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밤의 고통, 불면증

불면의 늪에서 벗어나기

by 현주 약안먹는약사

한 환자가 처방전을 내밀며 긴 한숨을 몰아쉰다.

요 며칠 동안 자신에게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자신이 한밤중에 일어나 주방바닥에 앉아 냉장고문을 열어둔 채 이것저것 꺼내먹고 있는 것을 손녀가 여러 차례 봤다는 것이다. 전혀 기억이 없기에 손녀의 말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는데 손녀가 찍은 동영상을 보고서야 믿게 되었다고 한다. 환자가 내민 것은 졸피뎀 처방전이었다.


졸피뎀(Zolpidem) 은 흔히 ‘스틸녹스’, ‘졸피드’’ 등의 이름으로 알려진 수면제인데, 일부 사람들에게서 몽유나 수면 중 행동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수면 중 섭식장애다. 이 환자의 경우, 약을 복용한 뒤 잠이 든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음식을 찾아 먹고, 다음 날 전혀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수면제를 오랜 세월 먹어오다가 수면 중 섭식장애를 겪은 것이었다. 수면제를 안 먹으면 도통 잠을 잘 수가 없고, 먹자니 자신의 행동이 무섭다고 했다.


수면제는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되는데, 습관성이 있다. 그래서 일단 먹기 시작하면 복용을 중단하기가 어려워지고 용량을 서서히 늘려가게 된다. 약에 차츰 중독되어 가는 것이다.

이 환자의 경우 부작용이 심했으므로, 일단은 의사와 상담하면서 용량을 서서히 줄이거나, 다른 약으로 바꿔보자고 했다.


하루에 찾아오는 환자 중 수면제 처방을 가져오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청년층, 중년층, 노년층이 많지만, 간혹 중고등 학생들도 끼어있다. 그나마 수면제를 먹고도 서방형 제제가 아닌 한 3-4시간 자게 되므로, 보통은 수면부족에 시달린다.

수면제 처방전을 들고 오는 환자들은 딱 보기에도 무척 피곤해 보이고 지쳐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피로감, 두통, 면역력저하, 우울감, 집중력 및 기억력저하를 보이며, 짜증과 분노 표출등 감정조절의 어려움도 겪는다. 또한 식욕 촉진 호르몬의 증가로 비만의 위험도 커진다.


수면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잠자는 동안에는 낮 동안 쌓인 신체적, 정신적 피로를 회복하고 에너지를 재충전하며,

깨어 있을 때 습득한 기억이나 학습 내용을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또한 뇌 속의 독소와 노폐물을 제거하는데, 알츠하이머 치매를 유발하는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도 이때 배출된다.

무엇보다 수면 중 분비되는 성장호르몬과 멜라토닌은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두 호르몬에 대해 알아보자.


성장호르몬(Growth Hormone, GH)은 뇌하수체 전엽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어린이 및 청소년의 성장기에는 신체의 발달과 성장을 직접적으로 촉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성장이 끝난 성인에게도 꾸준히 분비되어, 주로 신체 구성 유지와 노화 방지에 기여한다. 즉 성인의 근육량 유지와 체지방 분해, 콜라겐의 합성과 피부탄력 유지, 골밀도유지 등에 도움을 준다. 성장호르몬은 하루 종일분비되지만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의 깊은 수면 중에 최대로 분비되기에,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멜라토닌은 뇌의 송과선(Pineal gland)에서 분비되는 생체 호르몬으로, 흔히 '수면 호르몬'이라고 한다. 멜라토닌은 단순히 잠을 오게 하는 것을 넘어, 세포 재생 및 회복에도 관여한다. 멜라토닌 분비는 외부 환경, 특히 빛에 의해 강력하게 조절되는데, 빛이 줄어드는 저녁에 분비가 활성화되어 수면을 준비하도록 한다. 또한 노화의 주범인 활성산소를 중화하는 강력한 항산화 능력을 가진다. (비타민 C, E보다 강력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멜라토닌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세로토닌이 필요하다. 이제 세로토닌에 대해 알아볼 차례다.


