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일기-편안한 슬픔

by 서한겸

20대 때 고기를 먹으면 '내가 고기가 되는' 꿈을 꾸곤 했다. 특히 고기를 보면서 내 살과 유사함을 느끼는 날엔 더 심했다. 내가 살코기로 다듬어져 컨베이어 벨트에서 운송되고 있다거나 하는 꿈이었다. 고통스럽지는 않고 '아 이미 죽어서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내 살과 이렇게 비슷한 걸 먹는 게 참 이상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원래 고기맛도 잘 몰라서 20대 초반 자취하던 1년 간 채식을 했다. 내 몸에 맞고 좋았다. 생리통, 배탈도 없어지고 감기도 거의 안 걸렸다. 하지만 그 뒤로 식단을 스스로 꾸리지 않게 되면서 다시 고기를 먹었다. (되는대로 먹으면 잡식을 하게 되지, 채식하기가 더 어렵다.) 고기가 되는 꿈을 계속 꾸었다.

그러다가 결혼 후 내가 장을 보면서 다시 채식을 했는데 한 달 만에 생리가 끊겼다. 다시 고기를 먹었더니 생리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있던 빈혈이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아마 노화의 일환이지 싶다. 고기를 '복용한다'고 생각하며 꾸준히 먹고 철분제도 먹어야만 빈혈 증상(근육통 어지러움 등등)을 덜 느낀다.

재미있는 점은,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후로부터는 고기가 되는 꿈을 꾸지 않는다는 거다. 게을러서 먹는 게 아니라 필요해서 먹는다 생각하니 죄책감이 덜해진 모양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 모두 예민하고, 작가인 친구가 있다. 한 번은 그에게 말했다.

나:예민한 사람들을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가족들도 싫어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둔한 건 좋은가? 둔한 것도 좋진 않지 않나?

친구:예민한 사람들은 요구하는 게 많다. 요구하지 않고 있어도 참고 있거나 괴로워하고 있고, 그 에너지가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둔한 사람들은 요구가 없다. 주변 사람들이 편하다. 너 같은 사람이 네 가족으로 있다고 생각해 봐라. 피곤하다.

나:아...

납득했다. 스스로 다스릴 문제라고 생각한다.


요 며칠 박진여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위안받고 있다. 내가 생각한 윤회와 깊이 공명하는 내용들이다. 나는 이번 생에 어떤 과제를 풀기 위해 이 사람들과 가족이 되었을까? 나의 원가족도, 내가 결혼해 이룬 가족도 궁금하다. 윤회를 생각하면 나는 아직 슬픔과 두려움이 더 크다. 이건 내 사고가 부정적으로 편향되어 있어서 그런 거다. 나쁜 일이 생기면 '어떤 죄 때문일까?', 행복한 일이 생기면 '다음 생에 박탈되려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에 이유가 있고, 이번 생에서 이렇게 되면 다음 생에서는 저렇게 된다는 '균형 감각' 때문이다.


오늘 108배를 하면서 많이 슬펐다. 할머니 10대 시절에 할머니 동네에서 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 친구분들을 위해 기도했다. 평안하세요. 평안하시길... 그리고 할머니가 내 엄마를 낳기 전에 낳았다는 세 명의 자녀분들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역병과 낙상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어린이였을 것이다. 평안하시길 빌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욕심으로 가득 찼는지, 한 번 절할 때마다 '평안하세요' 기도하려 했으나 어느새 기도는 '도와주세요'로 바뀌고 있었다. 자꾸만 그랬다.


아델, 시아, 마일리 사이러스, 크랜베리스 등등... 의 슬픈 노래만 찾아 듣다가 그만뒀다. 나는 지나치게 '슬픔만 편안해한다' 모드를 바꿀 것이다.


108배를 하면서도 눈물이 벅차올랐지만 옆에 남편이 있어서 참았다. 신경 쓰게 하고 싶지도 않고, 내 마음을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말하고 싶지 않음'도 컸고, 별로 관심 없을 문제를 많이 전달해서 부담 주고 싶지도 않았다. 이건 나의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성장 문제라고 생각해서다.

명상하면서도 오늘은 꽤 편안하게 슬펐다. 꼬인 슬픔이 아니라 잘 펼쳐진 슬픔이었다. 슬픔을 피하려 하지 않고 미워하지도 않았다. 이것만 해도 전보다는 나아진 거다. 예술인 복지재단 심리상담도 신청했다.

슬픔, 교만, 죄책감, 원망으로 아직 내 마음은 가득 찼나 보다. 감사, 겸손, 자신감, 사랑으로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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