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에서 나를 치유하다

원주살이 <1>

by 현주

남편이 원주로 발령받았다.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자란 나는 처음으로 지방도시에서 살게 되었다.

결혼 3년 정도 된 시기였다.

결혼 전에는 요리나 집안일을 한 적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결혼생활 자체가 도전이었다. 학창 시절을 거쳐 사회생활을 하기까지 모든 잣대는 공부에 집중되어 있었고, 내가 그나마 할 줄 아는 것은 공부밖에 없었다.


집안살림에 서툴렀던 나는 결혼하면서 바보가 된듯했고, 자존감은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결혼은 그동안 당당하게 살아온 나를 거세해야 하는 고통 이상이었다. 당시의 나는 상처 입고 쫓기는 동물과 같았다. 굴을 찾아 숨어들어 그 상처를 치유해야 했다.

남편의 발령은 어쩌면 나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터였다.


낯선 도시가 주는 기대와 두려움

원주는 나에게 낯섦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주었다. 그토록 자유를 갈구하면서도, 나는 홀로 서는 것은 자신이 없었나 보다. 아직도 부모, 형제로부터의 정신적 이유기(離乳期)도 못 벗어나 있었다는 점이 생각할수록 아이러니했다.

동생을 설득하여 원주에서 법무사 공부를 같이 하자고 했고, 동생은 동의했다. 어쩌면 나는 지인이 아무도 없는 원주로 혼자 내려갈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동생과 함께한 무모하고도 뜨거웠던 공부

나는 서울에서 동생과 함께 1년 넘게 법무사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주로 법원 경력자에게 법무사자격이 주어졌으나,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1992년에 공식적으로 전국 규모의 법무사 시험이 부활하였다.

일반인 대상의 첫 번째 법무사시험이었기에 쉽게 출제될 것을 기대하며 나와 동생은 공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도 원주가 낯설었을까.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자는 제안을 매번 거절하며, 동생은 주말마다 서울에 다녀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동생의 공부할 시간을 뺏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7월의 어느 날, 서초동 법원에서 치러진 법무사시험은 처참했다. 객관식임에도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실무 위주의 까다로운 문제들이 쏟아졌다. 결과는 당연히 낙방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공식적인 시험이라는 것은 허울일 뿐, 사실은 법원 경력자들에게 자격을 주기 위해 완전히 실무위주로 나왔던 것이다.

내 평생 그토록 열심히 공부한 적은 처음이었기에, 더불어 나에게 전문직은 너무나도 절실했기에, 나는 끝없이 절망했다.


금대계곡의 수다, 그리고 혼자 남겨진 시간

그 절망감을 뒤로하고 동생과 원주시 금대리에 있는 금대계곡을 몇 번인가 갔었다.

금대계곡은 치악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계절 물이 마르지 않는 곳으로, 맑고 깨끗했다.

계곡물에서 아들을 놀게 하고 동생과 나는 커다란 나무들과 물이 어우러진 매혹적인 풍광에 둘러싸인 채,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서울의 시끌벅적함에서 벗어나 유유자적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그때만큼은 지상낙원에 있는 듯한 아늑함 속에 머물 수 있었다.

자연이 나의 절망감을 치유하고 있었다.


시험은 끝났고 동생은 서울로 떠났다. 비로소 원주에 홀로 남겨진 나는 아들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탐색해 보기 시작했다. 햇빛이 내리쬐는 낮 시간에 하릴없이 어딘가를 서성거리며 걷는다는 것은, 늘 바쁘게 뭔가를 하며 살아온 나에게는 무척이나 낯선 경험이었다.

아파트 뒤쪽의 작은 공터는 늘 한적했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그 길을 걷다 보면 시간이 정지된 듯, 우주에 아이와 나만이 덩그마니 있는 듯했다.


원주가 가르쳐준 '느긋함'의 미학

아들과 내가 자주 들렀던 곳은 원주중앙시장이었다.

시장 들어가는 입구에는 몇몇 할머니들이 직접 재배한듯한 채소류나 곡물등의 좌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곳에서 반찬거리를 사 오곤 했다. 싱싱하기도 했지만, 할머니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했던 것은 시장에서든 식당에서든 사람들이 참으로 느긋했다. 빨리빨리에 익숙했던 나는 그게 처음에는 어색하고 답답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고, 느긋해져 갔다.

그 느긋함에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수채화처럼 남아있는 섬강의 기억

주말이면 남편과 아들과 함께 자주 찾았던 곳은 섬강이었다.

섬강(蟾江)은 원주시뿐만 아니라 강원도 남서부 지역을 흐르는 한강의 주요 지류이다. 강원도 태기산에서 발원하여, 이후 원주시 북부를 크게 굽이쳐 흐르다가 남한강에 합류한다고 한다.


섬강 옆의 숲은 아름드리나무들이 경관을 이루고 있고, 강옆으로는 자갈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그 자갈 위에 돗자리를 깔고 느긋하게 강을 바라보곤 했다. 물도 맑아서 작은 물고기도 잡고, 튜브도 타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한 번은 바위에 붙어 있는 고둥을 따느라 점점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물살이 거세지면서 몸이 휘청였다. 물살에 쓸려 내려가려는 순간, 아들이 내 손을 잡았다. 아들마저 쓸려갈까 나는 손을 뿌리쳤지만, 아들은 끝내 내 손을 잡고 버텼다. 다행히 아들과 나는 조심스럽게 그 물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섬강은 한 편의 수채화처럼 나에게 남아있다. 섬강과 함께한 자연 속의 우리 가족은 그저 해맑았다. 지금도 섬강의 서늘함과 깨끗한 바람이 아이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듯하다.


낯선 도시가 내어준 치유력

그렇게 원주에서의 첫 1년이 흘러갔다. 평생을 서울의 콘크리트 속에서 살아온 내게 원주는 낯선 이방의 땅이었지만, 동시에 자연의 품을 내어준 첫 번째 도시였다

엄격한 제도권 속에서 지친 나는, 이 낯선 지방도시의 자연 속에서 치유받는 느낌이었다.

단순하면서도 느긋한 사람들의 정서와 깨끗하면서도 한적한 자연환경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나의 긴장을 다독이며 나를 더 자유로운 곳으로 이끌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