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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Sora Oct 06. 2022

공황장애 환자 이야기

그냥 개인적인 경험들

다음은 전부 몇 년 전 이야기다.

1. 봄이 오고 우리 병원에도 새로운 인턴 선생님들이 들어왔다.

환자들도 새로운 사람이 온 것을 아는 모양이다. 겨울 내내 병동이 조용하다가 마치 새로운 인턴 선생님들을 시험해(?) 보기 위한 것인지 갑자기 환자들의 콜 난이도(?)가 올라가고(한마디로 처리해야 할 일이 복잡하다는 뜻) 병동이 소란스럽다.


나의 핸드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선생님, XX호 XXX환자분이 과호흡 호소하십니다. 바이탈은 ~~~"



호흡수가 28회였나(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과호흡을 보이고 있어서 일단 종이봉투를 환자 입에 대라고 인턴 선생님한테 말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차트를 확인하며 환자가 입원한 이유, 복용 약물, 과거력 등을 살펴보았다.


이 분은 안면마비로 우리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분인데 공황장애 과거력도 있다고 했다. 홀로 1인실에 누워있다가 공황발작이 온 것 같았다.


환자의 얼굴이 붉어지고 호흡을 매우 거칠게 하고 있고, 표정은 매우 괴로워하였다. 공황발작은 나도 겪어보지 못했는데, 교과서에서 표현하길 마치 죽을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힌다고 하니 얼마나 힘들까.


인턴 선생님은 갓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이런 당황스러운(?) 광경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전혀 티가 나지 않고 차분하게 대처를 하고 있었다.


종이봉투로 과호흡을 가라앉히고 호흡수도 줄었지만 여전히 환자는 불안해했고, 24회 정도로로 아직은 호흡수가 빨랐다.


그래서 환자분한테 이름은 무엇인지, 자녀는 누구누구 있는지, 좋아하는 취미는 무엇인지 물어보며 마음을 가라앉히도록 하였다.


그 사이, 나는 또 다른 콜이 와서 다른 환자를 보러 가야 했기에, 인턴 선생님한테 마저 환자를 안정시키도록 하였다.


다른 업무를 보고 나서 다시 그 환자의 병실에 가보니,

인턴 선생님은 차분하게 환자분에게 '눈을 감고 환자분이 좋아하는 취미를 하는 것을 상상해볼까요.', '눈을 감고 환자분이 좋아하는 XXX 먹는 상상을 해볼까요.' 등을 말하면서 환자를 안정시키고 있었다.


다행히 환자의 공황 발작은 가라앉았고, 그 뒤로도 안면마비 치료를 계속 받았는데 입원해 있는 동안 더 이상 공황 발작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황 발작이 일어났을 때 대부분은 강력한 진정제의 투여 없이도 종이봉투 호흡이나 복식 호흡 등으로 호흡을 안정시키고 마음을 가라앉히면 한 고비를 넘길 수 있다. 물론, 공황발작이 온 상황에서 자신이 복식 호흡을 해야겠다는 정신이 들기까지는 힘들지만, 주변에서 안정을 취하도록 차분한 목소리로 복식 호흡이나 눈을 감고 다른 것에 집중을 하도록 지시해주면 공황 발작을 가라앉히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


무서운 것은 공황 발작이 일어날까 계속 두려워하는 것이다.


2. 예기불안이라고 하는데, 공황발작이 또 일어날까 불안해하는 것이다.

이 사례는 1번과 다른 병원에서 일할 때였다.


나는 그때 일요일에만 침놓는 일명 '일요일 원장님'으로 어떤 한방병원에 근무하고 있었다.

(환자들은 매일 침을 맞아야 하는데, 한의사가 일주일 내내, 그럼 365일 내내 근무하기는 힘들잖아요.. 그래서 일요일에만 일하는 원장을 따로 뽑기도 합니다.)


내 업무는 단순했다. 고요한 일요일에 고요히 침을 놓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조용하던 어느 또 한 번의 일요일,


한 번도 나를 먼저 찾은 적이 없던 간호사 선생님이 나를 찾았다.

"원장님 저희 입원환자 중에 XXX환자분이 공황발작이 올까 봐 너무 불안해하시는데 한 번만 봐주실 수 있나요?"


환자분은 근골격계 질환(정확히는 기억이 안 난다)으로 입원했는데, 역시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관련 약물도 복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공황 발작이 올 것만 같다면서 너무 불안한데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었다.


나는 환자분에게 마음을 안정시키도록 돕는 침을 놔주겠다고 하였다.

(몇 년이 지나 지금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신문혈이랑, 가슴을 이완시켜주기 위하여 흉근에 사자(침을 비스듬히 놓는 것)했던 것 같다.


환자분은 침을 맞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다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저는 공황장애에 침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이렇게 효과가 있네요. 감사해요."


그 뒤로도 환자분은 평일에 주치의 원장님한테 가슴 쪽으로도 침 치료를 받았고, 마음이 편안해진 상태로 퇴원하셨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침 치료는 내인성 오피오이드와 세로토닌을 포함한 뇌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한다.(출처 Bosch and Van den Noort, 2005, etc)
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 연구에서 침 치료가 감정, 인지, 기억 처리의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변연계-주변 변연계-신피질 네트워크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출처 Fang et al, 2009)
증가된 코티솔 수치는 스트레스, 불안, 우울증, 조현병 등 정신질환과 관련이 있는데, 이 수치는 침 치료로 감소할 수 있다.  -2차 출처 : 침의 과학적 접근과 임상활용, Jacqueline Filshie 외, 출판 한미의학, 2019.05.20.




최근 공황장애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고,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젊은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 정신과 약물의 부작용과 최근의 연구들(우울증, 치매 관련 약물 연구가 잘못되었다는 연구)을 고려할 때, 침 치료나 한의학적 치료가 고통받는 다른 환자분들한테도 대안이 되길 바라며 갑자기 떠오른 개인적인 경험을 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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