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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한겸 Apr 18. 2023

불안장애 치료기 230418

어젯밤에 남편이랑 웃긴 썰 이야기를 하면서 둘이 소리 질러가며 성대모사까지 하면서 낄낄낄 웃었다. 너무 웃기고 재밌는 순간이었고 행복했다. 

그런데 늘 나는 이런 순간에 이런 불안감이 든다. '나중에 만약에 무슨 사고로 남편이 죽으면 지금 순간이 생각나면서 너무 슬플 것 같아.' 나는 아주 재밌고 행복할 때 '미쳤냐? 정신 차려? 나중에 어쩌려고 그래?'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늘 그렇다. 10살이 되기 이전부터도 그랬고 분명히 기억이 난다. 너무 충격받은 어떤 일이 있은 후로 '그때 왜 그렇게 좋아했지?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그때 덜 좋아했었으면 차라리 지금 덜 힘들 것 같아'라고 분명히 생각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 순간이.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아예 기분이 좋거나 하면 '나중에 이 순간을 떠올리며 돌아오고 싶어 할 것 같아. 그럴 것 같아. 그러면 어떡하지' '아 좋아하지 말자 큰일나' 이렇게... 늘.


막상 진짜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걸 소화하고 대처하고 넘기느라 그 이전 어느 순간이 생각나지도 않는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운명적일 정도로 큰 불행이 생기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쓸데없는 불안인데.


어제도 갑자기 저런 생각이 들어 웃다가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수치심이 들었다. '웃어? 미쳤냐?' 나는 이런 말을 스스로 계속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가장 행복할 때마다. 나는 행복이 너무 두렵다. 행복한 순간마다 피한다. 나중에 불행할 때 더 불행하게 느낄까 봐 겁나서.

오늘 상담하다가 생각났는데 내가 웃을 때 행복할 때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고 좋아할 때 갑자기 나를 공격한 것... 언니가 정말 많이 그랬다. 어렸을 때. 나는 뺨 맞은 것처럼 놀랐었고. 

그리고 그냥 평범한 어린아이처럼 무방비하게 있었는데 너무 심각한 갈등을 마주하거나 가혹한 반응을 당하거나 맞거나 혼나거나 무시당하는 경험이 정말 많았다. 집 안에서. 밖에서는 기억도 잘 안 나네. 기죽고 우울하고 옷차림도 신경쓰지 못하는 아이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물론 표적이 되며 (초등학교 내내 왕따였다. 공부를 잘해서 더 심하게 따돌림당했다.) 선생들조차 싫어한다. 너무 심하게 어둡고 신경질적이니까 애가... 


오늘은 상담 첫날이었다. 위의 얘기를 했다.

그리고... 누가 '법의 공정성과 인간에 대한 믿음'같은 것이 있다고 해서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또 내가 살아온 이야기, 내가 불안하다, 이러이러한 이유인 것 같다, 내가 재혼 가정에서 연상의 이복형제가 있는 상태에서 새로 태어난 아이다, 어릴 때 아빠는 무관심했고 엄마는 나에게 신세한탄을 많이 했고 부정적이었으며 오빠는 나를 많이 때렸고 언니는 나를 싫어했다, 친구도 없었고 7살 때부터 자주 울며 기도했고 기도가 안 들은 뒤로는 그냥 많이 울었고 7살 때부터도 이미 죽고 싶었고 10살 때 자살하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26살이 되어서야 진심으로 자살은 단념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자살 생각은 매일 3~30번 정도는 한다, 직업도 제대로 못 고르고 작가로서도 실패 중이다, 약도 먹고 있다, 나아지고 싶다 등등 이야기를 했다. 

가족사를 18살 때 알았는데 일단 고3이었고 집안이 경제적으로 망한 때라서 일단 별 수 없는 것 같아 공부를 열심히 했고 대학도 잘 갔다, 대학 1학년 때부터 본격 우울 폭발했다고 했더니 공부는 어떻게 열심히 했냐고 물었다. 공부는... 공부는 그나마 편안했다. 답도 있고, 틀린 다음에 고쳐서 더 잘할 수도 있다. 감정도 안 쓰이고. 상담사는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지 다음에 더 이야기해 보려는 듯이 보였다.

욕을 진짜 많이 했다. 

존나 

씨발 진짜

다 죽여버리고 싶어요

다 죽었으면 좋겠고

아 씨발 썅년이

욕해서 죄송해요

나는 많이 억눌려 있고... 상담 가기 전에 누구를 오랜만에 만나서 떡볶이 튀김 순대 오뎅 쿨피스를 먹었다. 요즘 정신과 약 먹고 있고 오늘 상담 첫날이라고 하니 '진짜 우울한지 전혀 모르겠는데'라고 했다. 난 오래돼서 티는 별로 안 난다고 말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이 처음으로 나에게 사랑한다고 했을 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데요?'라고 따졌던 얘기를 했다. 나도 참 나다....... 그랬더니 남편은 '다시 생각해 볼게요'라고 했다. 이런 면이 얼추 맞아 결혼까지 했겠지. 서로는 잘 맞는 것 같아 다행이다 이런 얘기도 했다. 

나: 사랑은... 내가 좋아서 막 잘해주는 건 사랑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건 자기만족이잖아요. 엄청 좋아해서 잘해주고 귀여워서 잘해주고 보고싶어서 만나고.

상담사: 그럼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랑은 노력... 안 그러고 싶을 때도 잘해주는 거? 저한테는 실천? 노동에 가까운 것 같아요. 물론 막 좋을 때도 있지만 그건 좀 그냥 자기 좋자고 하는 것 같고... 안 좋을 때도 잘해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건 결심도 필요하고 참을성도 필요하잖아요.

상담사는 내가 사랑을 편안하게 못 느껴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네... 그건 물론입니다.


하여튼 상담에서 엄청 말하고 역시 상담은 좋다고 생각했다.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지원해주지 않으면 하지 못할 금액이야. 1년에 12회기는 적긴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정말 정말 너무 좋지. 오늘 벌써 1회기를 하고 11회기만 남다니! 이야기 많이 하고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싶다.

풀배터리 검사도 받기로 했다. 시간 오래 걸리고 문제도 어렵고 힘들어서 싫은데... 하는 편이 내 상태를 더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약은 영 안 맞는 듯하다. 식생활과 모든 생활습관이 완전히 무너져서 오늘은 점심만 분식으로 거하게 먹고 아침저녁은 말도 안 되는 사탕 쿠키 같은 군것질만 했다. 배가 고픈 느낌은 거의 없으면서 단 것만 많이 먹는다. 안 좋다.


오늘은 밤샐 것 같은데... 약효에 대해서 의사한테 잘 말해봐야지. 아무리 그래도 너무 효과를 못 느끼면 병원을 바꿔야 할까? 내일 5번째로 병원 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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