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얼마 전 회사 후배가 한껏 부른 배를 안고 뒤뚱뒤뚱 출근하는 모습을 보았다. 분명 몸은 너무 힘들텐데 그 와중에 뽀얀 얼굴로 배시시 웃으며 인사하는 그 후배를 보고 있자니 15년 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행복한 임산부를 볼때마다 항상 그러했듯 또 나의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난 그때 엄마가 된다는 사실을 전혀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철없고 못난 엄마였기 때문이다.
26살 겨울이 막 시작될 즈음이었다. 약 3년간 만나던 전남자친구의 부모님의 등쌀에 못이겨 27살 초 나는 생각치도 못했던 이른(?) 결혼을 했다. 회사에서는 여전히 막내로 아둥바둥 적응하느라 애쓰는 시기였지만, 막내 아들까지 빨리 장가보내 자식농사를 빨리 마치고 싶으셨던 시어머니의 추진력 덕에 정신차려 보니 식장이더라는...그 뻔한 레퍼토리의 주인공이 되어있었다.
정신없는 결혼 생활의 시작이었지만 어쨌든 결혼을 하고 난 뒤에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부모님 잔소리도 없을 뿐더러 남자친구와도 소꿉놀이 하듯 재미있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결혼 이후 1년의 시간이 지나자 양가에서 아이에 대한 압박이 시작되었다. 설상가상 일을 하고 계시던 친정엄마는 태어나지도 않은 손자 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두겠다 선언까지 하시니 막다른 길에 몰린 기분으로 하늘에 맡기자라는 결론을 내렸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 3주만에 나는 나의 첫 아이의 존재를 알게되었다.
그 때에는 몸이 이상하기도 하고 검진도 받을 겸 산부인과를 방문했었다. 병원에서는 검사를 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임신인거 같은데 너무 일러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이야기였다.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엄마가 될 수도 있다고?! 당황스러움에 차마 가족들에게 말도 못하고 내 머리속은 이미 아비규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진짜 임신이면 어떻게 하지? 첫째, 정원감축으로 피바람이 불고 있는 회사에는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나? 두 번째, 이제 내 생활은 어떻게 되는거지? 세 번째, 내가 아이를 키운다고? 그 다음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회식이라고 흥청망청 술마시고 놀았는데 괜찮으려나? 불과 몇일 전 급하게 뛰어가다 넘어졌었는데 괜찮나? 라는 걱정. 별별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춤을 췄고 이 와중에도 임신이 아닐 수도 있잖아라는 자기 최면을 걸기도 했다.
하지만 임신 5주차가 되니 임신이라 확신할 수 밖에 없는 지독한 입덧이 찾아왔다. 입덧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고통이었다. 처음 하루 이틀은 속이 아무리 안좋아도 견딜만 했다. 그러나 날이 갈 수록 그 고소하던 밥 냄새는 참을 수 없을만큼 역해졌고, 생수에서도 말도 못하게 비릿한 맛이 났다. 그나마 먹을 수 있는건 아무맛도 안나는 크래커와 복숭아 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먹고나면 남김없이 토해내곤 했다. 먹고 토하는거면 차라리 낫지...너무 힘들어 수액이라도 맞을라 치면 정확히 두시간 후에 그 수액마저 뱉어내야만 했다. 오죽하면 그 당시 회사에서 나의 별명이 “공포의 오바이트”였을까. 배고프니 먹긴 한다면 먹으면서 그 훗일을 걱정해야 하는 팔자라니..
그렇게 딱 두달 지독한 입덧에 시달리다 보니 해서는 안될 생각마저 들었다. 이미 내 몸도 너무나 힘든데, 그 와중에 회사까지 가 꾸역꾸역 눈치보며 일까지 해야하니 살아 무엇하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인간의 기본적인 식욕마저 충족하지 못하는 삶인데 이걸 견뎌야 하는 것인지 모든걸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화창한 초여름 날씨가 무색하게 자꾸만 내 마음은 겨울이었고, 몇날 몇일 이불을 뒤집어 쓰고 엉엉 울었더랬다. 임신 초기. 28살.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아득한 그 시절 나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세달이 지나 내 임신이 반을 지나갈 때쯤 내 몸 하나 건사 못해 무서워 벌벌 떨던 나는 점차 새로운 나에 적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