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함의 역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493. 마음의 고상함 - 마음의 고상함은 대부분 순한 성품과 의심의 결여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탐욕적이며 매우 성공한 인간들이 즐겨 우월감과 조소를 띤 채 장황하게 말하는 것을 포함한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393)


니체가 말한 '마음의 고상함'은 순수하고 의심 없는 성품에서 비롯된다. 이 성품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믿고, 타인을 쉽게 신뢰하며, 복잡한 계산이나 의심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관계를 맺으려 한다. 그들은 마치 맑은 물처럼 투명하고, 세상의 더러움에 쉽게 물들지 않으려 한다. 이런 순수함은 분명 아름다운 미덕이다.

나는 '고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들은 타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고, 작은 호의에도 진심으로 감사하며, 세상의 어두운 면을 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순수한 눈빛은 나에게 잊었던 동심을 떠올리게 하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가치가 존재함을 일깨워준다.

그런데 니체는 또다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만든다. 니체는 이 고상함이 '탐욕적이며 매우 성공한 인간들이 즐겨 우월감과 조소를 띤 채 장황하게 말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지적하기 때문이다. 순수하고 의심 없는 마음은 때로는 세상의 탐욕과 기만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성공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을 정당화하려는 이들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이들을 '어리석다'거나 '세상 물정 모른다'고 조롱하며 자신들의 우월감을 과시하려 한다.

순수한 열정으로 어떤 일에 뛰어든 사람이 현실의 벽에 부딪히거나, 타인의 기만에 속아 손해를 보는 경우 탐욕적이고 성공한 이들은 그들을 비웃으며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 '순진하게 믿는 게 잘못이지'라고 말하곤 했다. 그들의 조소 섞인 말 속에는 순수함을 약점으로 여기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비열한 의도가 숨어 있었다. 그들에게 고상함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들의 성공을 더욱 빛내주는 배경이자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마치 맑은 물에 흙탕물을 섞어 흐리게 만드는 것처럼, 그들은 순수함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 한다.

순수하고 의심 없는 마음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세상의 냉혹함 속에서 상처받기 쉽다. 탐욕적이고 성공한 이들은 그런 순수함을 조롱하며 자신들의 우월감을 과시하려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순수함을 버리고 세상의 탐욕에 물들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진정한 고상함은 단순히 순한 성품이나 의심의 결여를 넘어선다. 그것은 세상의 어두운 면을 인식하면서도, 자신의 순수함을 지키려는 강인한 의지에서 비롯된다. 타인의 조롱과 비판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잃지 않고,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용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마음의 고상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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