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체로 존재하고 존중받을 때, 타인은 축복이 된다
몇 해 전 여름이었다. 몇십 년 만에 오는 혹독한 더위의 여름이었다.
엄청난 더위의 와중에 갑자기 약국의 에어컨이 가동을 멈추었다. 한여름이라 수리기사를 불러 예약하고 고치는 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하여 한 걱정했는데, 다행히 수리기사가 있었다. 가스를 충전하면 된다고 해서 충전했는데, 하루 만에 다시 가동이 정지되었고, 비싼 비용을 들여 부품을 교체했지만 허사였다. 비용만 날렸다. 타인이 지옥이 되는 순간이었다. 결국은 다시 에어컨을 사야 했고, 이 또한 설치하느라 며칠이 소요되었다. 이렇게 저렇게 소요된 며칠 동안 타는 듯한 더위에 에어컨 없이 일하게 되었다. 엄청난 더위 속에서 일하는 것은 거의 절망에 가까웠다. 실내의 더운 열기만 내뿜는 선풍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일하는 약국은 실외와 연결된 창문이 없다. 약국이 실내 내부에 들어와 있고 복도에 작은 창문만이 있을 뿐이다. 그 좁다란 창문을 통해서 밖의 풍경이 살짝 보인다. 외부와 환기가 안 되는 상태에서 일하는 동안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찜통 같은 더위 속에서 우연히 김용키 작가의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심리 스릴러 웹툰을 보게 되었다.
웹툰 내용은 한 청년이 서울에 취직하면서 가격이 저렴한 고시원을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고시원 안에서의 공동생활에서 여러 괴팍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여러 사건이 벌어진다. 사회초년생으로서 회사생활의 어려움, 고시원의 기괴하고 악의에 찬 사람들, 돈을 보태야 하는 집안의 어려움 등이 겹치면서 선량하고 평범한 청년이었던 그는 서서히 변해간다. 숨겨져 있던 자신 안의 분노가 서서히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살인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그 자신도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살인하는 장면이나 내용이 너무 잔인하고 충격적이어서 나도 거의 그 공포 속에 매몰되어 갔다.
청년이 무섭게 변해갈 때 일단은 그곳을 뛰쳐나오길 간절히 바라며 봤던 기억이 있다. 극악의 상황일 때는 일단 그곳을 벗어나,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 채 몰입하게 되면, 늪에 빠지듯 서서히 그 상황에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미칠 듯한 더위 속에서, 미쳐가는 청년을 보며, 온몸이 땀으로 젖으며, 에어컨 없는 며칠을 웹툰을 몰아보기 하며 그렇게 보냈다. 그래서인지 그 광기 어린 내용과 살인적인 더위가 결합되어 나에게 그 웹툰은 오랜 악몽처럼 남아있다.
그 웹툰이 드라마로 나왔다. 아들이 어느 날 저녁, 식사하면서 같이 보자고 했을 때 나는 치를 떨며 도리질을 했었다. 그때의 극도의 긴장감과 공포스러움이 밀려들었던 것이다.
니체의 <선악의 저편>에서 나오는 구절.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네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볼 것이다.’
웹툰에서 선량하고 평범한 한 청년이 도덕적 악이나 근본적인 혼돈을 지켜보면서 그 악의 본질에 동화되어 결국 자신 또한 그 영향을 받고 변해가는 과정이 이 구절과 너무나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우리 또한 상대가 악의에 찬 행동을 했을 때, 그것에 맞대응하여 분노와 악의로서 같이 파멸의 길을 걸어가지 않았던가.
웹툰의 제목 ‘타인은 지옥이다’는 사실 사르트르의 유명한 명언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타인의 잣대나 시선에 의해 자신의 주관을 잃어버릴 때, 그 타인이 지옥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그들의 판단과 기대에 얽매어 스스로 존재 방식을 결정하지 못하고 자유를 상실하는 상태를 지옥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대인관계를 회피하라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의해 개인의 주관성이 훼손될 때 지옥이 된다는 의미이다.
지옥이 될 수도 있는 타인에 대해 사르트르의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
나를 제외한 모두는 타인이다. 가족, 친구, 회사동료, 지인 등. 요즘은 SNS 팔로워나 이웃 블로그 등의 등장으로 내가 접할 수 있는 타인이 무한대로 증식되었다. 타인과 접속하다 보면 자연히 자신과 비교하게 되고, 한탄하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영향을 받게 되고 차츰 자신은 위축되어 간다.
남의 시선이나 판단에 너무 의지하게 되면, 타인의 말 한마디나 행동에 자신이 좌지우지하게 되면, 타인이 중심이 되기에 자신의 주관은 소멸된다. 자기 소외에 빠지게 되어, 극도의 무기력과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이때 타인은 지옥이 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다. 비록 그 사람의 살아가는 방식이 뭔가 부족해 보이고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그냥 봐줘야 한다. 사람은 자기의 생각대로 살아갈 때 가장 자기답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자유의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타인은 그 완벽하지 않은 사람을 더 잘 볼 수 있다. 그래서 가깝다는 이유로, 또는 다 너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자꾸 간섭하고 충고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도 타인은 나에게 지옥이 된다.
살다 보면 전혀 모르는 제삼자가 지옥이 되는 경우도 있다. 빽빽한 지하철 안에서의 불쾌함, 식당 옆자리에서의 고성, 번잡한 길에서의 사과 없는 부딪힘, 도서관 안에서의 배려 없는 소음과 행동, 그리고 그 악명높은 층간소음까지…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기에 더불어 살아간다. 인간관계는 선택이 아니라 세상사에서 꼭 필요한 것이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우리는 서로 얽혀 살아가고 있기에.
보다 바람직한 관계를 맺기 위해 우리는 어떠해야 할까?
일단은 무엇보다 자신의 가치관과 주관을 갖고 올곧게 서서 타인의 시선이나 판단에서 자유롭게 설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서로가 서로를 그 사람 자체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나도 타인의 타인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하면서 배려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때 비로소 타인은 지옥이 아니라 서로를 위한 관계가 되리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