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28
하루 종일 몸에 힘이 없고 나른한 듯 졸려 힘들었다. 아예 모든 일을 포기하고 누워 쉬려 했으나 누워 있으면 또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며 가슴이 두근거려 잘 쉬어지지도 않았다. 괴롭게 하루를 보냈다. 저녁에 요가도 못 가고 9시쯤 일찍 잤다.
230329
병원까지 1시간 걸어갔다. 가는 길에 정남향 아파트 단지들이 모여있는 동네 뒷길을 걷는데 인도 한가운데 심긴 벚나무 30여 그루가(돌아오는 길에 보니 100그루도 넘어 보였다. 그 길 전체가 그랬다.) 햇빛 쪽으로 기울어 서 있었다. 아파트들 때문에 햇빛이 모자란 모양이었다. 나무들이 기운 쪽도 어두워 보였지만 조금이라도 볕이 더 드니 너희들이 그리 향했겠지. 잘했어!
참으로 나는 모든 사물과 모든 사람들이 최선의 상태라고 생각한다. 최악이어도 아마 최선이었을 걸. 온갖 끔찍한 일들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의사가 일주일 간 어땠냐고 물어 약을 잘 먹었고 졸림, 나른함, 식욕 저하, 부정적 사고 줄어듦 등의 증상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의사는 졸린 게 약 때문이라며 바꿔야 한다고 했다.
나: 식욕 저하는 좋은데요.
의사: 아니에요 바꿔야 돼요.
나: 평생 과식해 왔는데...
의사: 지금보다 덜 먹으면 안 돼요.
나: 에..........
그리고 일주일 전 초진 때 한 지필 체크 검사랑 자율신경계 검사 결과를 같이 보면서 설명을 들었다. 의사 선생님의 책상 앞에 있는 소파에 앉아 있다가 선생님이 스툴을 좀 갖고 와서 가까이 앉으라 해서 스툴을 가져와서 가까이 앉아 설명을 들었다. 교감신경은 막대그래프가 정상치보다 낮아져 있었고 부교감신경은 높아 있었다. 반복적 생각? 회고? 가 아주 많은 상태였다. 부정적 사고는 크게 세 가지로 나 자신, 미래, 환경에 대한 것인데 부정적 사고도 강화된 상태라고.
나:근데 진짜 요즘 인생 망했다는 생각 자주 드는데요. 이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누가 봐도 망한 게 맞으면 어떡해요 그럴 수도 있잖아요. 그런 것 같은데.
의사: 네 어떤 일이 잘 안 돼서 망했다고 생각할 수 있죠. 잘 안될 수 있고 망할 수 있죠.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랬을지 몰라도 미래까지 망한 건 아니죠.
나: 음..................................
(중략)
나: 그리고 전부터 ADHD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요.
의사: 그건 우울이나 불안이 일단 없을 때 진단이 가능해요. 지금은 우울 불안이 너무 커요.
나: 빨리 지금 쓰고 싶은 글이 있는데 잘 집중이 안 돼서 너무 괴롭고 초조한데요.
의사: 지금은 아직. 조금 이따 쓰세요. 체력 기르고 좀 우울 불안을 다스린 뒤에 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나: 그럼 어떻게 지내야 좋을까요?
의사: 친구도 만나고...
나: 산책도 하고 자전거도 탔어요.
의사: 오 산책 일부러? 일부러 산책했어요?
나: 네 산책하고 자전거 타고 요가도 하고 밥도 세끼 챙겨 먹고 이도 바로 닦았어요.
의사: (박수를 치며) 잘했어요! 잘하고 계시네요.
자존심이 약간 상했다. 어린애 칭찬받는 느낌. 그러나 밥 세끼 챙겨 먹는 것도 제대로 안 될 때가 많긴 하니까. 그리고 식사는 중요하지. 10년 전 웰부트린 처방받아 먹던 시절에는 하루 종일 망고주스 한 병만 먹고 그런 적도 있다. 햇반 한 개만 먹는 날도...
대뇌와 간뇌 사이의 신경전달(물질?)에 대해서도 설명을 듣고 약이 계단식으로 효과가 쌓이다가 5일 정도는 먹어야 완전히 효과가 나고, 4~6주인가 4~6개월인가는 먹어야 한다는 설명도 들었다.
바뀐 약은 이렇다:
인데놀정 10mg
자나팜정 0.125mg
트라린정 50mg
저번주랑 위의 두 약은 같고 푸록틴갑셀 10mg이 트라린정 50mg으로 바뀌었다.
병원 다녀와서 도서관에서 엄마가 쓴 자서전 글감을 읽었다. 노트 1권 반 분량. 조금 울었다. 엄마도 엄마지... 아주 진솔해서 참신한 표현도 많이 있다. 엄마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고 조금 덜 미워하게 되는 것 같았다.
외할머니와 엄마와 나의 이야기를 써내고 싶다. 하지만 정서적으로 많이 어려운 도전이다.
그 후엔 천변을 걸었고 벚꽃이 많이 펴 걱정했다. 걱정이다. 3월인데... 대 재앙 직전의 꽃잔치는 아닐지. 너무 빨리 피잖아. 무서워. 매드맥스로 가는 건가. 날도 가물고. 무섭다. 에어컨 없이 못 사는 세상이 이미 되었고.
그러면서도 또 금세 있고 백화점 지하 푸드코트에서 게살감태롤과 텐동 우동 세트를 사 먹고 귀가했다. 사치스러운 저녁식사였고 감태가 무척 맛이 풍부하고 짠 듯하면서도 감미로워 마음에 들었다.
오늘 2시간 정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