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일기-모든 감각이 소중하다

by 서한겸

아침에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가 폰을 끄고 10분 명상을 했다. 폰을 보는 동안 얼마나 시각을 많이 쓰며

다른 감각들을 무시하는지 깨달았다. 청각, 촉각 등. 버스의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수많은 변화가 느껴졌다. 그게 기쁘고 재밌고 만족스러웠다.

이 많은 감각을, 폰 하느라 너무 많이 무시했다. 모든 감각이 소중하다. 감각들을 깨끗이 하고 싶다. 대단한 건 아니더라도 내가 느끼는 감각들을 깨끗하게, 소중히 하면 단지 내가 느끼는 감각들만으로도 충만해질 것 같다. 느낄 수 있다는 자체가 감사하다. 정말 감사하다.

걸을 때 앉아있을 때 등등 정말 많은 감각이 있지만 나는 지금 숨이 잘 안 쉬어지는 문제가 있어서, 숨이 잘 쉬어질 때 진짜 시원하고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불쌍하기도 한데, 하여튼 숨 잘 쉬는 데에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

명상은 나를 차분하고 만족스럽게 해 준다. 그리고 시작한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도 효과가 뚜렷하다. 길가의 나무가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고, 말의 의미도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폰중독으로 흐려졌던 의식이 디톡스되는 게 아닐까 싶다.


나와 관계없는 분노를 멈추자. 감정을 멈추자. 내가 그 일에 뛰어들 게 아니라면, 멈추자. 내 일에 집중하기 싫어 회피하는 것일 뿐이다.

불필요한 감정이 올라오면 감각을 환기해야 한다. 알아차리고 빠져나오는 게 쉽지는 않지만 연습하면 잘하게 되겠지. 감정도 관리를 해야 한다.


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횡단보도 위에서 거의 차에 치일뻔했다. 분명히 멀리 있던 차인데 우리가 건너는 동안 빠르게 달려와 우리 앞에 정말 가깝게 지나갔다. 움직이는 차가 내 옆을 지나갔던 중에 가장 가깝게 지나갔고 위협적이었다. 어이없고 화가 났던 점은, 이 차도 위험했다고 느꼈는지 몇 미터 지나 차를 세우더니, 우리가 욕하고 이걸 신고할 수 있나 없나 따져보고서 '사고도 나지 않았고 증거도 없어서 아무것도 안 될 것 같다'고 결론을 내리고 그냥 가기로 한 1분 정도 동안 가만히 서 있다가 우리가 그냥 가니까 자기도 다시 제 갈 길을 간 거다. 내려서 사과라도 해야 하지 않나. 하긴 그럴 상식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운전을 그런 식으로 하지 않았겠지? 너무 놀라서 제대로 된 판단을 못한 걸 수도 있고.

나야말로 정말 놀라고 화가 나서 거의 한 시간을 흥분해 있었다. 이런 위험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지 남편과 상의했는데,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영상을 찍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생각만 해도 긴장되고 피곤하다. 그리고 증거를 남기는 게 문제가 아니다. 다치는 걸 피하고 싶다. 하지만 결론은 '이런 식으로 운전하는 차라면 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양옆을 안 살핀 것도 아니고, 그 차는 분명히 멀리 있었기 때문에 건넜던 것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그냥 와서 들이받는 차를 어떻게 피하겠냐고 말했다.

그건 그렇지... 그건 그냥 천재지변이나 마찬가지지.

도저히 차에 치이고 싶지 않는데... 정말 무섭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마음이 안 좋아서 저녁에 10분 더 명상을 시도했다. 다른 생각도 많이 떠올랐지만 나를 칠뻔했던 차에 대한 분노와 욕이 계속 떠올랐다.


이미 일어난 일이 내 명상까지 망치게 하지 말자. 안 다쳐서 다행이다. 지금 병원이나 경찰서에 있지 않고 집에 와서 씻고 쉬고 앉아서 명상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자칫하면 치일 수도 있었지. 안 치인 건 그냥 우연이고 운이었다. 화가 나지만 안 다쳐서 다행이다. 화가 나지만... 안 다쳐서 다행이다.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답이 없다는 점이 무섭지만, 40년 살면서 이런 위험한 차는 처음 본 셈이니까 확률이 높진 않다. 조심은 하되 불안을 키우지는 말자. 불안해하지 않으면서 더 조심만 하도록 마음을 다스리자.

명상은 마음과 머리를 청소하는 행위다. 머리든 마음이든 내 의식을 넓고 내 마음에 들게 꾸며진 빈 방이라고 생각한다. 이 방에 자꾸만 들어오는 생각 걱정 등등을 자꾸만 밖으로 보내 빈 방으로 유지하는 거다. 잠시만이라도. 텅 빈 방에서는 작은 소리도 잘 들린다. 여유롭다. 집중도 더 잘된다. 잠시만이라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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