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를 마흔에 낳았다. 지금도 늦은 나이이니 80년대에는 꽤 늦은 나이였다. 내가 성인이 되는 거나 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누가 엄마냐 할머니냐 물어보는 게 그렇게 무섭고 싫었다고 한다.
이젠 내가 성인이 된 지 십수 년도 지났다. 엄마도 이제 내 걱정이 덜 되나 보다. 전보다 더 편하게 대해주고, 나를 더 좋아한다.
늦게 딸 하나를 낳았더니 전화도 해 주고 스마트폰이랑 카톡도 알려주는 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다. 내 얼굴을 보고 싶어서 그런지 이메일 쓰기도 못 배웠으면서 페이스톡 걸기는 기어코 배우고 말았다. 자꾸 페이스톡을 건다.
나도 엄마가 좋지만 엄마는 나를 훨씬 더, 너무 많이 좋아한다. 나는 약간 부끄럽고 어색하다. 이런 일방적이고 불균형한 관계라니. 내가 그렇게 훌륭한 사람도 딸도 아닌데. 민망하달까 열없달까.
게다가 엄마가 나를 너무 좋아하니까 나 보고도 자식을 하나 낳아서 자기처럼 좋아하라잖나. 난 누구를 엄마가 날 좋아하는 만큼 좋아하기는 힘이 들어서 못 견딜 것 같다. 어려운 거 시키지 마요..
혹은 받은 만큼 나도 주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섭리인가. 내가 도둑놈 심보인지?
엄마가 나에게 주는 건 내가 싫어한다 해도 대체로 사랑에 의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세상엔 엄마만 있는 게 아니잖아. 엄마는 한 명이고 나머지는 나를 약간 좋아하거나 약간~많이 싫어하거나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이지. 내가 받는 모든 부정적 감정보다 엄마의 사랑이 더 클까. 그럴 수도 있다 싶다 놀랍게도.
하지만 엄마가 나를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울 수 있을지 걱정했듯이 아이에게 얼마나 사랑을 줄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은 일이지.
엄마랑 통화할 때마다 많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