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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Sora Mar 04. 2023

자다가 맞은 날벼락 - 남편의 낙상

낙상은 어르신들한테나 발생하는 줄 알았는데

때는 병원이 가장 호황이라는 3월이었다.


3월, 개강, 개학 등 새로운 시작으로 바쁜 와중에 겨울에서 봄이 되면서 날이 차차 풀리지만 일교차는 심해서 병원에 가장 환자들이 많이 오는 시기다.


그 환자 중에 내 남편도 있을 줄 몰랐다.


3월 어느 날, 나는 안방에서 먼저 자고 있는데 저 멀리 "아 아"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자다가 비명소리에 놀라 깨서 화장실로 갔다.


남편의 발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칼로 베어서 뚝뚝 흐르는 피가 아니라 말 그대로 철철철 흐르고 있었다.


남편이 우선 수건을 달라고 했다.


수건을 주고 나는 우왕 좌왕 어쩔 줄을 몰라했다. 수건으로 덧대는 데도 피가 계속 나는 것 같다.


남편은 119를 불러달라고 했다.


나는 손을 벌벌 떨면서 핸드폰을 잡았다.


나도 모르게 핸드폰에 119라고 쳐야 하는데 010을 누르며 남편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당황해서 내 손이랑 머리가 따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119에 전화를 했다.


"아 네. 저희 남편이 화장실에서 미끄러져서 넘어져서 문에 박아서 깊게 파였는데 피가 지혈을 해도 멈추지 않아서요. 여기는 xxx아파트 xxx동 xxx호에요."


"네 금방 갈게요."


정말 바로 몇 분 뒤, 소방대원 세 분이 스트레쳐카를 가지고 오셨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남편을 옮기는 것은 건장한 소방대원 (당시 성인 남성 세 분)에게도 버거워 보였다.


남편의 몸무게는 최소 130kg (키가 185 정도 되고 몸무게는 비밀이라고 자꾸 알려주지 않는다)인데 남편도 미안한지 자기 걸을 수 있다고 부축만 해달라고 했다.


일단 소방대원분들이 상처를 확인하고, 상처 부위가 꽤 깊었기 때문에 드레싱을 한 번 하고 구급차에 타기로 하였다.


현관 엘리베이터 앞에서 드레싱을 하고 비좁은 엘리베이터에 스트레쳐카, 남편, 소방대원 세 분, 내가 타자 바로 엘리베이터 경고음이 울렸다.


그래도 문은 닫혀서 우리는 1층으로 무사히 내려가 구급차에 탔다.


구급차에 타자 나는 정신이 좀 들기 시작했다.


나 "어쩌다가 그런 거야?"


남편 "슬리퍼 신고 있는데 미끄러웠나봐. 넘어졌어."


나 "감각은 있어? 움직일 수는 있어?"


남편 "응. 아까 넘어질 때는 정말 주마등이라고 할까, 어렸을 때부터 기억이 쫙 지나간 것 같아. 나 입원해야 하나?"


---"입원까지는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꿰매면 될 걸요" (소방대원 한 분이 우리의 이야기를 엿듣다가 말씀하셨다. 나는 듣자마자 피식 웃었다. 긴장이 이제야 좀 풀리는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에 도착했다. 그 병원은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의 직장 바로 앞에 있는 병원이었다. 가끔 점심시간에 남편이랑 남편 직장 근처에서 밥을 먹으면서

"와. 저 병원은 신기하다. 수지 접합 병원이래. 손 발 잘린 사람들 봉합해주는 곳인가 봐."

라고 흥미롭게 말했던 그 병원에. 굳이 이렇게. 다시 오게 되다니. 남편과 나는 둘 다 헛웃음을 지었다.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간호사 선생님이 드레싱을 했고, 곧이어 의사 선생님으로 보이시는 분이 오셨다.

"아이고. 일단은 꿰매면 되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엑스레이를 촬영하고 바로 꼬매기로 하였다.


마취 주사를 놓는데 남편은 비명을 질렀다.


의사 선생님이 말하셨다. "아유, 젊은 남자분이 왜 이렇게 겁이 많으실까."


남편은 내 손을 꼭 잡았다.


간호사 선생님이 "보호자 분은 잠시 밖에서 대기해 주실게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이 "에휴. 남편분이 겁이 너무 많으신데. 나가지 마시고 옆에서 손이나 잡아줘요."라고 말하셨다.


남편은 너무 아픈지 이렇게 말했다.


"아 저 입원해야 하나요? 수술도 받아야 하나요?"


의사 선생님은 말하셨다. "아니요. 이거 수술할 정도는 아니에요. 여기 병동에는 손 발 잘리신 분들 많아요. 그 정도는 되어야지 입원을 하죠."


나는 옆에서 또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아, 여기가, 특히 발 이 부분은 지방이 원래 없는 곳인데. 여기도 지방이 있으시네. 지방 때문에 자꾸 밀리네요."라고 하셨다.


나는 너무 웃겨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 우리 남편은 정말 지방을 발까지 온몸 구석구석에 숨겨놨구나.


다행히 의사 선생님이 잘 봉합을 해주셨고 우리는 "입원 대신" 집으로 귀가하라는 오더를 받았다.


나는 속으로 '아 올 때는 장정 세 분이 도와주셨는데 갈 때는 나 혼자 낑낑돼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무언가를 가리키면서 저거 사자라고 말했다.


남편이 가리키는 것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목발이었다.


우리는 목발도 구매해서 남편은 야무지게 스스로 낑낑대면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는 말처럼 정말 당황스러웠던 밤이었다.


오래전 한의대 다닐 때 해부 실습 때 지방을 벗기고 근육 벗겨내면 혈관과 신경이 보였는데 이번에 그때 봤던 혈관들이 까꿍하고 세상 밖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그 충격적인 광경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다.


남편의 깊게 패인 발 속, 마치 아주 어렸을 때 인체의 신비전에서 보던 살과 혈관이 공존하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참 마음이 오묘했다.


얼마나 아팠을지 안타깝기도 하고, 그러게 내가 애초에 겨울에 운동 좀 하자고 했잖아, 운동을 했으면 균형감각이 더 생겨서 안 넘어졌겠지라는 원망도 해보았다.


하지만 남편은 뭐가 그리 당당한지 오히려 자기가 젊기 때문에 고관절 안 나가고 머리 안 박은 것 같다고 여보 참 다행이지 않아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연신 "고마워. 정말 고마워"를 외쳐 댄다.


정말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이었다.


<추가>

그다음 날 나는 바로 다이소에서 미끄럼 방지 스티커를 붙였다.

이런 스티커는 낙상 고위험군인 할머니 할아버지들 집에나 붙이는 건 줄 알았는데 우리 집에도 붙일 줄 몰랐다.


모두들 낙상 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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