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아Sora Oct 29. 2023

남편 없이는 못 살아 vs 남편이랑은 못살아

남편이란 존재

#1 남편의 죽음은 당신 탓이 아니에요.


날씨가 급격히 쌀쌀해진다. 몇 년 전, 이렇게 찬 바람이 얼굴을 때리는 가을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입원하셨다.


아픈 곳은 식욕부진, 소화불량, 극심한 불면, 몸의 여러  군데 곳곳의 통증.


이번에도 뻔한. 흔히 볼 수 있는 환자라고 생각했다.


 "소화도 잘 안되고 밥도 잘 안 먹히고 온몸이 아파서 잠은 더더욱 못 자요."


아주머니는 얼굴 표정이 멍해 보였고 몸이 안 좋다는 말 외에는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병원이 조금은 익숙해졌는지 이내 입을 열었다.

사연 없는 환자가 어디 있겠냐만은 이번 사연은 좀 더 가을이라 그런지 시린 내 마음을 더 시리게 했다.



"남편이 1년 전에 죽었는데 그게 내 탓 같아요."

무표정한 얼굴로 덤덤하게 말씀하셨다.


사연인즉슨 남편이 어쩌다가 심장 쪽, 대동맥 관련 질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의사는 이 수술이 큰 수술이고 굉장히 위험한 수술이라고도 경고했다고 한다. 수술을 할지 안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하기로 하였고 남편은 끝내 수술 중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자세히 듣지 못했지만 아마도 대동맥류나 관상동맥질환이 있었거나 어쨌든 심장이나 큰 동맥을 건드리는 수술은 위험하기는 위험하다. 하지만 또 수술을 안 한다면 이미 가슴 혹은 뱃속에 시한폭탄이 있다는 생각에 여러 고민이 많으셨을 것이다.


"나 수술 잘하고 올게. 나 걱정하지마"

라고 밝게 인사하고 수술실로 들어가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나요. 제가 말렸어야 되는데 모든 게 제 탓 같아요.


아주머니는 남편 분이 이렇게 갑자기 떠날 줄을 몰랐고 그 뒤로 온몸이 아프고 잠도 잘 못 잤다고 한다.


배우자를 잃은 아픔은 얼마나 클까. 게다가 그것이 다 내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마음이 무너질까.


아주머니는 하루빨리 정신과 상담이 필요해 보여서 속히 정신과 상담 일정을 잡았다. 다행히 아주머니도 정신과 상담에 바로 응하셨다.


한방정신과 교수님 상담이 이루어졌는데

교수님으로부터

"환자분 탓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많이 편해지셨다고 한다.


"당신 탓이 아니다"

이 말이 어쩌면 가장 필요했던 말인가 보다.


몇 차례 상담이 더 이루어졌다. 한방정신과 상담에서는 복식 호흡과 명상하는 방법도 배웠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그 뒤로 잠도 이제 좀 주무실 수 있게 되었고 몸 여기저기 아픈 것도 좀 나아지셨다고 한다.



차디찬 가을바람이 부는 날이면 이 아주머니 환자와의 에피소드가 떠오르곤 한다.

쓸쓸한 가을, 떨어지는 잎을 보면 잊혀있던 기억이 생각난다.

멍하니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남편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 남편의 갑작스러운 부재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나는 도저히 가늠이 안 되는 그 마음의 깊이를 헤아려보려고 애쓰곤 한다.




#2 남편과 이혼하려고 입원했어요.


반면 남편과는 못살겠다고 입원한 경우도 있었다.


따사로운 어느 봄날, 2인실에 30대 여자 환자와 50대 여자 환자가 같이 입원을 하였다.

30대 여자 환자는 식욕부진, 소화불량, 극심한 불면, 자살충동 등으로 입원했었고,

50대 여자 환자는 어깨 통증 등 온몸의 통증으로 입원을 했다(몇 년이 지나 정확한 주소증이 기억이 안 난다).


알고 보니 둘은 모녀 사이라고 한다.

그리고 입원하자마자 아직 검사 결과가 다 나오지도 않았는데 각종 진단서를 발급해 달라고 연신 콜을 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남편과 이혼하려고 입원한 것이라고, 남편 때문에 못살겠다고,

특히 남편이랑은 더 이상 못살겠다고

처음 보는 나에게 말했다.


다행히(?) 그때 기억에 외관상으로 보이는 멍 자국이나 타박상 등은 없었던 것 같다.

남편이랑 왜 못살겠다는 건지는 구체적인 이유는 듣지 못했다. 굳이 나한테까지 말할 필요는 없겠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나도 결혼을 한 뒤에야)

아 그때 입원한 것이 설마

남편과의 이혼 소송에서 유리한 근거(결혼 생활로 인하여 건강 상의 피해를 입증하려는 근거?)를 마련하려고 그랬던 것일까 하는 의심이 마음 한편에 자라났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남편 때문에 못살겠다는데 헤어지면 되겠지..


아무튼 남편 없이는 못 살겠다는 1번 사연과 대조적인 "남편이랑은 못 산다"는 사연도 있어서 적어보았다.




#3  남편이 아니더라도


반면,

'남편'이라는 이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든지 인생에서 '내 곁에서 나를 신경 써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느낀 에피소드도 있었다.



80대 뇌경색 할아버지 환자가 입원하였다.

한쪽 힘이 빠지고, 말이 어둔해졌다고

할머니가 보호자로 할아버지를 데려오셨다.

뇌경색 환자는 특히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이 이미 있었는지 혈압조절이나 당 조절은 잘 되었는지 알아보는 것은 필수다.

나는 말이 어둔한 할아버지 대신에 할머니에게

"고혈압이 있다고 하셨죠. 혈압약은 드신 지 얼마나 되었나요?"라고 물어보았다.


"아니, 그게.. 저.."

할머니는 우물쭈물 말을 흐리셨다.


"대에충 쉬입니언 되에엇어요."

말이 어둔한 할아버지가 대신 대답하셨다.


그렇게 얼레벌레 입원 수속과 초진을 마치고

할머니는 나를 조용한 곳에서 따로 불러 말씀하셨다.


"아니, 저희가 부부는 아니고 친구 사이예요. 우리 둘 다 늙었는데 의지할 자식도 없고 가족도 없어서 서로 안부 묻고 혹시 필요할 때 보호자 역할 해주는 친구라서 내가 잘 몰라서 아까는 대답을 잘 못했어요. 앞으로 이 양반 잘 부탁드려요."


당연히 부부일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비록 남편은 아니더라도, 혈압약을 먹은 지 몇 년이 되었는지는 모르더라도, 누구보다도 할아버지를 걱정하고 신경 쓰는 게 보였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검사하는 내내 옆에서 걱정하고 도와주셨는데, 그래서인지 나는 당연하게 남편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 뒤로도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보러 종종 오셨고 할아버지는 재활을 열심히 하셔서 발음도 많이 좋아지시고 다리에 힘도 생겨서 무사히 퇴원하셨다.




'남편'이 '남의 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여러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남편이 어떤 존재인지,

나는 남편에게 어떤 존재인지 다시 생각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빠도 그렇게 해줄 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