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함의 미학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488. 행동에서의 평온함 - 폭포수가 떨어질 때 휠씬 더디고 경쾌해지는 것처럼 위대한 인간은 행동하기에 앞서 기대되는 열렬한 욕구보다 훨씬 더 태연하게 행동하려 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392)


"위대한 인간은 행동하기에 앞서 기대되는 열렬한 욕구보다 훨씬 더 태연하게 행동하려 한다." 나는 이 '태연함'이 단순히 무관심이나 냉담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오히려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고한 신뢰, 그리고 결과에 대한 초연함에서 비롯되는 내면의 고요함이다. 마치 숙련된 장인이 복잡한 작업을 할 때, 겉으로는 아무런 동요 없이 차분하게 움직이지만, 그 손길 하나하나에는 오랜 경험과 깊은 집중력이 담겨 있는 것과 같다.

나는 이런 태연함의 미학을 어떤 예술가에게서 발견한 적이 있다. 그는 무대 위에서 놀랍도록 침착하게 연주를 시작했다. 그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전혀 없었고, 손가락은 건반 위를 유영하듯 부드럽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 연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엄청났고, 나는 그 음악에 완전히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연주는 '빨리 잘해야 한다'는 욕구에 쫓기는 것이 아니라, 음악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 그리고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태연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진정한 위대함이 겉으로 드러나는 격렬함이 아니라, 내면의 고요함 속에서 피어나는 것임을 깨달았다.

니체의 아포리즘은 우리에게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통찰을 준다. 열렬한 욕구와 기대감에 휩쓸려 서두르기보다, 폭포수가 더디고 경쾌하게 떨어지듯 태연함을 유지하려 노력하라는 그의 말이다. 이는 단순히 행동을 늦추는 것을 넘어, 내면의 평온함을 유지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가지며, 결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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