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랜만에 아기 울음을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평소 같은 밤이면, 잘 시간이 되면 내 품 안에서 곯아떨어지던 우리 딸은 어제는 졸려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슬슬 불안하던 찰나, 아기에게 잘 자, 하는데도 벌떡 일어나서 거실로 뒤뚱뒤뚱 걸어간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남편과,
낮에 세 번이나 아기랑 외출한 나는
서로 불안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아기가 졸려하는 신호를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전혀 잘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고, 눈을 비비기 시작한다.
드디어 졸린가 보다.
보통 이러면 안아주면 잠드는데
안아줬는데도
이제 목놓아 울기 시작한다.
무엇이 문제지?
아기가 좋아하는 장난감 주기
기저귀 확인
물 마시기
우유 주기
어떤 것도 통하지 않고 목놓아 운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어디가 아픈가
내가 오늘 아기 데리고 외출 너무 많이 했나
이앓이인가
배탈인가, 오늘 뭐 먹었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쯤
남편이 에어컨을 킨다.
그러자 금방 아기는 울음을 그친다.
'아, 덥고 습해서 그런 거였구나.
엄마가 그것도 몰랐네.'
약간의 자책감과 함께
"정말 남편이랑 똑같네"
라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은 덥고 습한 날씨에 매우 약하다.
동남아에 가면 설사를 하고,
환절기나 습한 날씨에는 배탈이 난다.
피부가 약한 것도 똑같다.
우리 딸의 bcg 접종 부위의 고름은 다른 아가들에 비해 6개월은 넘게 회복이 되지 않았다.
소아과에 가도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을 뿐이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접종 부위가 벌개서 볼 때마다 살짝 마음이 약하다.
남편이
"왜 우리 딸만 그럴까?"
라고 말해서
"오빠 닮았어. 오빠 발에 난 상처도 두 달 가까이 안 아물었잖아."
라고 내가 대답해 줬다.
남편은 몇 년 전 넘어져서 발에 상처가 났는데
의사가 꿰매면 금방 회복한다고 하였으나 봉합이 잘 되지 않아서 재수술은 물론 입원치료까지 하였다.
나도 딸의 예방접종 자국을 볼 때마다 이해가 안 되고 걱정이 되었는데
어느 날 남편의 낫지 않던 발이 생각났고, 그 뒤로 납득이 되면서도 부녀가 똑같다는 생각에 실소가 나왔다.
그리고 성격도 똑같은 것 같다.
이 시기 아기가 고집부리는 것이야 정상적인 성장 과정이고 남편도 나도 고집이 세서 누굴 닮았다고 하기 애매하지만
깔끔 떠는 성격은 정말 똑 닮은 것 같다.
놀이터에서 모래 놀이를 하거나 촉감 놀이를 한 다음에는 손을 꼭 탈탈탈 턴다. 모래 한 톨이라도 남아있지 않도록 탈탈 턴다. 손에 뭐가 묻어있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딸한테 청소하라고 돌돌이를 주면 시키지도 않았는데 거실 구석까지 가져가서 돌돌 밀고 있다.
나는 더러운 집안을 흐린 눈 하고 잘 사는데 남편은 머리카락 하나 눈 감지 못하여 결국 매번 자기가 청소기를 돌린다.
그 옆에서 돌돌이를 밀고 물티슈로 닦는 딸을 바라보면 정말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속담이 이런 거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기가 커갈수록 점점 더 이뻐지고 웃을 일이 많아지는 것 같다.
시간이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다고 육아선배인 친구들의 말을 그때는 듣고 정색했었는데 이제야 무엇인지 알 것 같다.
+
아 물론 우리 딸은 나도 닮았다.
저번에 친정아빠와 우리 딸과 식당에 갔다가 식당 아저씨가 확신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외할아버지시죠, 셋이 똑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