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장애 치료기 230324

by 서한겸

식욕이 줄어든 듯하면서도 먹으면 또 먹는 대로 들어갔다.

약효가 있나 없나 잘 모르겠다. 큰 차이를 못 느낀다. 의사한테 이야기해야지.

아. 졸린 느낌이 있다. 온몸이 나른하고. 특히 낮~오후에 심하다.


10년 전에는 웰부트린을 먹었었는데 손이 떨리는 부작용은 있었지만 대체로 괜찮은 기억이었어서 웰부트린을 먹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사: 왜요? 그동안 좋은 약이 얼마나 많이 나왔는데요

나: 음 웰부트린이 그 정도면 부작용도 적었던 것 같아서

의사: 그래요? 그때 의사 선생님이 이 약 저 약 시도해 보다가 웰부트린이 맞다고 찾은 걸 수도 있겠네요.

나: 음 아뇨 제 기억엔 그냥 처음부터 웰부트린이었던 것 같아요. 그냥 선생님 판단대로 해 주세요.

의사: 그래요?

나: 근데 제가 당뇨 전단계라서 살이 찌면 안 되거든요.

의사: 네 고려할게요.


하여튼 살은 안 쪘으면 좋겠고 지금 160센티에 57킬로인데 53 정도로 빼고 싶다.

일단 오늘 세끼 먹고 세 번 이 닦았고 아침저녁 우울증 약 먹었다. 불안장애 약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엄마가 왔다.

내가 물구나무서기 잘 된다고 보여주니 '몸이 둔해져서 못할 줄 알았는데 잘하네.' 이럼. 기분 나빴다.

물구나무서려고 하고 있는데 '똑바로 못 서는데?' 이럼. 좀 이따 똑바로 서려고 하고 있는 과정 중이었다. 물구나무 선 채로 '하고 있잖아!' 하고 소리 지름. 다시 내려와서 '꼭 그런 말을 해야 돼?'라고 하니 '아니 이왕 설 거면 똑바로 서야지.' '그냥 잘한다고 하면 안 돼?' '남이면 그러겠지만 딸이니까 잘하길 바라니까 그러지' '제발 남처럼 대해줘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서 안 할 말은 좀 하지 말라고! 제발 남처럼 대해 딸처럼 대하지 말고 제발 남처럼 대해줘!'


기분이 상해서 조금 이따 설거지하다가 나도 모르게 또 어린 시절에 대한 불만을 술술 흘리고 말았다. 요즘 무척 피로한데 빈혈 때문일 수도 있고, 어릴 때부터 내내 빈혈이었던 걸 엄마도 알았으면서 철분제도 안 사줬냐고. 엄마는 몰랐다고 했다. 엄마랑 내가 같이 의사에게 '빈혈이다'라는 진단을 들은 기억이 있는데. 정신이 없어서 몰랐고 철분제를 사줄 돈도 없었단다. 참 내가 불쌍하다 꼭 엄마를 탓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어린 내가 너무 안 됐다. 조금만 더 정상적이고 안정적인 상황에서 자랐다면 지금보다는 잘 살 텐데. 너무 아깝다. 운운. 이런 말을 해버렸다. 한심하고 부끄럽지만 솔직히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건 병의 일부로 봐도 되나? (성격이나 사고방식도 병의 일환인가? 부정적인 사고도 고칠 수 있나? 아님 그냥 못남인가...)

엄마는 본인의 신세 한탄도 조금 했다. 어릴 때부터 기가 죽어 살아서 그렇다고. 너는 나보다 잘 사니까 다행이라고. 엄마랑 나는 시대가 40년 정도 다르다. 한국에서 40년이면 어마어마하지. 시대고 뭐고 떠나서 나는 잘 산다고 생각이 안 든다. 근데 이런 우울을 계속 갖고 있으면 나도 엄마 같은 어른이 되는 거 아닌가? 이미 된 건가? 벗어나고 싶다. 약 외에도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생각했다.


하여튼 나도 신세 한탄으로 대답하니 엄마는 울었다. 나만 생각하면 미안하고 눈물이 나온다고. 나는 미안해하고 울지 말고 그냥 좋은 말을 해달라고 했다. 엄마는 무슨 좋은 말을 하냐고 했다. 나는 아까 물구나무를 서면 그냥 잘한다고 하라고 대답했다.

엄마: 잘해야 잘한다고 하는 거지.

나: 그냥 집에 가...


엄마도 어떤 생각이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한테 더 좋은 말을? 해줄 수도 없다. 포기하자.

나를 생각하고 걱정하고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절대 내가 말하는 대로 해줄 마음도 생각을 고칠 생각도 없어 보인다. 날 생각하며 미안해하고 우는 건 엄마 자신의 감상이고 자기만족인 것 같다.


예전 같으면 '이게 엄마와의 마지막 대화면 어떡하지? (엄마가 귀가 길에 사고로 사망 등등) 나는 후회하게 될 거야!' 하며 울컥해서 미안하다고 둘이 울고불고했을 거다. 실제로 여러 번 그랬다. 답도 없고 의미도 없는 눈물바다. 나아지는 것도 없고.


엄마에 대해 냉정해지는 건 약효는 아닌 것 같다. 인지적인 과정.


약을 먹고는 있는데 효과가 있는지 잘 모르겠네. 막 우울해지거나 습관적인 안 좋은 생각을 하는 건 줄어든 것 같은데 그건 오늘 너무 바빠서였던 것 같기도 하고.


미술 평론 1~2개랑 <빨간 머리 앤> 챕터 2 읽고 자야지. 물구나무도 할 수 있으면 좀 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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