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일기-생존해냈다

상담 2/8

by 서한겸

하루에 몇 가지 일정만 있어도 이렇게 숨이 안 쉬어지는구나. 어깨가 올라가고 너무 많이 긴장한다. 절대 늦거나 어기고 싶지 않은 약속일수록 더 그렇다.

그래도 좋은 일도 있다. 어제 알탕 재료를 사 와서 무, 콩나물, 미나리를 추가해서 끓였는데 맛있었다. 꽤 위로가 되었다.


상담 2번째 날. 가자마자 내가 '불안을 강화시켜서 내 충격을 없애기로 결심한 날, 최악을 상상해서 나를 방어하기로 결심했던 순간'과 어린 시절 어떻게 나의 수치심이 강화되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상담사는 자꾸 지금 내 가족, 생활, 마음, 계획에 대해 물으며 이야기를 돌렸다. 나는 '이번 8회기 동안 불안과 사고 강박을 다루고 싶다고 했던 내 말을 잊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답답하고 화가 났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상담사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나:불안과 강박을 더 다뤄봤자 거기에 먹이만 더 주는 것 같다. 이미 오래 다뤄왔고, 딱히 풀어지지 않는다면 그냥 거기에 신경을 덜 쓰고 다른 데에 주목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상담사:지난 상담 이후 많이 고민했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애착 문제가 있어 보이니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말을 걸고, 어린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 듣고 싶었던 말, 하고 싶었던 일, 먹고 싶었던 것 등을 지금의 내가 해주고 충족시켜 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상담을 마치고 애착장애를 검색해 봤다. 애착장애의 핵심 증상은 다음과 같다. (구글 검색 결과) 감정적 억제 및 회피:불안이나 슬픔 등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불편한 상황에서 양육자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음. / 사회적 관계 형성 곤란:눈 맞춤을 피하거나 타인과 친밀해지는 것을 거부함. / 과도한 경계심:양육자나 타인에 대해 지나친 경계심을 보임. / 부정적 감정 조절 어려움:분노, 슬픔을 조절하지 못하고 잦은 짜증을 보임. / 자신만의 세계 몰두:타인과 상호작용하기보다 혼자만의 세계에 몰두하는 경향.

지금은 조금 덜해졌지만 유아기 청소년기 성인기 전반의 내 특성과 일치한다.


그리고 내가 해리 반응을 수시로 일으킨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지만, 상담사도 자주 느껴진다고 했다. 이야기를 하다가 나의 의식이 어디론가 떠나거나 빠져나갔다가 돌아오는 게 느껴진다고. 어떤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수시로 해리되는 것 같다.


더 이상 탓하지도 억울해하지도 말자. 어린 내가 하고 싶었던 말, 듣고 싶었던 말, 하고 싶었던 일, 먹고 싶었던 음식을 생각해 보자. 음식은 그동안 많이 먹은 것 같다. 나는 편안하게 혼자 있고 싶다. 이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안전하고 안정감을 주는 상대와 편안하게 둘이 있고 싶다. 다 괜찮다, 걱정하지 마, 편안하게 있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고,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너는 이겨낼 수 있어, 나도 옆에서 도와줄게, 결국은 다 괜찮을 거야, 이런 말이 듣고 싶다.

하고 싶었던 말은... 어린 나에게 수시로 화풀이를 하던 가족들에게 하지 마, 저리 꺼져, 나 좀 가만히 놔둬, 네 문제는 네가 알아서 해 나한테 화풀이하지 말고, 부모가 됐으면 좀 생각을 하고 내 앞에서라도 싸우지 좀 마라, 이런 말을 하고 싶은데, 상상하기 어렵다. 당시의 나는 참으려고 해서 참고 가만히 있고자 해서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약한 동물이 강한 동물에게 당하듯이 어쩔 수 없이 당하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나:내가 느끼는 수치심은 내가 뭘 잘못해서 생긴 수치심이 아니라 '어리고 힘이 없어서 가만히 당할 수밖에 없었던 무력감에서 오는 동물적인 수치심'이라는 걸 알았다.

상담사:그럴 수 있다. 그런 감정도 아주 강한 종류다. 그래도 어떤 에너지를 가지고 수없이 노력을 해왔고 이리저리 방법을 찾아다니고 많은 걸 시도해 왔다. 그 자체로도 큰 힘이 있었던 거고, 그랬기 때문에 생존할 수 있었던 거다. 생존해 낸 스스로를 충분히 칭찬해 줘야 한다.


상담은 위안이 된다. '돈 주고 우쭈쭈 받으니까 좋냐'는 못된 말이 스스로에게 떠올랐는데, 나도 참 나 자신에게 잔인하다 싶다. 나에게 자애를 베풀어야지. 상담 내내 안 울려고 애썼는지 끝나고 나와서 3시간 넘게 머리가 지끈거렸다.


명상 10분 겨우 했다. 졸았다. 상담이 꽤 힘이 든다.

그래도 나아지는 느낌 기분이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명상 일기-잠드는 것도 나쁘지 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