버린 내 모습이 어색하고 마뜩치 않았다. 역시나 고사리 따는 것은 나 같은 사람이 할 것이 못되었던 것인지 드넓은 풀숲을 지나고 철조망(?)을, 진흙밭을 건너고, 이제 나 포기하겠다고 선언할 즈음에야 그 스팟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오...내 눈앞에 펼쳐진 작고 귀여운 고사리들...힘들게 들어온 만큼 성과가 있어야 한다며 마음을 단디 먹고 정신없이 따고 있자니 내 뒤를 따라오던 엄마가 답답하다는 듯이 왜 이걸 못보냐며 내가 훍고 지나간 그 길에서 내 손가락보다 더 굵고 장대같이 긴 고사리를 하나씩 하나씩 꺾고 오고 있는게 아닌가. 아니 내 눈이 잘못되었나. 갑자기 저 고사리들이 어디서 나타났단 말인가. 심지어 나를 보채던 친구도 알고보니 선수. 스팟을 몰랐을 뿐 고사리에 대한 일가견은 누구보다 뛰어난 아이였던 것. 이런 배신자..


덕분에 난 엄마의 핀잔, 아빠의 야유, 거기다 그 친구와 비교까지 당해가며 첫 고사리를 경험했다.


그래서 싫었냐고?!! 천만에!!

그 날 난 신세계를 경험했다. 그런 비난(?) 따위는 가볍게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희열을 맛보았달까? 고고한 자태로 쭈욱 땅을 뚫고 나온 고사리를 하나 하나 꺾어갈때마다 내 머리에 있던 잡생각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저 바삐 움직이는 내 손과 눈, 토독 토독 고사리 꺾이는 소리가 반복될 뿐이었다. 또 가끔 반갑다 우는 건지 빨리 내 구역에서 나가라고 우는건지 생전 도시에서 들을 수 없는 맑은 새소리와 바사삭 마른 풀 밟히는 소리만 있을 뿐이다.


또,  간혹 고사리 두개가 한눈에 띄어 하나를 꺾으며, 남은 하나에게 잠시만 기다려 하고 마음먹고 다시 고개들어 보며 아까 분명 봤던 고사리가 없어지는 신통방통한 경험도 하게 된다. 도망간 것도 아닐텐데 마치 너무 욕심부리지 말라고 주는 신호 같기도 했고, 초심을 다잡고 다시 한번 잘 찾아보라는 다독임 같기도 했다.

또, 분명 눈 앞에 펼쳐지 있지만 어떤 사람 눈엔 안보이고, 안보이던 고사리가 또 다른 사람 눈엔 보이고 마치 살아 움직이는거 같았다.

이 정도면 고사리 채집이 아닌 고사리 사냥이란 표현이 더 맞지 않을까?


그날 그 나머지 세명과 비교했을 때 터무니 없이 적은 고사리를 수확했다. 당연하지. 초보에게 그리 쉬이 잘 내어줄리가.

그날 첫 고사리를 경험하고 피곤한 몸을 누인 나는 한참을 눈앞에 아른거리는 고사리때문에 쉽게 잠이 들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해 봄 내내.. 예전 내가 이해할 수 없던 엄마의 그 모습으로 쉬는 날만 되면 지겹도록 고사리를 꺾으러 다녔다는 사실...


올해도 봄이 왔고, 천지가 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하니 그 들판에서 뾰족 뾰족 나와 기다리고 있을 고사리들이 눈에 밟힌다.

이미 마음 급한 사람들은 고사리를 한참 꺾고 있다고 한다.

이제 내 엉덩이도 한없이 들썩들썩. 어서 빨리 고사리 손 잡으러 가야쓰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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