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周易), 왕들의 학문

동양사상의 뿌리를 엿보다

by 현주 약안먹는약사

15년 정도 살았던 동네를 떠나자니 고향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전에 살던 곳은 주변에 공원과 도서관, 체육센터 등 모든 것이 잘 되어있던 지역이었다. 산도 가까이 있어서 주말이면 등산을 가곤 했었다.

반면에 새로 이사 온 동네는 시내 쪽이라 뭔가 낯설고 막막했다. 동네도 알아볼 겸 이사 온 동네의 도서관이나 시설들을 검색하면서 지역 강의 프로그램을 찾아보다가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목요일 4시 반에서 6시까지 하는 주역 수업이었다. 딱 나를 위한 프로그램 같았다. 원래 나는 평일은 6시까지 근무했는데, 평일 중 목요일만 1시까지 근무하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강의 장소는 걸어서 20-30분 거리에 있기에 걷기에도 좋았다.


고미숙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라는 책을 독서모임에서 한 적이 있다. 그 책은 사주명리에 대한 간단한 입문서 같은 책이었다. 그 책을 통해 사주명리의 기본이라도 알다 보니 주역에도 관심이 생겼다. 주역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찾아서 읽었는데 잘 모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주역 수업을 접하게 된 것이다. 그토록 찾던 주역에 대한 공부를 운명처럼 만나게 되었다.

더구나 주역 선생님은 친구가 배우고 있는 선생님이라 믿고 배울 수 있었다. 이미 친구는 사주명리와 주역을 오랫동안 공부해 왔고, 나는 그 친구와 함께 주역을 배우기 시작했다. 친구와 함께 하니 더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었다. 주역에 있는 64괘를 한 번씩이라도 배우는데 3년이 걸렸다.


주역은 주나라의 역경으로 유교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이다. 역은 변화를 뜻한다. 따라서 주역은 우주만물의 끊임없는 변화 원리를 설명하고, 그 변화 속에서 인간이 길흉을 판단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주역의 접근방법

주역을 접근할 때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상수역적 접근과 의리역적 접근.

상수역적 접근은 점서로서의 주역으로 미래의 길흉을 판단한다. 여러 대, 소사가 생겼을 때 점을 치는 것이다. 의리역적 접근은 철학서로서의 주역으로 우주만물의 이치와 인간이 따라야 할 도리를 담은 철학경전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주역을 배우게 되면 자신이 주역을 어떻게 접근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 나는 의리역으로 접근했다. 주역을 점서로 접근하다 보면 자꾸 점에 의지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는 것 같다.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이 나름 있는데 점서에서 다르게 나오면 점을 따라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자꾸 점에 끄달리는 것이 싫었고, 나쁜 점이 나올까 봐도 두려웠다. 여러모로 나는 의리역으로 접근하는 것이 편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게 자유도 버거울 수 있다. 그래도 인간의 영역에서 자유를 빼면 뭔가 초라해질 것 같다. 완벽하지 않아서 여기저기 부딪히며 깨지며 걸어 나가도 자유라는 것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예수도 유다의 배반을 몰랐을까, 알고 있었더라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였던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사주명리든, 주역이든 나는 점서로서가 아니라 철학으로서 그리고 동양사상으로서 접근했다.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면 음양오행설은 한의학, 풍수지리, 성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며 생활 깊숙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기에, 그 사상을 알아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주역은 변화의 학문이다

주역을 배우면서 우주의 변화가 어떻게 인간에게 적용되는지 안다는 것이 신기했다. 주역은 변화의 학문이다. 모든 것은 변화하는 것이다. 인간은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며 변화한다. 육체적으로도 사람의 몸은 매일 세포를 교체하고 있고, 많은 세포가 1년 정도 되면 새것으로 바뀐다.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나 지구도 우주적 순환을 하고 있다. 먼지에서 태어나 다시 먼지로 돌아가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과학기술도 경제도 빠르게 변화한다. 우리는 변화의 와중에 있는 것이다.


오래된 철학의 문제, 진리는 변하는가?

전통적인 철학이나 종교에서는 절대적 진리를 강조한다. 현대 철학이나 과학에서는 시대에 따른 상대적 진리를 강조한다. 젊은 시절의 나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니, 변하지 않기에 진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나의 종교나 가치관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절대적인 진리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주역을 접하게 되었고, 진리는 상대적이며 변한다는 것에 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주역은 고정된 답이 없다

주역은 동아시아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 중 하나라, 시대와 지역마다 수많은 해석 학자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주역 해석 학자에는 공자, 왕필, 주자, 소동파, 정약용, 김용옥, 대산선생 등이 있다. 학자들에 따라 같은 괘라도 해석이 각자 다를 수 있다. 주역은 동일한 해석이 아닌 무수한 다른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주역은 고정된 답이 없는 책이기에, 어찌 보면 신빙성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주역을 배우면서 가장 혼란스러운 부분이기도 했는데, 이는 주역 자체가 점서(占書)이자 동시에 철학서이기 때문이다.

주역은 시대, 사상, 해석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에, 주역을 읽는다는 건 곧 자기 시대의 우주관을 읽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역을 배우다 보면 상황에 따라 달리하는 이어령비어령 식의 해석이 많다. 그런 부분이 어렵기도 하면서 나름 자유의 여지를 주기에 좋아 보이기도 했다. 나의 해석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또한 좋은 괘가 나오더라도 그것에는 반전이 있어서 마냥 좋지만은 않을 수도 있고, 높은 지위에 있더라도 오히려 그 지위 때문에 불안해질 수도 있다. 주역에서는 무수한 반전이 일어나고, 그것이 우리의 사고를 뒤집어 놓는 경우도 많다. 정답이 없기에 여러 변주가 일어날 수 있음이 주역의 매력일 수도 있겠다.

동양사상의 뿌리인 주역을 깊이 있게 공부는 못했지만, 간단하게나마 그 사상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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