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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한겸 Apr 19. 2023

불안장애 치료기 230419

어제 원고 최종교를 전달받고 오늘 아침까지 보내야 했다. 극도로 스트레스받으며 원고 전체를 살피면서 죽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확 안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수요일마다 병원에 가는데 화요일 밤에 꼭 안 좋아지는 느낌도 있다. 

예전에는 그냥 자살, '죽을까?' 생각이 들었다면 요즘에는 좀 더 뭔가 구체적이랄까 실제로 무슨 짓을 벌일 것 같은 두려움이 든다. 신체적 충동이랄까. 자해는 아니고 자꾸 창문 쪽이 신경 쓰이면서... 119를 부를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고 혼자 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무슨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도 혼자 있는 것보다는 무슨 짓을 저지르기를 참게 된달까. 혼자였다면 더 충동적이었을 것 같다. 워낙에 두려움이 많은 편이라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직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혼자 사는 건 보안상 두렵게 느껴져서...


의사를 만나서 하고 싶은 말 물어보고 싶은 말을 다이어리에 대강 적어서 갔다. 오늘도 환자가 많아서 30분 가까이 기다렸다. 

의사: 어떻게 지냈냐

나: 안 좋았다. 약효도 못 느끼고 어제 글 최종 마감이었어서 그랬는지 죽고 싶고 극도로 안 좋고 가슴을 차가운 송곳으로 찌르듯 통증이 있었다. 밥도 잘 안 먹었고 약은 다 먹긴 했는데 아침저녁 정해진 시간에 못 먹었다 밥을 잘 안 먹고 간식만 먹으니까. 

의사: 스트레스를 받으면 잘 풀지 못하고 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남들보다 섬세해서 많이 받기도 하는데, 잘 풀지도 못하는 것 같다. 이제 책이 끝났으면 약을 더 늘리자. 그동안 집중하는 작업을 해야 해서 약을 세게 못 썼다.

나: 엥 지금까지는 책을 다듬는 과정이었어서 덜 힘들고 이제 본격적으로 다른 글 쓰고 싶은데

의사: 체력 좀 늘리고 나서요.

나: 글 안 쓰면 더 우울한데

의사: 체력과 마음 회복이 더 급하다. 일도 돈벌이 걱정도 다 미뤄 두라.

나: 밥 챙겨 먹는 게 너무 힘들고 먹기도 싫다. 몸에 안 좋은 거 라면 같은 것만 먹고 싶다.

의사: 라면이라도 먹는 게 안 먹는 것보단 낫다.

나: 요가도 잘 안 되는 느낌인데 약과 상관이 있을까. 다이빙 자격증을 따고 싶은데 괜찮을까.

의사: 몸을 움직이는 데에는 상관없다. 요가는 해라. 다이빙은 힘들 것 같은데 좀 더 체력을 키우고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이 상태에서 몸도 많이 힘들게 되면 안 좋다. 밥부터 챙겨 먹고 생각해 보자.

나: 며칠 전 아주 행복하게 웃다가 갑자기 나중에 무슨 사고가 생겨서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더 고통스러워할 것 같아서 울었다. 행복한 일과 나쁜 일이 합쳐져서, 행복한 일이 행복의 평균을 올려준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행복한 일이 나쁜 일을 더 고통스럽게 느끼게 하는 것처럼 자꾸 생각하게 되고 무방비로 행복한 순간이 너무 두렵고 무방비하게 즐거워하는 게 수치스러운 일처럼까지 느껴진다. 어릴 때 언니가 내 감정을 많이 무시하고 시비를 걸었던 경험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약을 먹으면 이런 것도 나아질 수 있나.

의사: 지금 무척 힘든 상태라서 더 그럴 수가 있다. 전반적인 상태를 끌어올려야 한다. 일단 세끼를 반드시 챙겨 먹는 걸 목표로 하자. 

나: 열심히 잘 살고 돈도 잘 버는 사람들에 비하면 유용성 면에서 나는 쓰레기통 속의 쓰레기에 가까운 것 같다. 내가 글 쓰고 그림 그릴 때 엄청 기쁘고 유능감도 느끼는데 그 일들이 인정도 못 받고 돈도 안 되니까 내가 가장 기쁠 때에도 자괴감이 들고 쓸모없는 쓰레기라는 생각이 든다. 

의사: 창조적인 일인데 남들과 비교하지 마라

나: 비교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 예술가들도 다른 돈벌이를 한다. 나는 그런 일도 대체로 잘 못했다.

의사: 건강해야 뭘 하든 할 수 있다. 일단 세끼를 잘 챙겨 먹어라. 

나: .................네.....


병원비 6천 얼마.

약값 3,500원


인데놀정 10mg 1.5씩 하루 2회. (이전 주에는 1개씩 2회였다)

자나팜정 0.125mg 1.25씩 하루 2회 (이전 주에는 1개씩 2회였다)

스타브론 정 1씩 2회

명인페르페나진정 4mg  0.25씩 1회 


인데놀과 자나팜이 0.5씩 2회=>1개씩 2회=>1.5/1.25씩 2회로 증량

스타브론은 지난주에 증량한 그대로, 페르페나진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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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초밥 정식 9,900원. 


도서관에서 풀 배터리 검사의 사전 검사지와 상담 초기 질문지를 작성했다. 3시간이나 걸렸다. 객관식도 엄청 많고 주관식도 많고. 손이 아플 정도였다. 그리고 내가 상태가 안 좋은 건지 글씨 안 쓴지 오래돼서 그런지(키보드만 주로 쓰니까) 글씨가 옛날에 비해서 정말 엉망이 되었다. 손에 힘이 없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림 안 그린지도 오래 되긴 했고... 손이 이래서야 이거 뭐 그림 다시 그릴 수 있는 건가? 글씨 너무 심각하게 못 써서 놀라고 부끄러웠다. 

검사지 작성하는 동안 물 1리터 마심. 


저녁을 닭고기 조금을 먹었다. 그리고 저녁 약을 먹었다. 그리고 마카롱 2개 먹고 불닭볶음면 먹고. 


여전히 그냥 처음 먹었던 푸록틴캡슐이 좋게 느껴진다 좀 졸리고 무력해지더라도. 근데 의사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 모양이다. 병원에 다니는 이상 의사의 말을 잘 들을 생각이나 너무 안 맞다 싶고 말해봐도 안 되면 병원을 옮겨야겠지. 정신건강의학과 예약이 쉽지 않지만. 요즘에는 정신건강의학과 문턱이 낮아진 것 같다. 다행이다. 

하여튼 이 약은 효과를 잘 못 느끼겠는데 너무 약한 약이라서 그런가? 그래서 인데놀과 자나팜 먹은지 이제 1달이 넘었는데... 좀 누적되어야 약효가 제대로 난다고 하긴 했는데 얼마나 먹어야 약효가 나는 건가. 


일단 저녁 약 먹었는데 어떨까. 내일 아침약을 먹어 봐야 잘 알 것 같다. 부작용 심하지 않길. 효과가 있을까? 떨리고 기대된다. 일단은 혹시 몰라서 내일은 아무 일정을 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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