멜라토닌의 전구물질이 세로토닌이다. 세로토닌은 낮에 햇볕을 받아야 분비가 활발해진다. (하루 15~30분 정도가 권장) 또한 걷기, 조깅등의 운동은 세로토닌의 분비를 늘린다. 세로토닌은 행복감과 활력을 주는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며, 기억력, 집중력, 수면 등 다양한 생리적 과정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결론적으로, 낮에 충분히 햇빛을 쬐고 활동하여 세로토닌 분비를 활성화하는 것이 밤에 숙면을 위한 멜라토닌 분비를 돕는 것이다. 그런데 세로토닌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트립토판이 필요하다. 트립토판은 무엇인가?


세로토닌의 핵심 원료는 트립토판인데, 트립토판은 체내에서 자체적으로 생성되지 않아 반드시 음식을 통해 섭취해야 하는 필수 아미노산이다. 트립토판은 주로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주로 육류, 어류, 콩류, 견과류, 바나나, 우유, 달걀 등에 들어 있다. 트립토판이 세로토닌으로 효율적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비타민 B6와 같은 조효소나 탄수화물 섭취가 도움이 될 수 있다. (탄수화물 섭취는 트립토판이 뇌로 들어가는 것을 돕는다.)


결국은 트립토판이 세로토닌이 되고, 세로토닌이 멜라토닌이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는 잠을 잘 잘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숙면을 위해서는 세로토닌의 원료인 트립토판 섭취와 함께, 햇볕 쬐기와 규칙적인 운동 등으로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는 생활 습관이 중요하다.

빛은 멜라토닌 분비를 방해하므로, 잠자리에 들 때는 최대한 어둡게 하고, 잠결에 깨더라도 밝은 조명을 켜지 않는 것이 좋다. 블루라이트는 멜라토닌 분비를 강력하게 억제하기에, 취침 1~2시간 전에는 스마트폰, TV, 태블릿 등의 전자기기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

이외에도 아침에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기, 침실온도는 약간 서늘하게 하기(18~22도), 자기 전 카페인 및 알코올 금지, 야식 피하기 등이 중요하다.


잠들기 전 따뜻한 우유에 바나나를 넣어 먹거나 함께 섭취하면 트립토판 섭취에 도움이 되어 숙면을 취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우유, 바나나에는 트립토판과 함께 세로토닌 합성을 돕는 비타민 B6도 포함되어 있다.

수면제를 이미 복용 중인 사람은 멜라토닌 복용에 대해 고려해 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멜라토닌은 의약품 또는 건강 보조제 형태로 나와있으니 선택해서 섭취하면서, 서서히 수면제를 줄여나가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나는 보통 6~8시간 정도는 중간에 깨지 않고 잘 자는 편이다. 어쩌다 깨더라도 다시 잘 잔다. 일주일에 3~4번 정도의 운동과 단백질 챙겨 먹기를 신경 쓰고 있다. 커피는 카페인에 예민하므로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만 디카페인 커피로 마신다. 야간뇨를 방지하기 위해 잠자기 2시간 전까지만 물을 마신다. 잘 때는 반드시 암막커튼을 쳐서 완전히 어둡게 하고 잔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거의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으로 불면증에 걸리지 않고 나름 숙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내가 실천하는 팁을 알려주겠다. 사람의 수면주기는 렘주기와 논렘주기를 반복하며 2시간 정도의 주기를 갖는다. 그래서 이 주기에 맞춰 각성단계가 올 수 있다. 그리고 새벽 3시~5시 사이는 깊은 수면 상태이지만, 동시에 곧 다가올 아침의 활동을 위해 호르몬 분비가 전환되기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시간대에도 각성상태가 올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면주기나 시간대에 의해 각성상태가 올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때쯤이면 자다가 갑자기 각성되면서 정신이 또렷해짐을 느낄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 잠자는 도중의 각성상태가 자연스러운 상태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을 켜거나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지 말고, 반드시 어둠을 유지하면서 그대로 누워있으면 다시 잠에 빠져들게 되고, 이후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면 된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각자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어 그 원인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면 불면의 밤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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