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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Sora Aug 30. 2022

사위의 여자 친구는 뭐라고 부르나요

병원에서 느끼는 가족에 대한 생각들

(1)

병원에서 침을 놓다 보면 환자들은 매일 보는 나에게 이따금 신기한(?) 질문을 할 때가 있다.


내가 당황했던 질문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사위의 여자 친구를 뭐라고 불러야 돼?"


할머니가 물어보셨다.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침을 쥔 손이 잠깐 멈추고, 요즘 표현으로 눈이 동공지진이었던 것 같다.


속으로는 당혹스러웠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평온한 얼굴로 물었다.


"할머니 딸이 아닌가요?"


할머니는 "응, 내 딸은 아니야."라고 하셨다.


나는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한참 생각한 끝에 대답했다.


"이름을 부르면 되지 않을까요?"


할머니는 진지하게 대답하셨다.


"아직 이름을 몰라."


"아 그러면 사위한테 미리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거나, 아니면 아가? 아가가 아니려나.."


나는 어렸을 때 친구들끼리 돌려가며 사귀는(?) 가십걸 등 미국 드라마, 이 사람이 그 사람의 자식이었던 한국 막장 드라마 등을 두루두루 섭렵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나의 마인드는 꽉 닫혀있었고, 좀 더 개방적으로 바뀌려면 멀었나 보다. (물론 여러 가지 상황이 가능하다. 따님 분이 이미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사위 분이 장모님을 아끼는 마음에 귀한 주말에 오시는 것일 수도 있고, 따님 분이 이 세상에 계시지만(?) 그렇다면 이 경우에는 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사위 분이 주말에 시간을 내서 이렇게 병원에 찾아온다는 것이 나는 기특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여자 친구도 이렇게 소개해준다니.)


할머니는 주말에 자식들이 면회를 오시곤 하는데, 이번 주말에는 사위와 여자 친구분이 오신다고 하셔서 주중부터 이름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걱정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다음 주에 지난 주말에 사위의 여자 친구 분께 뭐라고 부르셨는지 할머니한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고, 할머니도 별말씀이 없으셨다.


이 기회(?)를 통하여 조금 더 열린 마음을 가지기로 하고, 편견을 더 줄여보기로 하였다.



(2)

병실은 1인실도 있지만 여러 환자들이 같이 쓰는 다인실도 있어 이 경우, 할머니들의 수다가 펼쳐질 때가 있다.

가끔 침을 놓으면서 이 분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는데, 웃음을 참게 되는 상황들이 있다.


"나는 오늘 은행에 가기로 했어요."


"은행에 왜 가셔유?"


"아들들한테 내 재산을 다 나눠줬는데, 마지막으로 남은 재산 처리할 게 있어서 그래요."


"아이고, 할머니, 어차피 죽으면 알아서 할머니 재산 나눠 가지게 될 텐데 뭘 벌써 나눠줬대유?"


"오마나.. 오마나 그렇네.. 내가 왜 그랬지.. 다시 달라고 할까.."


"다시 주겠어. 애초에 왜 줬어유"


나는 엿듣다가 속으로 웃겼지만 이번에도 평온한 척, 아무것도 못 들은 척 침을 놓았다.


그래도 아드님은 할머니 걱정 많이 하셔서 저한테도 할머니 상태에 대해서 이것, 저것 물어보고 면회도 자주 오시지 않냐고 나는 걱정 마시라고 안심을 시키고 침을 놓았다.


(3)

어떤 할아버지가 입원하셨다. 같이 온 할머니한테 이것, 저것 물어보았다.


무슨 약을 드시고, 어떤 증상이 있고, 술이나 담배 등을 하는지 등을 물어보았는데 할머니는 잘 대답하셨다.


그리고 다음날 면회도 오시고, 할아버지 상태를 나한테 물어보기도 하였다.


나는 할머니한테 "남편 분이.."라고 말하였는데 할머니는 우리는 부부가 아니고 그냥 친구라고 하였고, 둘 다 배우자도, 가까운 보호자도 없어서 서로 돌봐준다고 하였다.


'아 그렇구나.. 그치 꼭 배우자가 보호자일 필요는 없지. 아니면 사별을 했을 수도 있고, 결혼을 안 했을 수도 있지.' 속으로 생각했다.




한국 내 1인 가구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고, 미혼 인구도 증가하고 있다. 미래에는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꼭 가족이라고 법적으로 정해진 테두리 안에 묶일 필요가 있을까. 나를 소중히 여기고,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곧 가족일 텐데 말이다.


영화 '애프터 양'에서 초반부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나와서 춤을 춘다. 여자-여자 커플, 남자-여자 커플, 피부색 혹은 인종이 다른 듯한 자식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오지만 그들은 모두 가족이다. 서로 아껴주고,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제일 중요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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