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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Sora Nov 12. 2022

호주에서 만난 두 번째 엄마

따뜻한 미소가 아름다운 그녀


22살

어리다고 생각하면 새파랗게 어리다고 할 수 있는 나이에 나는 호주에 갔다.


멜버른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로잘리와 마이크 부부를 알게 되었는데 그 두 분은 나에게 정말 너무나도 잘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잘해줬을까

나도 더 잘해드리고 왔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로잘리라는 아주머니는 정말 천사였는데, 가히 호주에서 만난 두 번째 엄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 나의 엄마도 정말 좋고 대단하시지만)


대표적인 예시를 들면 다음과 같다.




1-1

멜버른에서 신나게 먹고 즐기고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친구들한테 '나 호주가 너무 좋아. 여기서 살고 싶어'라며 철없는 말을 내뱉던 무렵

첫 고난이 찾아왔다.


몸이 갑자기 안 좋아지면서 (지금은 어디가 아팠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감기몸살 아니면 생리통이었던 것 같다)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졌다.


머나먼 타국에서 아프면 아픈 감정 그다음으로 드는 생각은 서러움이다. 집에 가고 싶고 집밥 먹고 싶고 내방 침대에서 누워서 잠만 자고 싶다.


내가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다고 하자 로잘리는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어보면서 뭐든지 말하라고 하셨다.


그러고 나서 종 하나를 가져오셨다.


"Ring the bell, if you need anything."

   (필요한 것 있으면 이 종을 울리렴)


혹시 밤에 더 아파지거나 밤에 어두워서 필요한 것을 못 찾을까 봐 이렇게 종까지 가져다주신 것이다.


당신도 주무시고 쉬셔야 할 텐데 나를 위해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 자신을 부르라는 말이 정말 감동이었다.


그날 밤, 그 종은 사용할 일은 없었지만 종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든든하고 그 감동으로 병이 곧 다 나았다.



1-2

내가 홈스테이 하는 곳은 멜버른 교외지역이어서 시내에서 오려면 지하철을 타고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1.5킬로 정도 걸어와야 하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었지만 첫날은 로잘리가 차를 태워주셨고 그다음부터는 내가 지하철 타고 역에서 내려서 길을 잘 찾아서 걸어갈 정도가 되었다.


점차 지리에 익숙해질 무렵, 사건이 터졌다.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는데 안내방송이 나온다.


"Due to weather conditions, 블라블라

you have to use connected bus."

(대충 비가 많이 와서 지하철인지 철로인지 암튼 이상이 생겨서 더 이상 운행을 안 하니까 연결된 버스를 타라고 했던 것 같다.)


나는 처음에 내가 리스닝이 잘 된 건가 싶었지만 일단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고 공무원 분들도 일사천리로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어서 무리에 이끌려 무사히 커넥팅 버스로 안내받았다.

'이 버스가 맞는 건가.. 집이랑 반대 방향으로 가면 어쩌지..'

많이 당황했지만 사람들이 다 움직이니까 나도 움직였다.


그리고 로잘리한테 연락을 했다.

로잘리는 안 그래도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걱정했다고 자기가 역까지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커넥팅버스는 나를 지하철역에 내려줬고 로잘리는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이제 걱정하지 말라고 집으로 가자고 하였다.


나도 (당황했던 폭우로 인한 지하철 운행 중지 사태에서 벗어나) 안도감이 들었고 내가 걱정되어서 역까지 나와준 것에 감사했다.




2.

로잘리는 나를 위해서 사막 여행도 계획해주었다.


내가 사막에 가 본 적이 없다고 하자 자기와 마이클이랑 같이 가보자고 하였다.


한국에는 사막이 없지 않냐고 하며 멜버른에서 좀만 더 위로 가면 사막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멜버른에서 사막은 꽤 멀었다.

고층빌딩 숲에서 광활한 사막이 나오기까지 정말 꽤 많이 운전을 해야 했다.

두 분이서 정말 힘들 텐데도 내색 하나 안 하고 나에게 사막을 보여주고 싶다고 그 먼 길을 운전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좀 해야 되었는데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장롱면허지만.. 아 철없었던 22살의 나야...)


그러고 나서 드디어 도달한 사막

밤에는 수많은 별들이 펼쳐졌다.


로잘리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Remember galaxy is always up there in the sky."

    은하수는 언제나 하늘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렴




3.

멜버른에서 머문 시간은 한 달 남짓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어느덧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도 다가왔다.


한국으로 가는 날, 로잘리는 나에게 펭귄이 그려진 컵을 선물로 주었다.


"It will remind you when you first time found  penguins on the beach"

   네가 저번에 해변에서 펭귄을 봤다고 했지. 이 컵이 그때의 추억을 기억나게 해 줄 거야.


나는 낮에 친구들이랑 놀고 와서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조잘조잘 로잘리랑 하는 편이었는데

내가 했던 이야기를 까먹지 않고 기억해서 이렇게 의미 있는 선물을 나에게 준 것이다.


지금도 이 컵을 간직하고 있다. 컵을 볼 때 생각나는 것은 비치에서 본 펭귄보다는 로잘리가 먼저 생각난다.


로잘리 및 마이크와 매일 저녁을 먹던 스윗홈. 이곳에서 한 시간 넘게 이야기하고 게임도 했다.


로잘리는 정말 천사였다. 이 외에도 항상 나한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나의 하루를 궁금해하고 내가 사는 한국에 대해서 어떤 곳인지 물어봐주었다.

(덕분에 내 영어 실력도 늘었었다.. 물론 지금은 다시 퇴화되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가 좀 더 잘해줬어야 한다. 나는 눈치 없이 너무 받아먹기만 했던 것 같다. 나도 나름 노력한다고 궁중떡볶이라면서 코리안 푸드도 대접하고 했던 것 같은데 좀 더 다른 음식도 해 드려 보고 올 걸 하는 후회가 남는다.


로잘리는 그런 내가 좋았는지 자신의 노모한테도 (연령이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지만 90대 셨던 같다) 소개해주고 자신의 아들한테도 나를 소개해줬다.



로잘리는 전직 간호사였다고 한다. 어쩐지 그 친절함이 나 같은 평범한 인간들은 흉내내기 힘든 정말 깊은 내공에서 나오는 친절함 같았다.




호주에 다녀온 지 8년이 지났다.


어떨 때는 너무 궁금하기도 하다. 잘 계신지 코로나는 잘 이겨내셨는지 혹시 아프시지는 않으신지.


나이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호주에 다녀오고 나서 주고받은 이메일에서는 건강이 조금 안 좋아졌다고 했었다.


그 뒤로 연락이 끊겼지만 가끔씩 로잘리가 잘 지내는지 정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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