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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수 Sep 03. 2020

가상의 병무청에서 신검받는 상상으로 시작했다

23년밖에 안 쓴 몸인데 A/S 안 될까요 (1) 

    올해 들어 스무 살이 된 동생이 병무청의 부름으로 불려 가 신체검사를 받고 왔다. 예상했던 대로 현역 입대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다녀온 동생이 대단한 경험이라도 한 양 의기양양하게 늘어놓는 후기담을 들으며 나도 덩달아 나의 신체 상태를 가늠해 보았다. 만일 내가 남자였다면, 그래서 내게 병역의 의무가 있었다면 나도 그와 같은 신체검사를 받고 현역병으로 징집이 되었을까. 그렇게 있지도 않을 일을 가정하여 상상해보았다.


    먼저 난 내 머릿속에 가상의 병무청을 만들어, 성인 남녀 모두를 징집 대상으로 삼았고 그에 응하여 신체검사를 나섰다. 그럼 먼저 시력검사를 하겠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하드렌즈를 착용한 나는 근시와 난시가 모두 심한 편이지만 안경과 렌즈로 교정할 수 있는 정도 이므로 시력은 결격사유가 안 된다. 피검사와 소변 검사, 결핵 검사도 할 테지만, 1년 전 내게 보건증을 끊어준 성북구 보건소의 소견에 따르면 그 부분엔 큰 이상이 없다고 한다. 1년이 지났다고 해서 그 결과가 많이 달라지지도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난 정신 건강을 검사하는 문항에도 착실히 답할 테고 그 결과에서도 군면제 사유를 발견하긴 어려울 것 같다. 따지고 보니 난 제법 건강한 신체를 가진 청년이었다. 꼼짝없이 현역으로 입대할 운명이다. 휴 상상 속 일이라 다행이다.


    아무튼 이 가상의 병무청에서 내린 결론에 따르면, 현역 입대에도 손색이 없을 신체를 지닌 나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항상 건강한 기분으로 살아가느냐? 그건 아니다. 기립성 저혈압, 알러지성 비염, 소화불량, 허리디스크 탈출증 등 난 내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몇 가지 증상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으므로 썩 편하기만 한 몸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부쩍 내 몸이 애초에 잘못 설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나 이런 내 말을 들으면 제조사(내 창조주: 울 엄마 아빠) 측에선 분명 제조사 측 과실이 아니라고 억울해할 게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튼튼하게 제조해서 세상에 내놓았더니만 제멋대로 데굴데굴 굴려 쓰다가 23년이 지난 후에야 이거 불량품 아니냐며 뻔뻔하게 들이미는 꼴이다.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비염도 없고 잘 체하지도 않고, 그렇게 좀 덜 성가신 몸으로 태어났다면 사는 게 훨씬 편안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내가 쓰려는 글이, 이런저런 증상들을 들어 자기 연민에 절어버리기로 작정한 신세한탄(pity party)은 아니란 걸 미리 말해두고 싶다. 단지 현대인의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소소한 증상들에 공감할 많은 사람들과 나의 경험을 공유하고 이젠 웃어넘길 수 있게 된 지난 일화들을 기록해두고자 하는 마음뿐이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우리 엄마. 엄마는 내가 한 번 쓰러지거나 몸져누울 때마다 수명이 십 년씩 줄어드는 마음이라고 한다. 우리 엄마가 이 글을 읽게 된 다면 좀 속상하실지도 모른다.


    엄마, 나 현역 입대도 가능하대 너무 걱정 마. (비록 상상 속 병무청에서 받은 30초짜리 개허접 개구라 신빙성 0% 신검이긴 하지만 하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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