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속의 불편한 진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489. 너무 집착하지 않도록 - 어떤 일에 너무 집착하는 사람들이 영원히 그 일에 충실한 것은 드문 일이다. 그들은 단지 그 깊이를 밝혔을 뿐이다: 항상 그곳에는 매우 불쾌한 것이 보인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392)


우리는 흔히 어떤 일에 깊이 몰두하고 파고들면 들수록 더 큰 만족감과 성취감을 얻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니체는 그 깊이의 끝에서 '매우 불쾌한 것'이 보인다고 경고한다.

나는 한때 '완벽한 글쓰기'에 집착했던 적이 있다. 단어 하나, 문장 부호 하나까지 완벽하게 다듬으려 밤샘을 마다하지 않았고, 나의 글이 세상에 완벽하게 드러나기를 갈망했다. 하지만 그 깊이를 파고들면 들수록, 나는 글쓰기 과정의 지루함, 나의 부족한 어휘력,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나 자신과의 싸움에 지쳐갔다. 나의 이상적인 글쓰기라는 환상은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매우 불쾌한 것', 즉 나의 한계와 불완전함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영원히 글쓰기에 충실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좌절감에 휩싸였다. 집착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짓누르고 지치게 만드는 독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글쓰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어떤 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고 완벽한 관계를 꿈꾸지만, 그 깊이를 파고들면 들수록 상대방의 예상치 못한 단점이나 관계의 한계가 드러나게 된다. 때로는 자신의 집착이 상대방에게 부담이 되고, 결국 관계를 망가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때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라는 불쾌함과 함께, 관계의 본질적인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


니체가 말한 '불쾌한 것'은 어쩌면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일이나 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그 이면에 숨겨진 불안감이나 결핍 때문일 수 있다. 완벽함을 추구하거나 통제하려는 욕구, 혹은 타인의 인정에 대한 갈망이 집착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집착의 깊이를 파고들었을 때, 우리는 결국 그 불안감과 결핍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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