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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시나 Apr 23. 2024

2. 왜 저한테 엄마라고 부르세요?

여전히 저는 준비가 안되었다구요..

임신 중반부를 넘어가면서부터 나를 괴롭히던 입덧은 점점 없어졌다. 물론 완벽하게 없어진것은 아니었고, 목에 밥풀 하나 낀것같은 불편감은 계속되었지만 그래도 먹고 토하고의 반복만 없어져도 이제 산송장에서 비로소 사람이 된것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조금씩 불러오는 배와 변해가는 내 모습에도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적응하지 힘든 것들이 많았다. 특히 정기검진차 병원에 갈라치면 "산모님~" 이라고 부르는 간호사의 살가운 목소리가 그렇게 생경할 수 없었다. 아니 생경함을 뛰어넘어 징그럽기까지 했다. 드라마에서 보면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온화한 웃음을 짓는 임산부들이 아름답게만 그려지는데, 나는 여전히 배불뚝이 내모습이 불편하고, 내 이름보다는 산모님이라고 불리는 내가 거북했다. 그것 뿐이랴. 내 배를 다 덮는 임산부바지는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입을때마다 내 현실을 자각하게 했고, 가뭄으로 메말라 벌어진 논밭과 같이  내 배와 허벅지에 튼살이 늘때마다 울고싶은 마음 뿐이었다.


이렇게 어설프고 삐걱거리는 시간도 흘러 어느덧 나도 만삭의 임산부가 되었다. 임신하고 제일 기다려왔던 출산휴가가 시작됐다.(내가 진짜 기다린건 출산이 아닌 출산휴가임을 밝혀둔다..)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이렇게 장기휴가를 내게되다니. 반드시 즐기리라...누리리라..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미 너무 무거워진 배로 인해 어디 편히 다니기도 힘들뿐더러, 도대체 쉬는 날 뭘해야 좋을지도 모를 멍청이가 되어있었다. 기껏해봐야 집에서 게임이나 하고 책이나 좀 읽어볼까하다 스르르 감겨오는 눈을 감고 낮잠을 즐기다보면 다시 저녁이 되고, 퇴근하는 신랑이 친구들이나 좀 만난다 치면 그렇지 못하는 내 모습에 한없이 침전되고야 마는..


반면에 내 친구들은 하나 둘 자리를 잡기 시작하며 젊음을 쫓아 누구보다 화려한 청춘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한 그녀들에게 굳이 “애들아..이것이 너희들이 미래란다..”라며 부른 배를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고, 정작 만나는 친구들도 위로와 축하의 말 어디즈음엔가 본인일은 아니라는 미묘한 거리감이 느껴져 그마저도 꺼려졌다. 그리고 이런 와중에 빨리 나아 키우는게 좋은거라는 어른들의 말을 위로삼아 보았지만 과연 나의 청춘은, 그리고 예전의 나는 다시 돌아올 것인지.. 막막하고 막연했다.


하루빨리 아이를 낳아 깃털같은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는 기꺼이 내 배 속에 있는 이 아이를 어마무시하게 사랑해주리라. 그때는 나도 여느 sns의 멋진 엄마들처럼 예쁜 옷을 입고 멋진 유모차를 끌고 한손엔 커피를 들고 그렇게 젊음을 무기 삼아 힙한 엄마가 되리라 그리 다짐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혀를 끌끌차며 뱃속에 있을때가 좋을때다...하는 주변 선배엄마들 말은 들은체만체, 전 아니거든요?를 시전하며 뱃속의 아이와의 만남도 중하지만 본래의 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기대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D-day. 예정일을 딱 일주일 남겨두고 산책을 다녀온 갑자기 양수가 터져 병원으로 향했고, 약 13시간이 넘는 진통(사실 무통주사 덕에 그리 아프진 않았다..) 끝에 “아이고..머리가 커서 엄마가 이리 힘들게 했구나..”라는 별로 달갑지 않은 의사선생님의 말과 함께 나의 첫 아이를 만났다. 힘든 과정 끝에 낳아서 그런지 아이의 머리는 흡입기 때문에 꼬깔콘 모양이었고, 피도 안닦인 아이를 처음 품에 안겨줄때는 역시나 이상했지만, 그전의 거부감과는 다른 묘한 감동이 함께했다. 이제 이 어린 생명은 나 하나에 달려있구나. 이제 나도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아이의 온전한 보호자여야 한다. 막중한 책임감이 밀려들었다.


아이를 낳고나서도 나는 여전히 초보 중에 초보였다. 아이에게 우유는 어떻게 줘야하는지 만지면 부서질것 같은 아이를 어떻게 안아야 하는지.. 특히나 친구들 중 거의 첫타자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지라 주변에서 보고 들을 일도 없었다. 나의 구세주는 오로지 친정엄마.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엄마는 우리를 키웠던 경험을 떠올리며 나보다 훌륭한 보호자 역할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모성애는 어쩔 수 없는 것인지 그 어색했던 아이가 하루하루 너무 이뻐보이고, 오롯이 이 아이의 엄마여야겠다 생각했다. 나도 이제 어쩔 수 없는 엄만가봐...그 전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나의 임산부 생활은 까맣게 잊어버린채 그 아이를 보고 얼마나 기쁘고 뿌듯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지 몇일 되지 않아 조리원에 들어가기 전 처음으로 아이 검사를 위해 소아과로 갔다. 소아과는 도대체 얼마만에 온 곳인가. 겉싸개로 꽁꽁 싼 아이를 조심히 안아들고 병원으로가 접수를 하고 기다리려니 간호사가 내 쪽을 보며 불러댔다.

“엄마! 엄마!!“

두리번 두리번.. 저 간호사 엄마가 여기 오셨나?!! 나이 드신 분은 안보이는데..

그러자 그 간호사는 내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다시 말한다.


“엄마요~!! 진료실 들어가실게요~”

누구요?!! 저요?!! 아니 제가 왜 쌤 엄마예요~?!!  


아직도  난 멀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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